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정부는 노사의 합의가 없더라도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 지난 23일 정부 입장을 전달한 보도의 요지다. 요새 가장 뜨거운 노동 현안은 바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이다. 선거에 패한 결과를 받아들여 정부가 입장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패배가 도리어 ‘오기’를 불러온 것 같다. 그나마 여당 입장이 바뀐 것은 다행이다. 지난주 여야 3당은 성과연봉제 도입시 노동조합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사합의 없이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담당관은 "개별 기관이 의결하거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이러한 정부 입장은 판례와 관계법령 등에 따른 것"이며 "노사 합의는 권장사항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현재 60여개 남짓의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고 10여곳 이상은 노동조합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을 거친 상황이다.

먼저 정부의 발언이 진심이 아니길 바란다. 오히려 노동법에 무지한 탓이라면 좋겠다. 실수였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의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명백한 위법이기 때문이다. 노사 합의는 권장사항이 아니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위법임을 알면서도 위법한 법 집행을 하겠다는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무엇을 말하는지 듣고 싶다. 관심법이라도 사용할 능력이 있는 건가.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릴 만큼 어려운 말이다. 더구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법원의 판단이 그리 많았던가.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필자가 확인한 내용으로는 아직까지 없다.

위법한 행정과 법률 무시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법을 집행하면서 동시에 수호하는 헌법기관이다. 그런 정부가 위법행위에 솔선수범한다니. 모름지기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지켜질 때 의미가 있지 않겠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보더라도 정부의 최근 노동행정은 위헌으로 평가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노동기본권(헌법 제33조)과 근로기본권(헌법 제32조)의 보장을 받는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행정지도·지침을 포함해 단체협약에 대한 과도한 시정명령은 모두 헌법 위반이다.

단체협약이라는 게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자유롭게 합의한 근로조건이 아니겠나. 계약이기 때문에 합의 내용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 더구나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 3권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은 더 높은 수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최근 내린 단체협약 시정명령의 주요 이유는 “회사의 경영권 침해”라는 게 대부분이다. 위와 같은 기초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노동 3권에 회사의 경영권을 견줄 수 있는 것인가. 노동 3권은 개별적 기본권으로 명백히 규정돼 보호되지만 경영권은 ‘경제질서’에서 찾아 낼 수밖에 없다.

마침 한국노총에서는 '정부의 단체교섭 지도개입 행위의 위법성과 대책'이라는 주제로 긴급세미나가 열렸다. 김선수 변호사는 발제에서 “단체협약 내용에 대해 노동부가 위법 여부를 심사해 단체협약을 시정하라고 명령하는 하는 것은 헌법 제37조의 과잉금지원칙에 반하므로 위헌”이라고 지적하면서, “노동부의 불필요한 지도는 노동현장의 분쟁을 야기하고 결국 노사 양측의 불신과 대립만 조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면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문제 해결의 1차 주체가 해당 노동조합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를 중심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정부청사 앞에서, 국회 앞에서 농성과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한편 기대를 해 본다. 다음주면 새로운 국회가 열린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고 보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수호해 줄 국회를 원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국회다. 시급한 현안이 많겠지만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 기본권 수호를 의정활동의 앞선 순위에 두길 소망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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