사용자는 회사가 아니다. 노동자도 회사가 아니다. 둘 다 회사의 일부다. 물론 법률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조직인 회사의 소유권은 사용자, 즉 자본가에 속해 있다. 하지만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법률적 관계가 회사와 관련한 모든 것을 자본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주식 소유의 복잡한 관계와 주주의 다변화는 회사라는 조직이 다양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s)로 구성돼 있음을 보여 주는 작은 사례일 뿐이다.

소유자와 경영자가 다를 수 있다. 선진적인 기업일수록 회사의 의사결정은 소유자가 아니라 경영자가 한다. 물론 경영도 사용자가 독점하기보다 노동자나 전문가 등 회사 안팎의 이해관계자가 공유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보편화된 노동이사제나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사외이사제가 대표적이다. 노사관계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지, 인간 대 사물의 관계가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지 노동자와 회사의 관계가 아니다. 살아 있는 인간인 노동자가 법률적 실체를 빼면 실체가 텅 빈 조직에 불과한 무생물인 회사와 동적인(dynamic)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노사관계에서 '사'는 회사가 아니라 사용자를 뜻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 문제를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4조2항은 현실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는 실질적 주체는 사용자가 아니라 회사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사용자 역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이해관계자의 일부로서 회사라는 법적 조직체로부터 보수나 급여를 받는다. 회삿돈을 사용자가 독점적·배타적·자의적으로, 쉽게 말해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지 않는 이상 자기 돈에서 노동자에게 급여를 주는 사용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사용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주머닛돈을 구걸할 이유도 없고 구걸해서도 안 된다. 노동자들이 만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단체인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돈을 구걸하는 하위 파트너가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사용자가 아니라 회사로부터 받듯이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회삿돈의 일부를 자신의 보수나 급여로 가져가듯이, 사용자는 법률과 협약으로 그 금액이 정해진 임금을 회삿돈에서 찾아 노동자에게 전달하는 재무 관리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박유기 지부장의 급여는 현대차 회삿돈에서 나오지, 단 한 푼도 정몽구 회장이나 윤갑한 사장 같은 사용자의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어디에도 사용자의 주머니, 즉 자본가 몫으로 지급된 회삿돈에서 전임자 임금을 챙기는 노동조합은 없다. 이는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떠나, 도덕 윤리의 문제이며, 그러한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범죄 조직과 다름이 없다. 물론 사용자들이 회삿돈에서 챙기는 것은 자신들의 보수나 급여만이 아니다. 골프를 치러 가도 그 비용을 회사에서 내게 하고, 고급 호텔의 숙박비나 식대도 회삿돈으로 처리한다. 휴일날 놀러 갈 때 타는 외제승용차도 자기돈이 아니라 회삿돈으로 구입한다. 심지어 숨겨 둔 애인의 승용차와 오피스텔을 회삿돈으로 처리한 경우도 있다. 수억원은 껌값이 된 해외 원정도박도 회삿돈으로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용자는 회사가 아니다. 노동자처럼 회사라는 현대적 조직체를 구성하는 이해관계자의 일부다. 이러한 제도적 현실과 법적 제약을 인정한다면, 회삿돈과 사용자의 개인돈은 다르다는 자명한 결론에 이른다. 현대적 기업 조직에서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를 사용자 개인 소유의 돈에서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노동조합은 없다. 사용자가 제 맘대로 굴리는 외제차 비용처럼 회삿돈에서 지급하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조법 제24조2항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활동을 침해하는, 법을 악용한 지배(the rule by law)의 대표적 사례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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