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자들이 해당 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집단소송에서 연이어 승소했다. 공공기관의 임금 지급관행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유사 판결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는 26일 IBK기업은행 노동자 1만1천202명이 정기상여금과 전산수당·기술수당·자격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노동자들이 회사에 청구한 미지급금액 780억원을 모두 인정했다.

◇'재직자 규정' 있어도 고정성 인정=기업은행 통상임금 사건의 쟁점은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다. 기관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보수규정에 ‘재직자 규정’이 있을 때, 그 자체로 통상임금의 고정성 요건을 부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포인트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뒤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재직자 규정이 있으면 통상임금의 성질을 부정하는 판결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최근 들어 재직자 규정이 있더라도 해당 임금의 성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상임금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업은행은 연 600%의 정기상여금을 1·2·5·7·9·11월의 ‘첫 영업일’에 지급했다. 통상 후불로 정기상여금을 지급하는 민간기업과 달리 기업은행은 전액 선불로 정기상여금을 지급했다. 선불급이기 때문에 지급일 당일 재직 중인 노동자는 모두 정기상여금을 받을 수 있다. 상여금을 받은 뒤 퇴사한 노동자의 경우 이미 지급된 상여금이 평균인금에 반영돼 퇴직금이 지급됐다.

이날 현재 판결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기업은행 정기상여금의 이 같은 특성을 고려해 고정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건을 대리한 임택석 변호사(법무법인 위드유)는 “기업은행 정기상여금은 첫 영업일에 지급하기 때문에 선불급 성격을 갖고, 퇴직자에게 미지급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재판부가 이런 사정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단체협약과 보수규정이 충돌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정기상여금의 고정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복지포인트도 통상임금=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 노동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노동자들이 이겼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2부는 이날 공단 직원 2천983명이 복지포인트와 직급보조비·정기상여금·장기근속수당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노동자들의 청구액 194억원을 전부 인용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공단 통상임금 사건의 쟁점은 복지포인트와 직급보조비의 고정성 여부다. 특히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도록 기관이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복지포인트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공공기관 통상임금 사건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이에 대한 하급심 판결은 엇갈려 왔다.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서울메트로 통상임금 사건에서 “고정적·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 복지포인트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금이란 그 명칭을 불문하고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모든 금품을 의미한다”며 “복지포인트가 통화의 형태로 제공되지 않는다거나 사용범위가 제한된다고 해서 임금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월 서울의료원 통상임금 사건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판결했다.

반면 3월 서울고법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통상임금 사건에서 “복지포인트는 소정의 근로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복지포인트는 자기계발·건강검진·가족친화 등 정해진 용도에 사용한 후 사후적으로 공단이 결제를 하는 방식이어서 금전과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공단 사건을 대리한 장진영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재판부의 구체적인 입장은 판결문이 나와야 알 수 있지만 노동자에게 기본적·공통적으로 지급되는 복지포인트의 임금성을 인정했다는 것에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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