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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산업 성장판 끊는 막무가내 구조조정] 조선업 거점 6대 도시마다 하청노동자 소리없는 눈물"조선업 위기가 아니라 조선 하청노동자 위기" … 구조조정 대책서 배제
제정남  |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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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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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유연화의 끝판왕이다."
"21세기 판 막장 인생이다."
"그동안 착취·수탈만 당한 것 같다."
"여기에서 떠나라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조선업 위기설과 조선소 구조조정 사태에 대한 개인 생각을 묻는 질문에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내놓은 응답 중 일부다. 답변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내용은 하나로 모아졌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현재와 같이 진행되면 비정규직들이 가장 먼저 잘려 나간다는 것.

20대 총선이 여소야대로 끝난 직후 정부가 속도를 올리고 있는 구조조정 정책은 사회 주요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앞다퉈 조선소들이 밀집한 거제 등을 찾아 조선소 노동자들과 협력업체 대표들을 만났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조직된 노동자가 적다는 이유에서일까. 비정규직노조들에도 사회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소형·중형·대형조선사들이 위치한 서해안과 남해안 6개 해양도시를 둘러봤다. 원청 정규직·1차 하청 정규직과 이른바 물량팀이라 불리는 하청 비정규직들을 두루 만나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들었다.<편집자>



조정래 소설 <아리랑>에서 아전 출신의 백종두는 일본을 지지하는 단체를 구성하는 등 친일행위를 일삼으며 권력을 좇는다. 일진회 군산지부장을 거쳐 죽산면장이 된 그는 꿈에 그리던 군수를 하지 못하고 만세시위 시위대에 맞아 죽는다. 인력거를 타고 거들먹거리며 군산 시내를 달리는 장면이 소설에 자주 묘사된다.

일제강점기 군산은 호남 일대의 곡창지대에서 거둬들인 미곡을 수합해 일본으로 송출했던 항구로 이용됐다. 군산 일대를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이유다. 일제 수탈의 상징으로 불리던 군산은 근래 전라북도 제1의 공업도시로 탈바꿈했다. 지난 24일 오후 전북 군산시 조촌동에 위치한 군산시청을 찾았다. 1층 휴게실의 한 벽면은 일제 수탈과 근대화의 역사, 공업도시로의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글귀와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지자체 특혜·지원금 챙겼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먹튀?

전북도와 군산시는 투자를 확정받기 위해 각각 100억원씩 총 200억원을 현대중공업에 지원했다. 산업단지 부지를 사용하는 데에서도 갖가지 특혜를 제공했다. 2007년 군산공장 투자가 확정됐을 당시 현대중공업은 지역에서 1천220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서동완 군산시의회 의원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채용 계획은 거짓말로 마무리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군산조선소에는 원청 직원 760명, 사내협력사 직원 3천700명이 일했다. 조선소에 기자재 등을 납품하는 사외협력사 직원은 1천500명이다. 정규직 중 절반 가량은 현대중공업 본사에서 일하던 인력이어서 현지에서 채용된 정규직원은 소규모에 그쳤다.

그런데 올해 2월 말 군산조선소 원청 직원은 500명으로 감소했다. 협력사 직원들의 감원 폭은 더욱 커 이제 3천200여명만 남았다. 해고자 중 조선업계에서 '본공'이라 부르는 1차 협력사 직원과 협력사 요청에 따라 별도 계약을 맺고 일하는 물량팀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지자체 조사에서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군산조선소에서 건조 중이거나 건조 예정에 있는 수주잔량은 올해 연말이면 고갈된다. 연말이나 내년 초에 대규모 인력감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서 의원은 "군산조선소를 울산으로 흡수한다는 소문이 현실화할 경우 협력사 직원들의 대량해고와 기업체 파산이 이어질 것"이라며 "원청 정규직은 울산으로 데려가면 되지만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모두 버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이 말하던 고용유발 효과는 다 어디로 갔느냐"며 "산업단지 부지를 매각한 뒤 철수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제에 수탈당했던 군산이 이제 대기업에 수탈당한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군산조선소에서 일감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일당벌이를 나갔다는 군산조선소 하청 비정규 용접공은 전화로 "땜장이 하루벌이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 주요 조선사들을 휘청거리게 만든 원인으로 해양플랜트 과당 경쟁이 꼽힌다. 현대삼호중공업은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2건을 진행했는데 1척은 다 만들고도 선주가 계약을 취소해 바다 위에 그냥 떠 있다. 다른 한 척은 아직 만들고 있다. 사진 오른쪽이 팔리지 않고 있는 시추선이다. 금속노조 현대삼호중공업지회

