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는 회사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 이사 전원으로 구성되는 주식회사의 필요상설기관이다. 상법 제393조가 명시한 이사회 권한 관련 내용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 △이사회는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독한다 △이사는 대표이사로 하여금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해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사는 3월에 1회 이상 업무 집행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등이다. 상법 제389조에 따르면 회사 대표이사는 이사회 결의로 선정해야 한다.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와 견제”

상법 제382조는 해당 회사의 일상적인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이사, 즉 사외이사(社外理事)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처음 도입된 사외이사는 대기업에서 하나의 유행이 됐다. 하지만 도입취지인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와 견제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는 별다른 기여를 못했다.

한 언론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49개 기업집단을 조사한 결과 2014년 사외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한 1만3천284표 중 99.7%인 1만3천243표가 찬성표였다. 현실의 사외이사는 ‘예스맨’이다. 법적 요건을 위한 구색 맞추기 혹은 로비 목적으로 사외이사를 임명하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의 '2014년 대규모기업집단의 사외이사 분석'에 따르면 사외이사 직업에서 관료·법조계·학계·언론계·정치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75.7%나 됐다.

사외이사들이 기업 이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는 전관 챙기기와 법조비리 의혹을 받는 홍만표 변호사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홍만표는 2011년 8월 검찰을 떠난 후 줄곧 기업 사외이사를 맡아 왔다. 2011년부터 3년간 재벌가 김우중의 사위가 회장으로 있는 이수그룹 계열사에서, 지난해 3월부터는 LG전자에서 사외이사를 했다. 이수그룹 계열사 이사회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는데, 매년 2천500만원 안팎의 보수를 받았다. LG전자 이사회에는 100% 참석했다니 연보수가 엄청날 것이다. 법대를 나와 고시에 합격해 특수통 검사로 일하다 검사장으로 퇴임한 사람은 재벌기업 이사회에서 어떤 발언을 했을까. 기업의 투명한 경영과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을까.

LG전자는 “사외이사는 각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우수한 분들로 구성이 돼 회사 경영에 대한 실질적인 모니터링 및 견제 기능을 수행하고, 충실한 조언 제공을 통해 객관적인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이사들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회사가 제공한 자료를 사전에 검토한 후 이사회에 참석함으로써 회사의 중요한 경영 사항이나 계열사 내부 거래, 경영진의 업무 집행 등에 대해 활발한 의견 개진과 함께 냉정한 평가와 감독을 하고 있다”고 홍보한다.

홍씨가 LG전자 사외이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검사장을 역임했기 때문이고, 변호사 자격증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홍만표 사외이사는 재벌 이사회에서 어떤 인권을 옹호하고 무슨 사회정의를 실현했을까. 답도 빤한 웃긴 질문은 돈 몇 푼에 자본가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영혼 없는 거수기로 전락한 교수·변호사·장관·판사·관료·정치인 출신 모든 사외이사에게도 적용된다.

삼성전자 이사 9명 중 사외이사 5명

삼성전자 이사회는 총 9명 이사 중 5명이 사외이사다. 신한은행 은행장 출신 이인호(2010년 선임),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인 이병기(2012년 선임), 연세대 총장 출신 김한중(2012년 선임), 검찰총장 출신이자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송광수(2013년 선임), 이명박 정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고 성균관대 교수로 있는 박재완(2016년 선임)이 삼성전자 사외이사다.

LG전자 이사회도 총 9명 중 5명이 사외이사다. 전관 챙기기와 법조비리 의혹의 중심에 선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출신이자 현직 변호사인 홍만표(2015년 3월 선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이창우(2016년 3월 선임), 한국휴렛팩커드 사장 출신 최준근(2015년 3월 선임), 서울대 공대 교수 주종남(2016년 3월 선임), 인도네시아 진출기업 세븐에듀 재무이사 김대형(2016년 3월 선임)이 LG전자 사외이사다. LG전자는 “사내이사 1인과 사외이사 1인으로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 엄격한 심사를 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 책임이사가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홍만표다.

경영학원론에 따른 이사회의 역할은 △회사의 전략·계획·예산에 대한 승인 및 회사의 실적 감시 △주요 자본 지출 및 주요 사업부문 매각 또는 인수에 대한 승인 △자본 구조, 배당 정책, 재무제표의 정확성 및 투명성에 대한 승인 △회사가 직면한 주요 위험 파악 및 관리 보장 △CEO의 임명과 평가, CEO 후임자 선정 계획 수립 △고위 임원의 보수에 대한 승인 △법과 공동체 규정의 준수, 회사를 위한 윤리규정 마련 등이다.

