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공공부문 5개 산별연맹으로 구성된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도입하려는 성과연봉제를 해고연봉제로 규정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요새 성과주의가 공공기관을 집어삼키고 있다. 괴물을 만든 것은 기획재정부였다. 기재부는 올해 1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통해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기본급과 성과연봉의 차등 폭을 키우는 방안을 발표했다. 각 공공기관 소관부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과연봉제 미도입시 인건비 삭감과 경영평가상 감점, 업무 축소 같은 각종 불이익을 주겠다고 예고했다.

괴물이 출몰하자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공공기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강압과 인권유린, 불법이 난무했다. 노동자들은 숨죽이고 있다. 노조는 이사회 무효화와 법정 투쟁을 준비 중이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왜 성과연봉제를 반대할까. <매일노동뉴스>가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과 노조의 설명을 바탕으로 그 이유를 살펴봤다.

주먹구구식 추상적 평가, 육아휴직시 불이익?

A금융공기업에서 17년째 일하고 있는 서인덕(44·가명) 과장은 요즘 편치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가 일하고 있는 사업장은 9개 금융공기업 중에서도 드물게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개별 성과연봉제를 실시하는 곳이다. 2011년 제도 도입 후 매년 노사협상으로 개별 차등 폭을 줄이는 등 폐단을 바로잡아 왔지만 올해 그 벽이 다시 무너졌다. 금융위원회의 요구를 사측이 수용하면서다.

그동안 회사는 업적평가에 따라 최고등급(S)과 A~D등급으로 직원들을 구분해 성과급(평가급)을 지급했다. 1~3급은 성과급 격차가 최대 70%까지 났고, 4~6급은 격차가 17%였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회에서 취업규칙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4급을 1~3급과 동일한 성과평가 대상에 포함시켰다. 서 과장이 만약 내년에 최하등급(D)을 받으면 S등급을 받는 동료보다 성과급을 70%나 적게 받는 것이다. A사 직원들이 받는 월급 중 성과급 비중은 78%나 된다. 그만큼 직원들 사이의 임금격차가 앞으로 훨씬 벌어진다는 얘기다.

문제는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당사자도 모를 정도로 아리송하다는 점이다. A사는 매년 두 가지 내부 기준에 따라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한다. 성과급을 결정하는 업적평가의 경우 부실채권 회수율 같은 업무 목표를 주고 달성률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목표 설정은 관리자의 재량권이다.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역량평가는 기준 자체가 추상적이다.

<매일노동뉴스>가 A사가 활용하는 '개인종합평가세칙'을 입수해 살펴봤더니 △편견이나 사사로운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보장하며 △평가의 관대화 오류가 없도록 하라는 평가기준을 제시했다. 평가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

서 과장은 “업적평가에 쓰이는 계량 목표 역시 팀장의 자의적인 결정에 따라 누구에게는 많고 누구에게는 적은 목표가 주어진다”며 “역량평가의 경우 누가 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성실하게 일했느냐를 평가하는 것인데 상급자의 감정과 주관적인 판단으로 등급이 매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성과연봉제를 운영하다 지금은 폐지한 서울시동부병원도 비슷한 케이스다. 병원은 현재 상여금만을 성과에 따라 5단계에 나눠 차등지급한다. 구간별로 지급률이 15~20% 정도 차이 난다. 40점(1차 부서장 평가)·40점(2차 간호팀장 평가)·10점(병원장)·10점(동료) 평가로 이뤄진다.

간호직군으로 일하는 이미정(가명)씨는 “간호팀장이 전 직원을 평가하기 어려운 구조다 보니 1차 평가와 2차 평가의 점수가 그대로 겹치는 경우가 많다”며 “평가지표가 따로 없는 상태에서 등급을 정하는데, 공정하고 신뢰가 높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간호사·직원들은 상급자가 여러 사람을 1년 단위로 평가하다 보니 불합리하고 주먹구구식 채점이 이뤄진다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쓴 것이 감점요인으로 작용해 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정부가 자초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확대하라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을 뿐 "성과를 어떻게 측정해야 하느냐"는 노동자의 물음엔 입을 다물고 있다.

협업의 붕괴, 노동자의 파편화

성과연봉제가 확산될 경우 공공기관의 협업 문화를 해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기술보증기금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강아무개(43) 차장은 개별 성과연봉제 정착 이후가 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회사는 최근 금융위가 각종 불이익을 예고하자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 확대를 의결했다.

“보증업무에 대한 사후관리나 사고처리는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s)에서 제외되는 일이에요. 집단 성과를 평가하는 KPI가 앞으로 개별 성과측정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개별 성과연봉제가 되면 누가 평가에도 반영되지 않는 일을 맡으려 들겠어요.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인데 말이죠. 지금이야 팀별 평가를 받으니 누구 하나 못해도 같이 함께 가자는 분위기가 있죠. 그런 상황에서 개별 성과연봉제가 운영되면 팀이나 선후배, 동료 간 배척하는 분위기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철도 같은 네트워크 사업의 경우 업무특성상 부서별 유기적인 관계가 필수다. 전기·가스 등 에너지 사업장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밤새 가동된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은 “철도의 정비부서와 승무부서는 서로 연관된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는데 지역·팀·개인 간 성과 경쟁을 부추기면 협업 관행이 파괴돼 사업운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교대제로 24시간 시설이 운영되는 에너지사업장은 개별 성과연봉제를 운영하면 인수인계가 불완전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설계한 권고안은 기존 인건비를 기준으로 설계됐다. 한정된 총량에서 서로 파이를 뺏고 빼앗기는 구조라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는 필연적이다.

