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21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산업재해 발생 신고대상을 "사망 또는 휴업 3일 이상"에서 "사망 또는 휴업 4일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기한도 "산재 발생 1개월 이내"에서 "고용노동부 시정지시 뒤 15일 이내"로 유예했다. 노동부는 산재 발생 보고제도의 조속한 정착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나타나는 산재은폐 사례를 중심으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릴레이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미조직비정규부장

노동자들이 질병이나 부상을 당했을 때 치료를 지원하는 체계는 국민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이다. 이 중에서 업무상 발생한 재해나 질병에 대해서는 사업주가 100% 납부하는 산재보험료를 통해 치료를 하고, 업무 외의 질병이나 부상에 대해서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각 50%씩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를 통해 치료를 지원하는 체계다.

건강보험공단은 적자운영 운운하며 매년 건강보험료 수가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료 수가인상의 한 축은 바로 산재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하는 공상을 비롯한 산재은폐 때문이다.

노동부 공식통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산재은폐 적발건수는 1천~2천여건이지만, 노동부가 실제 사업장 점검을 통해 산재은폐를 적발한 것은 이 가운데 1%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산재은폐는 건강보험공단 보험심사로 걸러진다.

2014년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 2012년 사업장 감독을 통해 산재은폐를 적발한 것이 224건인데, 그중 유성기업이 100건, 기아차 광주공장이 86건이었다. 224건 중에 186건이 두 개 사업장에서 적발된 것이다. 노동부는 사회적 물의를 발생시킨 사업장에 대해서만 실제 조사를 통해 산재은폐를 적발한다. 반면 일반 사업장 감독은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탓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산재은폐 적발건수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노동부는 올해 3월16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악하겠다고 밝혔다. 개악되는 주요 내용은 △산업재해 발생보고 대상을 현행 3일 이상 휴업에서 4일 이상 휴업재해로 변경하고 △노동부가 산재은폐 범죄를 파악했을 때 사업주에게 시정기간을 15일간 부여해 기회를 주고, 과태료 부과에도 산재발생 보고를 안 하면 그때 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악안은 노동부가 산재은폐를 대놓고 조장하고 부추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산하 한국타이어지회는 지난해 10월6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산재은폐 실상에 대한 기자회견을 국회 정론관에서 진행했다. 그리고 한국타이어에서 발생한 산재은폐의 일부에 대해 고발장 제출과 동시에 사업장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한국타이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대신 사업장 일반점검을 통해 대전공장 11건, 금산공장 7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조(산업재해발생보고)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2014년 3월12일 개정 전 내용은 사망 혹은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한 경우 노동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었지만 2014년 3월12일 시행규칙을 일방적으로 개정하면서 사업주의 산재은폐에 날개를 달아 줬다.

한국타이어에서도 실제로 업무상사고로 재해를 입고 응급차로 실려 가서 3주 이상 진단을 받은 노동자가 있었다. 하지만 2일만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하고 나머지 기간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했고, 회사에 나와서 실제 근무를 하지 않아도 근무로 인정해 주는 공상처리를 하게 되면 3일 이상 휴업치료가 아니기에 산재발생보고의무가 생기지 않게 됐다. 사업주는 노동부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교묘하게 합법적으로 산재를 은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한국타이어는 산재은폐 기사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매일노동뉴스>에 정정보도 요청을 했다. <매일노동뉴스>는 “본지 10월8일자 2면 ‘한국타이어 최근 두 달간 산재사고 10건 은폐’ 기사와 관련해 한국타이어는 11일 '기사에서 예로 든 8건의 사고 중 3건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라 관할 고용노동청에 정상신고가 됐고, 나머지는 사고자의 재해 정도가 3일 이상 휴업을 요하지 않아 신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알려 왔다”고 공지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가 대전지방노동청 산재예방지도과장을 면담한 자리에서도 과장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이러한 공상치료에 대해서는 산재은폐로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했다.

2014년 노동부가 일방적으로 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4일 이상 요양치료→3일 이상 휴업치료)으로 인해 사업주들이 보다 용이하게 산재를 은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고, 2016년 개악되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으로 보다 폭넓게 산재은폐를 하라고 조언을 한 셈이다. 산재예방과 사업장 점검을 해야 하는 노동부가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산재보험제도와 건강보험제도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악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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