이들 업무와 관련해 한국의 사외이사제는 “회사 경영에 대한 실질적인 모니터링 및 견제 기능을 수행하고, 충실한 조언 제공을 통해 객관적인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고, 급격하게 변하는 기업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낡은 제도로 전락했다.

적절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써 기업이 직면한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효과적인 관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외이사제를 개선하는 방안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사회 구성에서 회사 사정도 잘 모르고, 교수나 변호사 등 본업에 바빠 구체적인 기업 사정에 무지하면서 관련 정보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외부 인사를 줄이고, 노동자 대표나 노조 대표 중에서 이사를 선임하자. 예를 들어 총 9명의 이사로 구성되는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이사회 구성을 사내이사(임원) 3명, 노동이사 3명,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LG전자는 ‘노사(勞使)’라는 말 대신 노경(勞經)이라는 용어를 개발해 93년부터 써 왔다. “노사는 수직적 관계를 내포한다. 노동자도 회사 경영의 한 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자 대신 경영자란 말을 쓰게 됐다. 영어 표현을 보더라도 노경(labor-management)이 더 정확하다”는 게 LG전자의 논리다.

물론 이 논리는 현실을 가리는 허황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노사는 수직적 관계를 내포할 수도 수평적 관계를 내포할 수도 있다.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력을 사용하는 자가 사용자다. 모든 기업은 노동자가 제공한 노동력을 사용자가 사용함으로써 상품과 용역을 만들어 이윤을 창출한다. 이렇게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관계를 우리 인식에서 추상화시킨 개념이 노사다. 현실 자체가 종속적인데, 말을 바꾼다고 수평적이 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현실이 수직적·종속적임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대로 실현될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자유롭게 결사하고, 단체로 교섭하고, 단체로 행동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중요 정책을 사전에 협의하고,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제공된다면 노동력 사용권이 사용자에게 있는 불평등한 현실을 상당 수준 보정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로 ‘노경(奴卿)’ 관계 극복해야

불행하게도 노경(labor-management)은 자본주의 체제에 필연적인 노사의 수직적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로 탄생한 개념이 아니다. 노동자도 참가할 수 있고 참가해야 하는 경영의 영역을 노동에 대립시킴으로써 경영은 노동자가 근접할 수 없는 사용자만의 독점 영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언어적으로 세뇌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LG의 이데올로그들이 설명하는 대로라면 93년 처음 도입된 노경 개념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쯤 노동자 경영참가(workers’ participation in management)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노동조합 경영참가를 격려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대기업-정규직 기업별 노조주의에 입각한 가부장적이고 온정주의적인 ‘노무’ 관리기법을 도입해 노사관계의 수직성을 강화시켜 왔다. 그 결과가 검사 경력만으로 홍만표 같은 사람이 이사가 돼 LG전자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데도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한마디 못하는 ‘수직적’이고 전근대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노동이사제 도입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많다. "노동자는 회사 경영에 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노동자대표나 노조위원장 정도 되면 변호사 업무와 수임으로 바쁜 전직 검사장이나 연구와 수업에 정신없는 현직 교수보다 실무적으로 회사 경영에 더 밝고, 조직 안팎의 위기를 더 잘 인식한다. “회사 경영에 대한 실질적인 모니터링 및 견제 기능을 수행하고, 충실한 조언 제공을 통해 객관적인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노동조합 등 노동자단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집단은 없다.

문제는 사용자, 즉 자본가들의 인식이다. 내가 마당쇠처럼 너를 부리는(使用) 데 너랑 나랑 같이 앉아서 경영을 논한다고? 너는 임금 받고 그냥 노동력만 제공하면 돼. 경영은 나랑 말이 잘 통하는 자본가·변호사·교수·관료·장관·정치인 같은 지체 높은 양반들하고만 할게. 회사의 도전과 미래? 너희들은 그딴 것 신경 꺼. 이런 점에서 LG의 노경은 본질적으로 노동자 경영참가와 실질 관계가 없는 봉건적 노사관계, 즉 노비와 주인님의 노경(奴卿)에 다름 아니다. 삼성 같은 반노동까지는 아니지만 별반 새로울 게 없는 한물간 개념인 것이다. LG전자 사외이사가 홍만표인 오늘의 현실은 국민경제의 건강한 발전은 물론 기업 경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위해서도 노동자 경영참가제와 노동이사제 도입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분명히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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