해양플랜트로 휘청, 만들어 놓은 시추선 팔리지도 않아

군산을 벗어나 서해안고속도를 따라 2시간여 남짓 달려 도착한 현대삼호중공업은 전남 목포시 인근 영암삼호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해 있다.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2건을 맡았다가 조선소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는 곳이다. 금속노조 현대삼호중공업지회(지회장 유영창)에 따르면 이곳에는 현재 1만3천여명의 원·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원청 정규직은 4천500여명이고 그 외에는 전부 하청노동자와 물량팀 노동자들이다. 물량팀 노동자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유영창 지회장은 "50% 안쪽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해양플랜트는 바다 속에 있는 석유·가스 같은 자원을 개발하는 데 사용하는 시추선·생산설비를 일컫는다. 삼호중공업은 최근까지 2척의 해양 시추선을 건조했다. 그런데 이미 완성된 1척의 시추선은 삼호중공업 앞바다에 덩그러니 떠 있다. 발주를 낸 선주가 계약을 취소해서다. 다른 1척은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해양플랜트 사업이 한창일 때 이곳에는 2만명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사업이 끝난 뒤 7천여명의 사내하청 본공과 물량팀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최근 현대삼호중공업은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지급하던 기성금(도급비)을 10%가량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하청 직원과 사내하청과 계약을 맺은 물량팀의 인건비도 일당 1만~2만원이 감소했다. 근로조건이 원청 의지에 따라 손쉽게 좌지우지되고 있는 셈이다.

이곳의 일자리 감소는 내년 초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유영창 지회장은 "올해까지 물량은 준비돼 있고 내년에는 60%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최근 대규모 인력이 빠져나가도 정부나 지자체는 이들을 떠돌이라고 봐서 그런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여파 조선소뿐 아니라 인근 산업단지까지 악영향

현대삼호중공업 물량 감소는 인근 대불국가산업단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불산단 중소업체들은 인근 현대삼호중공업·대한조선은 물론 멀리 통영의 성동조선해양·SPP·STX·현대미포조선에까지 물량을 납품한다. 주로 선박 블록이나 기자재를 만드는 데 삼호중공업에서 나오는 일감이 전체의 30%가량을 차지한다. 민주노총 목포지부에 따르면 대불산단에 있는 290여개 업체 중 생산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조선소 하청업체가 대불산단 업체에 재하청을 주고, 업체는 다시 물량팀에게 하청을 주는 구조가 일반화돼 있다.

대불산단 절대 다수 업체가 공장만 지어 놓고 필요에 따라 사람을 모집하면서 사실상 사람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거리가 감소하고 조선소들이 하청업체 허리띠를 조이면서 인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악화되고 있다. 대불산단에서 만난 수십 년 경력의 용접공 김선수(가명)씨는 "지난해 일당 17만~18만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13만원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조기형 금속노조 서남지역지회장은 "2008년께 대형 조선소들이 해양플랜트에 집중하면서 비정상적인 고용형태인 물량팀이 대거 늘어났는데 정부와 기업은 이를 조장·방치했다"며 "조선 경기가 악화하면서 일거리가 없어진 이들이 앞으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점을 정부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하청업체 사무실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한 조선소 내부 풍경. “해보고 생각하자”는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제정남 기자

"중·소형 조선소 목소리 무시 … 이대로 가면 통영의 실패 반복"

25일 오전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를 받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에서 만난 강기성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장은 "지금 구조조정 국면에는 중소 규모 조선소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조선 빅3로 불리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구조조정 압박을 받는 원인은 해양플랜트 실패에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 국면도 이들 3개 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구조조정은 중·소형 조선사에서 먼저 벌어지고 있다. 강 지회장은 "대형 조선소에 비해 재정이 열악한 중·소형 조선소를 어떻게 살릴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며 "정부가 구조조정 강행의지를 중·소형 조선소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성동조선해양의 과거를 곱씹어 보면 정부의 최근 구조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할 수 있다. 2013~2014년께 성동조선해양은 채권단 지원이 끊기다시피 하면서 문을 닫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상시적으로 일하던 8천여명의 직원이 3천500명으로 줄었다. 떠난 사람 대부분이 하청 직원과 물량팀들이었다. 성동조선해양을 비롯해 지역 조선사들이 경영상태가 악화하자 당시 정부는 통영시를 고용촉진특별구역으로 지정해 170여억원을 업체에 지원했다. 하청업체에 고용유지지원금을 90여억원 지급했지만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물량팀 노동자들은 지원대상에서 빠졌다.

