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132번 환자는 치료를 받기 위해 이틀 동안 600킬로미터를 전전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 환자에게 해 준 것은 '알아서 하라'는 말이 전부였어요.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 역할은 없었습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엄청난 교훈을 얻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요.”(김동현 보건의료개혁국민연대 운영위원장)

지난해 5월20일 국내 최초로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메르스 사태로 38명의 사망자와 186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의 감염병 관리체계는 얼마나 확충됐을까. 메르스 사태 1년을 맞아 보건의료개혁국민연대(옛 메르스극복국민연대)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구 YWCA회관에서 ‘메르스 1년 200인에게 듣는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메르스 확진환자를 비롯해 지난해 병원과 연구실에서 메르스와 싸운 의사·간호사·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의료진 보면서 살고 싶어졌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의 의견은 김동현 운영위원장(한림대 의대 교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르스로 투병생활을 한 변금순씨는 “어쩌다 이렇게 큰 병에 걸렸는지 죽고만 싶었다”고 술회했다. 지난해 메르스 1차 진원지였던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메르스에 걸린 변씨는 “24시간 내내 구토가 나와 화장실에 이불을 깔고 앉아 계속 토했다”며 “하느님께 살려 달라고 수십 번 기도해도 나아지지 않아 죽고 싶었는데 메르스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을 보면서 살고 싶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간호사가 매일 찾아와 내 손을 잡고 '살 수 있어요. 참으세요'라고 말했는데, 그게 어떤 약보다 힘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아산충무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 메르스에 걸린 간호사 김윤미씨의 얘기는 의료진이 얼마나 감염병에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 준다. 메르스에 걸린 경찰관을 간호했다는 김씨는 “간호하던 환자가 감기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메르스 환자인 줄도 모르고 치료하다 전염됐다”며 “의료진들은 마스크도 받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감염병 대응체계가 너무 수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는 메르스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체계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인천의료원 간호사 최아무개씨는 병원의 열악한 감염병 대응실태를 꼬집었다. 인천의료원은 메르스 사태 당시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승객 중 메르스 의심증상을 보였던 승객이 가장 먼저 찾은 병원이다. 최씨는 “지급받은 메르스 방어복과 마스크에 곰팡이가 피어 있어 착용하려다 벗었던 경험이 있다”며 “방어복을 입으려다 지퍼가 뜯어져 입지 못했던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정부 메르스 대책 B등급 주기도 아깝다”

전문가들은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가 마련한 감염병 대책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 보완책으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신종 감염병 환자'를 전담치료하는 중앙 감염병 병원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정책이 다 실행된다 하더라도 B등급밖에 줄 수 없다"며 "이마저도 실행이 안 된다면 C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국립중앙병원을 중앙거점 병원으로 두고 지역에 서너 곳의 지역거점 병원을 만든다고 하는데, 의원급 병원들도 감염병을 진단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정부가 1~2차 병원의 감염병 진단능력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교수는 “정부 대책을 5~10년 지속할 장기과제로 볼 때 현재는 30~40%밖에 진행이 안 됐다”며 “감염병에 대한 국민 관심이 멀어지면 메르스 대책은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예방·검역·조기진단·치료 과정 단 한 곳이라도 취약할 경우 감염병이 확산될 수 있는 만큼 국민이 정부 메르스 대책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다행히 감염병 환자 내원에 대비한 직원 교육과 보호장구 구비 수준은 메르스 사태 이전보다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가 이달 17일부터 19일까지 31개 병원을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28곳에서 “감염병 환자 내원에 대비해 직원 교육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27곳의 병원은 “직원 보호장구 구비수준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18개 병원은 감염병 환자 격리시스템을 마련했고, 19곳은 지침에 따라 음압격리병상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조는 “한국 의료기관들이 메르스 이전과 비교해 느리지만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다만 메르스를 확산시킨 병원의 인력문제는 답보 상태”라고 설명했다.

“인력과 대처시스템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메르스 발병국 중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았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간병문화의 문제점이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메르스 확진환자 186명 중 71명(38%)이 환자를 간병하던 가족·간병인·방문객이었다. 병원이 의료인력을 늘려 보호자들의 환자 간병을 줄였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보호자 없이 보건의료인력이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시행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지난해부터 시범운영돼 올해 4월부터 상급종합병원으로 확대 시행 중이다. 노조는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핵심요구안으로 제시할 계획이다. 환자와 보건의료 노동자 모두가 만족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하기 위해 인력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주호 노조 전략기획단장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인력확충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며 “메르스 사태 때처럼 ‘메르스 전사’라며 의료진에게 희생을 요구할 게 아니라 안전문제에는 타협이 없다는 자세로 인력을 확충해야 의료체계가 개선된다”고 말했다.

김윤 교수는 “후진적 간병문화가 형성된 것은 환자를 충분히 간병해야 할 병원이 그 책임을 환자 가족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라며 “증세를 하든 보험료를 올리든 간에 재원을 마련해 의료인력을 확충하고 환자 가족이 아닌 병원이 간병을 도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메르스로 인해 10조원의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고 가정해 보면 메르스 예방에 그 액수만큼 투자했다면 10년 이상 메르스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재욱 교수는 “안전은 기본적으로 불편한 것이고 비용을 수반하기 마련”이라며 “메르스 재발 방지를 위한 인력 투자는 재정지원 없이는 안 되는 만큼 정부는 재발방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엄준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교수는 "우리나라 병원의 운영원칙은 환자 만족과 경영효율성"이라며 "외국처럼 환자 안전과 감염관리를 최우선 원칙으로 바꿔야 메르스 사태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출범한 보건의료개혁국민연대에는 보건의료노조·환자단체연합회를 포함한 14개 노동·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국민연대는 “의료부문 공공성을 강화해 모든 국민이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고 지역사회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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