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전경. 최근 진행되는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사람부터 자르고 보는 식의 구조조정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료사진=정기훈 기자

“(인력 구조조정은) 크게 우려할 부분은 아닙니다. 2만명의 고용은 유지됩니다.”

지난 23일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노동자들이나 국민은 불안감을 거둬도 될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31일 기준으로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노동자 5만명 중 정규직은 1만3천여명이다. 사내하청을 포함한 소속 외 직원이 3만7천여명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인력감축으로 정규직은 1만2천명이 됐고, 사내하청과 물량팀 등 비정규직은 3만여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정 사장 말대로라면 앞으로도 2만명 정도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얘기다. 기업체 대표가 노동자 중 절반을 자르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시대다.

경제위기 폐해 ‘구조조정=고용조정’
심각한 부작용에 “최대한 막아야” 자성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인력감축이 시작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국제통화기금(IMF) 요구에 따라 긴축재정 정책이 시작됐다. 문어발식 경영을 펼치던 재벌대기업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노동자들은 말해 무엇하랴.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됐고, 파견이 허용되면서 고용은 불안해졌다. 또 한 번의 위기는 10여년 뒤에 닥쳤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다. 외환위기 때만큼의 구조조정은 없었지만 인력퇴출과 고용불안이 일상화됐다. ‘구조조정=고용조정’ 등식이 굳어졌다.

두 번의 경제위기가 준 교훈도 있다. 사람을 자르는 방식의 구조조정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기업 노사는 회사가 기운을 차린 뒤에도 여전한 불신감 탓에 반목했다. 실직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2016년, 다시 구조조정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산업 구조조정 방식은 달라졌을까. 여러 정황을 봤을 때 두 번의 위기를 반면교사 삼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은행권 중심으로 꾸려진 채권단이 기업에 자구계획을 요구하고 기업은 비용 감축, 특히 인력 줄이기에 골몰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던 사회안전망은 2016년에도 촘촘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인력재배치나 훈련·일시휴업 같은 고용유지지원 정책을 시행했다. 실직자들을 위한 재취업 훈련을 하고, 실업급여 혜택도 확대했다. 아울러 실직자들을 일시적으로 흡수하는 공공근로사업을 늘렸다.

이런 정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명칭을 바꾸거나 재정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부분 다시 시행됐다. 정부는 임시 일자리 양산이나 부실한 직업훈련 같은 문제점을 보완했다고 주장했지만 금융위기 당시 시행된 고용정책들은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정책은 재탕 삼탕 수준이고, 중장기 일자리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예컨대 금융위기를 계기로 희망근로사업이 시작됐는데, 외환위기 당시 대대적으로 시행됐던 공공근로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기 노인 일자리" 혹은 "용돈벌이 일자리"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금융위기로 청년고용이 악화하자 서둘러 도입한 중소기업 청년인턴제 역시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정부는 2009년 일자리를 지키거나 나누는 고용유지지원 사업에 무려 7천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영세기업들은 지원금액 부족을 호소했다. 지원제도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고용유지 노력한 기업 "경영에 도움됐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시행된 정부 정책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고용유지 또는 창출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 대책이 맨 앞에 배치돼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전이됐던 2009년 6월께 한국노동연구원이 1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노동연구원은 정부 지원이 고용유지에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를 물었는데, 기업들은 5점 만점에 3.86점을 매겼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기업 노동자들의 직장만족도는 지원을 받기 전 3점에서, 지원을 받은 후 3.5점으로 상승했다. 반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않은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직장만족도가 3.1점에서 2.9점으로 떨어졌다.

생산성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기업이 3점에서 3.4점으로 올랐지만, 받지 않은 업체는 3.1점에서 3.0점으로 하락했다.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경쟁력이 2.9점에서 3.4점으로 크게 상승했고, 제도를 활용하지 못한 기업은 3점에서 3.1점으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인력감축을 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고용유지 노력을 한다면 고용안정뿐 아니라 기업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정부가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인력축소는 큰 상처와 갈등만 남긴다는 것”이라며 “일자리 나누기처럼 사회적 갈등비용을 최소화하는 지원을 확대하고 제도를 홍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자리 나누기
임금동결·삭감보단 ‘근로시간단축’


금융위기 때부터 노사 간 ‘일자리 나누기 사업’이 본격화했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대개 일자리 나누기는 근로시간을 단축하거나 근무제도를 개편하고, 일부 공정을 휴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노동자를 전환배치하는 것도 포함된다. 범위를 넓히면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임금조정’도 있다. 여기에 고용유지를 넘어 신규직원을 채용하면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일자리 나누기가 된다.

그런데 일자리 나누기를 실시하는 기업들을 보면 가장 소극적인 방법인 임금조정을 많이 선택한다. 노동연구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9년 6월 기준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실시한 기업이 가장 많이 사용한 방식은 임금조정이었다. 기업의 26.3%가 임금조정형을 택했다. 고용창출형은 23.1%, 근로시간조정형은 15.2%, 기능조정형은 13.2%에 머물렀다. 고용창출형 일자리 나누기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보인 것은 이명박 정부의 청년인턴제 같은 정책 영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금조정형은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데다, 적용하기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노사갈등과 후유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도 임금 동결·삭감 여부를 놓고 노사갈등 조짐이 보인다.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조선업 상황을 보면 사내하청 근로자들과 정규직 간 고통분담을 위한 임금조정 전략이 필요하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로시간단축형·고용창출형 일자리 나누기로 나아가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 위기, 인적자원 키울 기회
“조선업종, 인력 확보해 재도약 대비해야”


고용위기를 이겨 내고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일자리 나누기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직업훈련이다. 직업훈련의 경우 훈련수당 등을 통해 소득 일부를 보전할 수 있다. 위기국면을 극복하거나 향후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직업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이 경제위기 국면이 닥칠 때마다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 이유다.

정부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칠 때마다 직업훈련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결론은 신통치 않았다. 교육시스템이 부실했고 기업들의 인식도 낮았다.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실시한 고용유지지원 사업 중 직업훈련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10월 기준으로 건수는 2.4%, 연인원은 5.5%에 불과했다. 금액으로는 7%에 그쳤다.

특정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고용위기를 맞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는 직업훈련과 인적자원 키우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일부에서는 조선산업이 사양화로 접어든 만큼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노동계는 물론이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를 부정한다. 우리나라 조선업계는 여전히 최고의 기술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업황이 바닥을 치고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숙련인력을 유지하고, 고급인력을 키워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왔을 때 필요한 인력을 단시간에 확보하기 위해 사내하청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현재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구조조정 대책을 보면 그나마 있는 숙련인력에 대한 총량 유지나 질적 향상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며 “이대로 가면 조선업 활황이라는 기회가 오더라도 잡지 못할뿐더러 숙련된 설계인력 없이 무리하게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는 바람에 겪었던 위기가 재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황 회복시 예상되는 산업·인력규모를 고려해 노동집약과 기술집약이 동시에 필요한 설계·배관·의장 분야 숙련인력을 유지·확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숙련인력을 확대하려면 고용유지지원 제도나 특별고용위기업종 지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간 제한에다 임금 일부만 지원하는 제도로는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이 연구위원은 “사용자·노조·정부, 그리고 채권단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특단의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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