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21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산업재해 발생 신고대상을 "사망 또는 휴업 3일 이상"에서 "사망 또는 휴업 4일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기한도 "산재 발생 1개월 이내"에서 "고용노동부 시정지시 뒤 15일 이내"로 유예했다. 노동부는 산재 발생 보고제도의 조속한 정착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나타나는 산재은폐 사례를 중심으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릴레이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

2012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출근 후 탈의실에서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하청업체는 119를 부르지 않고 트럭으로 병원에 후송했고 노동자는 사망했다. 119를 불러 응급조치를 했다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는데 트럭으로 후송하다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동자들은 매우 분노했다. 더구나 사고 노동자를 트럭에 실어 후송하는 일은 당시 비일비재했고 그 이유가 현대중공업 원청에 산재발생을 숨기기 위해 하청업체들 사이에서 만연한 후송방식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이 사건 이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와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는 현대중공업에 만연한 산재은폐를 바로잡고자 산재은폐 실태조사 사업을 진행했다. 2013년 3월 2주간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지역 10개 병원을 돌며 산재은폐를 조사해 106건을 적발했다. 적발된 106건은 고용노동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집단으로 진정·민원을 제기했다. 그 후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현대중공업 산재은폐 실태조사 사업을 했고, 산재은폐 사례 280여건을 적발해 노동부에 집단 진정을 하는 등 기나긴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도 10일간 산재은폐 실태조사를 했다. 병원 방문조사 16건, 현장 제보와 노동조합 상담을 통해 확인된 26건, 사고 즉보 수집 20건 등 62건을 모아 노동부에 집단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단 5건에 대해서만 산재은폐를 인정했다. 재해일과 다친 부위, 소속업체, 사고경위 등을 동영상·사고 즉보·산재상담일지·진단서 등을 통해 입증했음에도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노동부는 산재발생 보고기한을 넘겨 신고한 경우 관대하게 산재은폐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사고경위로 보아 중상자이지만 휴업치료를 하지 않고 회사에 출근하며 통원치료를 한 경우 3일 이상 휴업치료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은폐를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소 다단계 하도급 먹이사슬 최하층 물량팀 노동자에 대해서는 소속사업장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고사실이 확인되나 법인이 폐업했다는 이유로, 다친 노동자의 진료기록이 병원에 없다는 이유 등으로 산재은폐를 인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업체 지정병원은 그동안 초진기록을 허위로 작성하는 방법으로 사업주의 산재은폐에 협조하는 단계를 넘어 다친 노동자의 진료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산재은폐에 협조하는 것으로 충분히 의심할 수 있음에도 노동부는 단 한 건도 추가조사를 하지 않은 채 조사를 마무리했다.

심지어 노동부는 진료를 받는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 자료를 제출한 경우와 골절상을 입어 수술이 필요해 장기간 치료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에도 추가조사를 하지 않고 병원 진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은폐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만연한 산재은폐에 대해 노동부는 이를 바로잡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치료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중대재해 빈발의 그 이면에 고질적인 산재은폐가 있고 산재은폐 적발을 통해 노동현장을 개선해 안전하게 일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발로 뛰며 산재은폐를 적발하고 고발해도 노동부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노동부는 이제 대놓고 산재은폐 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주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고 입법예고를 했다. 하청노동자들이 열심히 산재은폐 사실을 적발해 노동부에 진정을 한다 해도 노동부가 사업주에게 시정지시를 하고 15일 이내에 산업재해조사표를 내기만 하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고공에서 떨어지는 족장 파이프에 가격당해 다쳐도 다친 몸으로 출근 해 출근도장만 찍으면 사업주의 부당한 강요가 있든 말든, 그 노동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든 말든, 사업주 눈치를 보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든 말든 휴업 4일 이상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노동부는 나팔을 불려고 한다.

그런 노동부라면 ‘노동’이란 이름을 걸 자격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에 역행하기에 단호히 반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