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27개월 동안 청년노동을 주제로 이 지면에 글을 써 왔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원고가 50개나 쌓여 버렸으니 무슨 용기인가 싶습니다. 목록을 훑어보며 한 가지 좋다고 느낀 점은 이렇게 지나고 보니, 그때에 무엇을 고민했더라 돌이켜 볼 수 있는 기록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신문의 좋은 자리와 온라인 공간을 허락해 주신 매일노동뉴스에 감사합니다.

삶에 가장 뜻 깊은 일의 하나였던 이 정기연재를 마치면서 또 무엇을 써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매번 겪는 익숙한 괴로움이면서도, 마지막이라는 의미까지 덧붙이자니 특별하게 괴로웠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청년유니온의 정책 담당자로 일했으니, 겸사겸사 활동을 돌아보는 소회를 적어 볼까 아니면 얼굴을 모르는 청년노동자 A에게 전하는 편지를 쓸까. 마음은 후자로 많이 기울었습니다. 언젠가 즐겨 읽은 정운영 선생의 칼럼모음에서 비슷한 형식을 접했을 때, 나중에 그런 멋을 부려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쓰기 위해 앉았을 때, 구상했던 어떤 것도 크게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주어진 모든 말하기와 글쓰기의 공간에서 청년이니 노동이니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우스웠기 때문입니다. 하필 그 시간에, 하필이면 그 장소에 ‘여성’으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목숨을 잃어야 한다면, 지금 많은 이들이 토해 내듯, 우리 모두는 우연히 살아남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혐오와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남성’이어서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각기 다른 이유로 1980년의 광주와 2014년의 세월호에서, 그리고 2016년의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운이 좋아 살아남은 우리의 삶은 이미 죽어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청년노동자 A에게 제가 무슨 말을 건네겠습니까.

옛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는 ‘여성’ 지인에게 몰래 다가가 갑자기 소리를 내며 놀래켰던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크게 화를 냈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여긴 내 장난이 누군가에게 실체적인 공포와 위협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다행히 ‘남성’이라 모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단지 ‘여성’이라 느끼게 되는 그 감각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사회에 생존하는 한 여성들이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그 공포와 위협을 최대한 열심히 상상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입니다. 내 몸뚱아리가 어떤 이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입니다. 약자·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저항의 목소리에 내 입 하나를 보태는 일입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린 연인의 절망에 순간 더 가깝게 감정이입한 것은 제가 타고난 한계지만, 우리는 ‘지켜 주지 못해 슬픈 자’와 ‘조심하지 않아 죽은 자’의 자리를 둘 다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동료시민이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습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렬에 동참하고, 이 빌어먹을 사회를 조금이라도 낫게 바꾸기 위해 애쓰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이 짧은 글로 행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온 마음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성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없는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시길 빕니다. 다시 태어나면 한국만큼은 절대 피하시길 빕니다. 우연히 살아남은 동시에 죽어 버린 우리 모두에게도 추모와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간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곧 군대에 갑니다. 1년9개월간 제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빌어 주십시오. 여러분도 꼭 살아남으십시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이것으로 ‘정준영의 청년노동’ 칼럼 연재를 마칩니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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