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용산 미군기지와 경기북부 미2사단이 2018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하는 가운데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고용보장과 이전대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주한미군한국인노조(위원장 최응식)는 지난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생존권 사수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고용안정 △부대이전 대책 마련을 위한 전담부서 신설 △감원과 시간제 일자리 전환 중단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노무조항 개정을 촉구했다. 이날 대회에는 조합원 2천여명과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박종호 외기노련 위원장,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김성원 새누리당 당선자가 참석했다.

◇"한국 정부 무관심·무대책에 주한미군 권력 남용"=조합원들은 "기지이전과 맞물려 기지 내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근로조건 저하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어 "이전대상 기지에서 일하는 5천여명에 대한 대책도 전무하다"고 반발했다.

최응식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지금 주한미군은 기지이전을 핑계로 한국인 직원을 얼마나 잘라야 하나 작당을 하고 있다"며 "이미 2012년 IMCOM(주한미군시설관리사령부)에서 500명을 감원했고, 수년간 FMWR(후생복지시설)에서 파트타임 전환과 감원을 경험했는데 현재 더 큰 위기가 진행 중"이라고 우려했다.

최 위원장에 따르면 주한미군 내 물품판매를 담당하는 교역처(AAFES)는 흑자운영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전대상 기지 직원의 50%를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거나 직급을 한 단계씩 강등하겠다고 통보했다. 미8군 은행인 커뮤니티뱅크는 7급 이하 정규직 직원을 주당 30시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인건비의 75%를 분담하는 '충당직원' 일자리도 아웃소싱되는 실정이다.

최 위원장은 "경비·통신·공병대·세탁소 업무 등 충당직원들의 일자리가 하청계약을 통해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며 "이러한 모든 게 노동법을 위반하는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주한미군은 SOFA 노무조항 뒤에 숨어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한국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위원장은 특히 "한국 정부는 미군기지 평택이전에 혈세 34조원을 지원하면서도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들에겐 단 10원의 예산도 주지 않고,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최문수 미국은행분회장은 "커뮤니티뱅크는 연간 이자수익만 300억원씩 내고 있는데, 그 돈을 다 어디로 빼돌렸는지 모르겠다"며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감원을 방치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더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최의정 평택지부장은 "고용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무대책으로 인한 주한미군의 권력남용"이라고 비난했다.

박종호 외기노련 위원장은 "참을 만큼 참았다"며 "투쟁으로 정부로부터 버린 자식 취급받는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고 호소했다.

◇"누가 잘릴지 몰라 불안"=이날 집회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주한미군 인사규정에 따르면 미군은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 종료와 보직 이전 등에 대해 6개월 전에만 통보하면 되기 때문이다. 동두천지부 소속 한 조합원은 "이전 시기도, 규모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미군의 처분만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밖에도 실업대란인데 여기서 잘리면 일할 곳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용산기지에서 일하는 한 시설관리 노동자는 "삼삼오오 모이면 기지이전 얘기만 한다"며 "누가 잘릴지 모르니까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귀띔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미군기지 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문제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주권과 노동권이 죽어 있는 일터가 바로 주한미군 기지"라며 "노예나 다름없이 일해 온 여러분들의 노동권을 되찾고, 고용과 정당한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노총은 다음달 초 외기노련·노조 지도부와 함께 토머스 밴달 미8군 사령관을 만나 대책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다.

여야 의원들도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미군기지 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난 뒤 삼각지역과 캠프 킴, 남영역, 국방부를 거쳐 다시 전쟁기념관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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