성과연봉제가 저성과자 해고제의 근거가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성우 정보경제연맹 정책국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결국은 노동자를 파편화해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인덕 과장은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선배가 새로운 업무를 가르치고 도와주는 도제식으로 운영된다”며 “성과연봉제가 확산되면 선후배가 노하우를 공유하는 일이 사라져 기관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낙하산과 성과주의 결합은 필연

그렇다면 성과연봉제는 공공기관에 뚜렷한 ‘성과’를 가져다주는 임금체계일까. 이명박 정부가 자랑했던 '자원외교'로 그 결론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해외 자원외교를 자신의 가장 큰 치적으로 내세웠지만 5년 임기 동안 한국광물자원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 등 자원 3사가 입은 부채는 무려 42조원이다. 그럼에도 자원 3사 기관장과 임원에게 지급된 성과급은 같은 기간 1천500억원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 시절 광물자원공사 사장 자리는 낙하산 관피아 몫이었어요. 간부들이 어떻게든 눈에 들기 위해 충분한 타당성 검토 없이 단기실적 위주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자주개발률이 경영평가 항목에 포함된 것도 당시의 일입니다. 자주개발률만 끌어올린 간부·임원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였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국민이 떠안게 된 거죠.”

선승대 광물자원공사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자주개발률은 정부가 국내외에서 개발·확보한 자원의 양을 국내 소비량으로 나눈 비율이다. 이명박 정부는 단지 이 수치를 높이는 것에만 집착해 경제성이 낮거나 취지에 맞지 않는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선 위원장은 “2013년부터 5급까지 개인평가를 통한 성과연봉을 지급하면서 조직 내 줄세우기 문화와 윗사람 눈치 보기가 팽배한 상황”이라며 “상급자의 잘못된 판단에도 실무자가 소신발언을 못하면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업검토 단계에서부터 부실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낙하산과 성과주의의 결합이 조직을 뒤흔든 사례는 금융공기업에서도 발견된다. 산업은행이 대표적이다.

홍기택 중앙대 교수는 2013년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산업은행 회장을 맡았다. 정책금융부문에선 문외한이었지만 박근혜 대선 캠프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이 회장 자리를 꿰찬 배경이라는 말이 많았다. 산업은행은 부실기업의 상징이 된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다. 지난해에만 4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고도 기업회생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홍 전 회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키운 책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입은 당기순손실은 1조9천억원이나 된다.

정명희 금융경제연구소 실장은 “성과연봉제가 금융의 공익적 기능과 내부 수익악화와 연결된다는 유의미한 데이터나 연구 결과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금융공기업에 대한 낙하산 관행과 이와 연결된 전문성이 결여된 실적주의 등이 조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산업은행에는 이미 성과연봉제가 도입돼 있는데 전체 연봉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34%로 금융공기업 중 최고 수준이다.

채수은 금융노조 기술보증기금지부 수석부위원장은 "비전문·낙하산 경영진은 어차피 자신이 3년짜리 계약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단기 실적으로 더 높은 자리를 노린다"며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성과연봉제에 목을 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기관과 남은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은 사라지고 ‘기관’만 나부껴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성과연봉제를 시작으로 공공기관에서 성과주의가 뿌리내리면 ‘공공’은 사라지고 ‘기관’만 남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홍성의료원은 2002년부터 의사실적에 따른 성과급제를 운영한다. 예를 들어 가정의학과의 경우 위·대장내시경이 한 달 500건 미만일 경우 의사 월급에서 건당 1만원을 삭감하고, 600건 이상이면 1만원을 가산한다.

홍성의료원 관계자는 “특정 검사를 할 때마다 의사가 인센티브를 받으니 폐렴으로 내원한 환자가 폐렴과 무관한 초음파 검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양심적인 의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처방만 하는데 병원이 이를 문제 삼으니 스스로 병원을 떠나는 일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과대)는 “지방의료원과 공공병원이 적자 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계속 수익을 내라고 압박하니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게 된다”며 “검사 건수를 성과로 측정하면 과잉진료를 유발하게 돼 의료공공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줄 세우기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엉뚱한 숫자를 앞세워 정작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정건수와 조정금액이 여기에 해당한다.

심사평가원의 업무 중 하나는 각 요양기관의 건강보험 청구가 의료행위에 걸맞게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만약 기준과 다르게 청구됐을 경우 조정을 요구한다. 그런데 정부는 2014년부터 조정건수를 공단 경영평가 지표에 포함시켰다.

장진희 심사평가원노조 부위원장은 “조정건수 증가율이 9개 지역 지원과 간부 성과에 직결되니 직원들이 어쩔수 없이 단돈 1원이라도 깎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며 “공단·국민·의료기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실적경쟁으로 공익적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노동계는 이 밖에 성과연봉제가 확대될 경우 강화될 국민연금공단의 지사별 납부율 경쟁이나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의 개별 합격률 경쟁도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다수의 민간 외국기업들조차 개인 간 경쟁을 통한 상대평가의 부작용을 파악하고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있다”며 “집단 작업이 많고 수익창출이 목적이 아닌 공공기관에 성과주의를 확산시킬 경우 공공서비스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실장은 이어 “공공기관이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유지·보수·안전업무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우람 기자/ 구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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