지난해 국회에서 물량팀 4대 보험 미가입이 문제 된 이후 빅3를 비롯한 대형 조선소는 비정규직 보험가입률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중·소형 조선소의 환경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있다. 현재 성동조선해양의 정규직은 2천여명인 데 비해 사내하청과 물량팀 노동자는 각각 1천명과 5천여명으로 추정된다. 강 지회장은 "회사가 물량팀에 대한 현황을 일체 알려 주지 않지만 대략 절반 이상이 4대 보험에 미가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구조조정 파고가 지나면 정부 지원을 받지도 못한 채 비정규직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중·소형 조선소 대부분은 사라지고, 결국 대형 조선소만 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청노동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통영시 옆 고성 조선·해양산업특구에는 중·소형 조선소가 밀집해 있다. 이승호 거제통영고성지역 조선소하청노동자살리기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이 곳에 위치한 고성중공업·SPP·삼강앰엔티·EK중공업 등은 사실상 비정규직으로만 조선소를 운영했다. 생산직 정규직은 거의 없다. 하청업체 사장이 기성금을 들고 야반도주해 체불임금이 발생하는 사고도 잦다. 하청노동자살리기 대책위가 꾸려진 배경이다.

하청업체가 폐업·야반도주해 발생하는 피해는 본공과 물량팀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승호 집행위원장은 "과거 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한 조선소에서 일을 끝내고 다른 조선소로 곧장 이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갈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며 "구조조정으로 하청업체가 문을 닫게 될 경우 본공·물량팀 등 모든 비정규직이 피해 당사자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거제시 장평동 현대중공업 정문 인근에서 만난 배관공 이철수(가명)씨의 생각도 비슷하다. 중·대형 조선소에서 본공·물량팀으로 일하다 몇 년 전 삼성중공업에서 본공으로 일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수주량이 많이 남아 있는 탓에 잔업이 적지 않게 이뤄지고 있다. 일은 많은데도 구조조정 논란이 본격화하던 올해 초 일당이 2만원 깎였다. 그는 "물량이 많이 남아 있어 당장 고용위기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구조조정으로 하청업체가 폐업하면 본공·물량팀 상관없이 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날 저녁 거제시 고현동 거제시청 인근에서 만난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하선중(가명)씨는 "본공을 물량팀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임금체불이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 고용한 본공을 줄이고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물량팀을 이용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하씨와 함께 마주한 대우조선해양 본공 이선우(가명)씨는 "조선업 다단계 하도급으로 원청은 기성금을 통해 하청업체 생사여탈을 좌지우지하고, 고용에 대한 사용자 책임도 지지 않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며 "노동자를 쉽게 자르고 마음대로 부려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한 조선소 모습.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희망퇴직 홍역 한진중공업에 다시 긴장감

대규모 희망퇴직으로 몸살을 앓았던 한진중공업에도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이달 10일 채권단과 상선부문을 중단하고 군 수송함 등 특수선을 중심으로 조선소를 운영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내년 초 상선 물량이 마무리되면 그곳의 정규직을 특수선으로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그럴 경우 지금 특수선에서 일하고 있는 사하내하청 노동자 500여명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상선 분야 비정규직 1천명도 한진중공업을 떠날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지회장 박민식)는 이 같은 양해각서를 반대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민식 지회장은 "이곳 현장의 비정규직 중에는 STX조선 등 다른 조선소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일거리를 찾아 여기에 왔는데 앞으로 닥칠 구조조정 파고를 이들이 제일 먼저 맞게 된다는 점에서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부산·양산·김해 일대 449개 조선 기자재 협력업체에 2만4천명이 일하고 있다. 조선업 불황으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대불산단과 비슷한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기술력 없이 인건비 착취로 연명하는 하청업체"

