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21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산업재해 발생 신고대상을 "사망 또는 휴업 3일 이상"에서 "사망 또는 휴업 4일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기한도 "산재 발생 1개월 이내"에서 "고용노동부 시정지시 뒤 15일 이내"로 유예했다. 노동부는 산재 발생 보고제도의 조속한 정착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나타나는 산재은폐 사례를 중심으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릴레이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이승현 건설노조 정책국장(공인노무사)

올해 3월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신축현장. 6개월째 형틀 목수로 일한 박아무개씨는 작업 장비를 들고 사다리를 올라가다 추락해 왼쪽 발목이 부러졌다. 철심을 박는 수술까지 받아야 할 사고였다. 회사는 우선 치료를 잘 받으라며 병원에 입원하라고 했고, 박씨는 지시에 따랐다.

그러나 회사는 아무런 연락을 해 오지 않았다.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으로 박씨가 안절부절 못하던 가운데 2주가 지나서야 해당 현장 전문건설업체 공무과장이 면회를 왔다. 공무과장은 안부를 묻기가 무섭게 산재 신청을 하지 말고 공상으로 처리하자고 요구했다. 공상은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개인 간 합의를 말한다.

박씨는 수술 결과에 따른 재요양에 문제가 될까 봐 답을 못하고 주저했다. 그러자 공무과장은 수술 이후 몸이 좋아지면 계속 일을 해야 되지 않겠냐며 산재만큼 보상을 해 주겠다고 재차 말했다. 박씨는 어쩔 수 없이 공상처리에 합의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정도로 건설현장에서는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해 원청에 페널티를 부과한다. 원청이 경각심을 가지고 안전활동을 강화하라는 취지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공상이라는 개인합의로 처리하면 산업재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산재 발생으로 인한 정부 당국의 사업장 감독을 빠져나가는 산재은폐가 만연해 있는 셈이다. 하청업체들의 사업주단체인 대한전문건설협회가 2010년 사업주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산재은폐 비율이 66.5%나 된다. 2009년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철근콘크리트 업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3%가 산재은폐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현장 산재은폐에는 원청이 조직적으로 개입한다. 원청 건설회사들은 '공상처리 지침'을 만들어 하청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하면 은폐하도록 하고, 산재 발생시 민간응급차량이나 지정병원만을 이용하라고 교육하기도 한다.

건설현장 산재은폐의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18건의 산재를 공상으로 처리하는 데 17억8천900만원의 비용을 지출했다. 산재예방이 아닌 산재은폐를 위해 수십억원의 돈을 퍼부은 것이다.

노동부는 이 같은 산재은폐를 아는지 모르는지 의문이 든다. 한국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심각한 직무유기다. 알고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산재은폐를 노동부가 묵인·방조한 것이다.

심각한 것은 노동부가 최근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이런 산재은폐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를 은폐하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원청에 입찰자 사전 자격 심사점수(PQ점수)를 부과하게 돼 있다.

개정안은 신규사업장이 산재은폐를 하더라도 노동부가 15일 이내에 산업재해조사표를 만들어 제출할 것을 명하고, 이에 업체가 응하면 과태료 처분을 면하도록 해 주고 있다. 발주산업인 건설은 현장이 바뀔 때마다 해당 현장이 신규사업장이 된다. 노동부 논리대로라면 건설회사는 산재은폐를 했다가 발각되고도 15일 안에 노동부에 자료를 제출하기만 하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게 된다.

그동안 전국 건설현장 수천곳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산재은폐에 대해 나몰라라식 태도로 일관하던 노동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산재은폐 면죄부 정책인 셈이다. 주무부처로서 현장 산업재해를 예방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재은폐 면죄부가 아니다. 산재를 은폐한 건설회사를 강하게 처벌해 해당 규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노동부는 산재은폐 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주는 개악안을 추진할 게 아니라 현대건설 사례처럼 산재은폐에 대해 엄정하고 전면적인 조사를 벌여야 한다. 원청 차원의 조직적인 산재은폐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 산재은폐가 발생한 사업장을 강력히 제재해 건설현장 산재은폐를 발본색원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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