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직원들이 원하면 (노조는) 교섭에 임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 압도적으로 찬성해 주시면 협상팀에서는 그 카드로 (노조를) 압박할 수 있다. 퇴근한 직원들과 소주도 한잔하고 커피도 한잔하면서 (설득)하라. 카톡으로 해도 되고 SNS로 해도 된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본부장 박종선)가 19일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고 코레일 현장에서 온갖 불법행위가 난무하고 있다"며 이런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목소리의 장본인은 김아무개 코레일 인사노무실장이다. 김 실장은 지난 2일 현장관리자인 소속장을 불러모아 화상 월례조회를 했는데, 그날 발언이 녹취록에 담겼다.

◇성과연봉제 설문조사 종용=코레일은 성과연봉제 선도기관으로 분류됐지만 최연혜 전 사장이 총선에 출마하면서 사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덕분에 다른 공공기관들보다 성과연봉제 도입 압박이 심하지 않았지만 이달 10일 홍순만 사장 취임을 전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첫 번째 조치가 성과연봉제 관련 설문조사다. 김 실장이 월례조회에서 소속장들에게 설문조사에 총력을 다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4개로 구성된 설문조사 문항은 조작 수준이다. 예컨대 코레일은 "성과연봉제 미도입시 엄청난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점을 알고 있느냐"라거나 "성과연봉제는 저성과자 퇴출제와 전혀 연관이 없고, 공사에서도 퇴출제 시행 계획이 일체 없음을 알고 있느냐", "연봉제로 전환하면 호봉제에 비해 매우 유리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를 물었다. 마지막에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관련 노사합의가 언제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를 묻고 '5월 내''6월 내''잘 모르겠음'이라는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코레일은 이달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코레일은 "설문조사에는 전 직원 2만6천481명 중 1만5천967명(60.3%)이 참여했다"며 "4개 항목 모두 긍정적 의견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서울지방본부 관계자는 "설문조사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현장에 나간 조합원을 불러들여 조별로 면담한 후 설문조사 참여를 종용하고, 퇴근한 조합원에게 경영진과 간부들이 계속 전화를 걸었다"며 "산업안전보건 교육 시간에 안전교육 대신 성과연봉제 교육을 하고, 재무담당자가 특정지역을 순회하며 성과연봉제 도입을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마치 노사가 함께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괴문자'도 나돌았다. 설문조사 시작일인 9일에는 '설문조사 관련 긴급 알림'이란 제목으로 "노조 집행부도 직원들이 설문하는데 협조하는 등 반대활동을 자제하기로 협의됐다"며 "전 직원이 설문에 참여하도록 해 달라"는 문자메시지가 유포됐다. 휴가 중인 직원이 온라인 설문조사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아이디 불법도용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사장 업무보고에 설문조사가 '직원 찬반투표'로 둔갑=심지어 이 설문조사는 성과연봉제 관련 직원 찬반투표로 둔갑했다. 홍순만 사장 업무보고용 문서 중 '성과연봉제 향후 계획'에서 코레일은 "성과연봉제 전 직원 찬반투표(5월9일~12일, 4일간)를 시행했다"고 명시했다. "합의 지연시 촉구서명, 결의대회 등을 압박수단으로 활용해 5월 내 합의 추진"이라는 문구도 담겼다.

노조에 따르면 코레일 한 임원은 지난 13일 홍순만 사장과 노조 간 상견례가 끝난 직후 노조간부에게 "6월 안에 합의가 진행되지 않으면 이사회에서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본부는 이날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철도공사 수도권 동부본부 앞에서 '성과연봉제·퇴출제 불법강요 규탄대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도입반대와 부당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노조는 26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코레일 이사회 개최에 대비한 파업·총력투쟁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한편 코레일 관계자는 "설문조사 과정에서 강요는 없었다"며 "설문조사도 그간 공사가 설명한 성과연봉제 취지를 직원들이 잘 알고 있는지 묻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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