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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기고-산재은폐 부추기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②] 파견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은 없다장안석 인천지역 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활동가

정부가 지난달 21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산업재해 발생 신고대상을 "사망 또는 휴업 3일 이상"에서 "사망 또는 휴업 4일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기한도 "산재 발생 1개월 이내"에서 "고용노동부 시정지시 뒤 15일 이내"로 유예했다. 노동부는 산재 발생 보고제도의 조속한 정착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나타나는 산재은폐 사례를 중심으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릴레이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 장안석 인천지역 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활동가

최근 부천지역 전자업체에서 메틸알코올(메탄올)로 실명 위기를 맞은 노동자 다섯 명은 모두 파견노동자였다. 다섯 명에게 발생한 실명이 메탄올로 인한 급성중독(직업병)임을 확인하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깝다. 첫 번째 피해자가 이상 증세를 느껴 병원에 갔지만, 원인을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다음날 출근해 근무를 하던 중 갑자기 눈이 안 보여 좀 더 큰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행히 그 병원에는 ‘직업병이 아닌지 의심하는 의사’가 있었다. 그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물어보는 것’이었다. 무슨 일을 했습니까? 어떤 화학물질을 취급했습니까? 어떤 제품을 만들었습니까?

1차 시도는 실패했다. 그 파견노동자는 이미 의식도 불안정하고 갑자기 눈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공포감에 질려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사용사업주도 파견사업주도 그 노동자에게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안전 및 보건상 의무는 사용사업주에게도 있지만,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조업 파견노동은 사실상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파견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4대 보험이나 고용기록상 그 파견노동자는 없는 사람이 된다. 즉 공식 기록으로는 ‘유령’이 된다. 이런 노동자에게 발생한 실명이 ‘직업병임을 확신하고 노동부에 제보해 점검해 나가도록 조치를 취할 생각을 하는 의사’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신고해야 할 의무가 명확히 있는 사업주의 경우는 어떨까. 공식 기록에도 없는 파견노동자에게 직업병을 의심할 만한 급성 증상이 나타났는데, 그 사용사업주가 노동부에 신고를 할까. 아니면 파견노동자를 공급한 파견사업주가 신고를 할까. 둘 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을 피하기 위해, 산재보험 재해율을 은폐하기 위해, 손해배상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신고하지 않을 것이다.

파견노동자인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 더 큰 책임은 사용사업주에게 있지만 산재가 발생했을 때 산재보험상 사용자는 파견사업주가 된다. 피해가 발생한 곳의 책임자와 피해 결과를 처리하는 책임자가 다르다.

심지어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실정이다. 이런 구조에서 파견노동자는 산재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더구나 파견사업주는 6~12개월 단위로 폐업과 개업을 반복한다. 근로기준법·파견법 위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다. 파견노동자에게 직업병이 발병해도, 파견사업주가 폐업을 한 뒤 다른 법인을 개업하면 산재보험상 사용자는 없어지는 형국이다.

4대 보험과 고용기록으로는 유령에 해당하고, 산업안전보건법도 지켜지지 않고, 산재보험에 대한 접근성도 낮은 파견노동자에게 발생하는 산재는 계속 은폐된다. 산재가 은폐되고 있으니, 당연히 현장의 위험요인은 개선되지 않는다. 파견노동자만 돌고 돌면서 노출되고 다치고 병드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동부는 사용자의 산재발생 보고의무 기준을 개악하겠다고 한다. 산재가 은폐되면 될수록 '노동부' 역할은 작아지고 '고용부' 역할이 커지는 것인데, 이를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악안 철회는 물론이고, 산재은폐를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독일은 직업병과 산재사고가 의심될 때 병원이 노동부에 신고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건강보험 수가보다 산재보험 수가를 더 높게 책정해 병원이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면 높은 수익을 얻게 하는 유인책도 있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일하다가 다치고 병들고 죽는 사회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 산재를 신고하게 하면 노동부가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감독관을 더 늘리면 된다. 그러면 진정으로 산재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안석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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