울산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들이 꾸린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지회장 하창민)는 조선소 비정규직들이 만든 유일한 노조다. 같은날 오후 울산 동구 전하동 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하창민 지회장은 "기술력 없이 하청노동자 인건비만 따먹고 있는 지금과 같은 하청업체들을 존속시켜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하청업체를 없애거나 적어도 300인 이상 규모를 갖춰 사용주로서 책임을 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청업체는 물량을 받기 위해 원청 관계자에게 상납 등 로비를 하고, 물량팀은 일거리를 찾기 위해 하청업체 사장에게 로비를 합니다. 원청에 밉보인 하청업체는 기성금을 삭감당해 폐업해요. 원청은 폐업을 이용해 물량을 손쉽게 조절하고, 생산직 노동자들의 고용의무도 회피합니다. 하청업체는 생산장비 등을 전적으로 원청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기술력을 보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모아 손쉽게 하청업체를 만들 수 있어요. 고용유연화가 극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조선업의 현주소입니다."

"조선 하청비정규직 위기가 현 사태 본질"

이날 저녁 울산 일산해수욕장 인근에서 만난 박가람(가명)씨는 20년 된 숙련 조선노동자다. 하청노동자로 지내 온 그는 2000년 일당 15만원을 받았다. 올해 일당은 13만원이다. 조선업 고용형태와 근로조건은 왜 이렇게 형성돼 있을까.

앞서 한진중공업에서 만난 박성호 전 지회장은 "민주노조 간부라던 우리들이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미약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비정규직 확장을 막지 않고 방치하면서 고용형태 전반이 기형적으로 변한 것 같다"며 "민주노조가 책임자고 간부 출신인 제 잘못도 크다"고 밝혔다.

3일간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을 함께 만난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세계 1위 조선산업을 지탱해 왔던 하청노동자들이 한마디 말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데 정작 진단과 처방에서 그들은 철저히 배제돼 있다"며 "지금 상황은 조선업의 위기가 아니라 조선 비정규직의 위기"라고 말했다.
 

 "빅3 조선사 블랙리스트 만들어 공유한다"
노조 결성 차단, 비정규직 관리용 주장 … 사측 "금시초문"


해양도시 순회 과정에서 만난 이승호 하청노동자살리기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불안·체불임금 등의 사건은 하청노동자들이 직접 노조를 꾸려 쟁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이들이 노조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면서 노조설립을 시도했거나, 회사에 밉보인 하청노동자들의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는 정황도 끊이지 않고 증언되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최근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본공·물량팀 노동자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이 제한된 사건이 발생했다. 하청업체 사장이 체불임금을 주지 않고 도주하자 원청 관리자가 임금 지급을 약속했다.

하청업체를 새로 맡은 다른 사장은 고용승계를 약속하는 대신 체불임금의 70%만을 보장하겠다고 제시했다. 100% 지급을 요구하는 20여명 노동자들에게 새 사장은 "전액 지급할 테니 회사를 떠나라"고 말했다.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과정을 원청 관리자가 지켜봤다. 대우조선해양을 떠난 하청노동자 중 한 명은 재취업을 위해 삼성중공업 하청업체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신체검사까지 실시한 뒤 출입증을 발급받으려던 당일 지원서를 낸 하청업체 직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원청이 출입증 발급을 거부했다"고 알려 왔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하청노동자 5명이 집단 입사지원 서류를 또 다른 삼성중공업 하청업체에 신청했다. 하청업체 관계자는 "단체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전조회에서 걸려 발급이 안 됐다"고 말했다.

하창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빅3 조선소가 블랙리스트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집행위원장은 "노조 결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비정규직을 길들이기 위해 조선소들이 블랙리스트를 이용하는 것으로 안다"며 "실체가 확실하게 드러난 데 따라 관련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회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3만원가량 깎았다. 그런데 지회 대의원이 있는 두 개의 하청업체에서는 임금 삭감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 지회장은 "원청이 지회를 지켜보고 있고 또 어느 정도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며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거나, 원청에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블랙리스트는 처음 들어 본다"며 "협력사가 요청하는 사람에 대해 출입증 발급을 거부하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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