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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특성화고 현장실습, 이건 교육이 아니다 ②] 일터 괴롭힘과 현장실습생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 간접고용 현장실습 실태보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2005년 발표한 보고서 제목이다. 청소년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10~12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중소·영세 업체가 대부분인지라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산업재해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 후 10년여가 지났다. 문제는 외려 악화됐다.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해법을 찾는 이들의 기고를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30여년 전, 나는 고3 교실에 앉아 있었다. 정규수업 후 몇몇 친구가 가방을 꾸렸다. 진학을 안 하고 취업을 택한 친구들이 부기학원 등을 향해 나서는 길이었다. 강제 야간학습을 감독하러 온 담임은 그 친구들을 향해 야멸차게 말했다. “공부하는 애들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사라져.” 그 모진 말이 친구들의 움츠린 어깨에 꽂힐 때 나는 잔인함과 모욕감에 떨었다.

다음해 겨울, 나는 취업전단을 훑으며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대학에 갔지만,내 형편과 거리가 먼 딴 세상 같았다. 1년을 못 버티고 부모님 몰래 자퇴를 했던 것이다. 학생이 아닌 나를 사회는 청소년으로도, 청년으로도 대하지 않았다. 알바를 전전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로도 대하지 않았다. 아무런 소속이 없던 19살의 여자애를 받아 줄 곳은 위험천만하고 무서운 곳밖에 없었다. 전단에는 월급이나 휴일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여기저기 통화한 끝에 면접을 보러 가면 주변에서 풍기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발걸음을 돌리게 됐다. 그러기를 몇 달, 자퇴한 사실을 들켜 버렸다. 부모님의 원대로 다시 공부해 대학에 들어갔다. 백기투항이었다. 싱거운 투항은 하루빨리 ‘소속’을 다시 갖고 싶은 맘 때문이었다. 어딘가에서 내 이름이 불리고, 눈을 뜨면 불안한 탐색이 아니라 안전하고 익숙한 곳에 가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개가 아니라 성원으로서 인정과 대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경계에 선 사람들, 현장실습생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담임의 모진 말, 소속 없는 이의 무섭고 싸늘했던 경험을 보고 또 본다. 바로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다. 대학입시와 상관없는 문제는 교육 문제가 되지 못한다. 자기네 직원이 아니라 하니 노동문제도 되지 못한다. 의제가 되지 못한 문제의 당사자들은 이도 저도 아닌 경계에 선 사람들이다. 현장실습생에 대한 인권침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심지어 자살에까지 이른 사건도 있다. 문제를 지적할 때 나오는 말도 반복이다.

“학생도 노동자도 아니다.” 이 말은 ‘현장실습생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 즉 ‘어디에서도 인격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속 없음’은 어떤 조직도, 제도도, 정책도 이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학교·기업·정부는 이들을 내돌린다는 점에서만 하나다.

“나는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일터 괴롭힘 피해자를 다룬 책에 나오는 독백이다. ‘안 보이는 존재’에게 기본적인 인권존중 같은 게 고려될 수가 없다. 현장실습생을 마치 거기 없는 듯이 취급하는 환경에 일터 괴롭힘은 이미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일터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은 ‘일터에서 노동자의 존엄성과 인격을 모독하고 권리를 위협하는 일체의 태도·행위’를 가리킨다. 언론 등에선 흔히 ‘직장(내) 괴롭힘’이란 말을 쓰는데 나는 의도적으로 ‘일터 괴롭힘’이라 쓴다. 직장이건 일터건 영어 workplace를 번역한 말이다. workplace는 매장·사무실·공장 등 고정된 장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통근·출장·회식·훈련 등이 이뤄지는 장소뿐 아니라 전화대화나 전자매체를 통한 대화까지도 포함된다. 즉 일과 관련한 위험의 원천이 되는 모든 장소와 시간을 포괄한다. 또 workplace의 관련자는 고용된 노동자만이 아니다. 취업준비생·실습생·인턴·실업자·자영업자·소비자 등이 모두 일터와 관계가 있다. 가령 아직 직원이 아니지만, 면접 과정에서 일어나는 강압과 모욕도 일터 괴롭힘이다. 단기적 고용이 일상화돼 실업과 취업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하다. 같은 일터에서 일해도 파견이나 실습인 경우에 동료 노동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런 다양한 현상을 담기에 ‘직장’만으론 뭔가 빠진 것 같다. 따라서 같이 살아가며 같이 바꿔 나가야 할 장소와 시간이란 의미에서 ‘일터’로 표현했다. ‘괴롭힘(harassment)’은 일터에서 노동자의 존엄성과 인격을 모독하고 권리를 위협하는 일체의 태도·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터 괴롭힘 연구자들은 크게 두 입장으로 나뉜다. 대인 간 폭력에 주목하거나 구조적 폭력에 주목하는 경우다. 구조적 폭력에는 ‘체계적인’ ‘시스템적인’이란 설명이 붙는다. 시스템이란 하나의 권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부분들이 일정한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결합되고 조직돼 전체를 이룬다. 조직의 개별 소품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조직의 전체적인 성질을 과시할 때 시스템은 위력을 발휘한다. 열악한 노동 설계, 피해자에게 강요된 사회적 위치, 노동현장의 저급한 의식, 과도한 업무 요구와 압력, 권위적인 관리 운영 등이 일터 괴롭힘을 번성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이런 노동환경을 배경으로 해서 피해자가 대처할 수 없는 부정적인 성격의 관계와 행위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일터 괴롭힘이다. 이런 설명을 취해 보면, 현장실습생이 겪는 고통은 개별사업장 문제이기에 앞서 우리 사회 시스템 문제다.

약자일수록 구조적 폭력에 내몰려

직업이나 경력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캐리어(career)는 옛 영어 뜻으론 ‘잘 닦아 놓은 길’이다. 반면 일자리·일거리란 뜻의 잡(job)은 때에 따라 이리저리 나르고 가져다 놓는 석탄덩이나 장작더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노동의 권리를 이런 일자리에 국한된 권리로 빈약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현장실습생은 취업률 높이기에 동원된다. 그저 일 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착취와 괴롭힘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권리 교육이 아니라 기업의 냉혹함이나 기업에 비위 맞추기를 가르치는 취업교육, 절대 복종을 찬양하는 직업의식 고양, 마인드컨트롤을 권장하는 자기훈련 등이 강조된다.

일터 괴롭힘 유형 중에는 교육과 훈련으로 위장하는 것이 많다. 비열함과 훈련은 구별돼야 한다. 자존감 내려놓기 훈련, 그 과정에서 인격 무시와 모욕을 노골화하는 것은 정당한 지시도 교육도 아니다. 피교육자가 이해할 수 없는 교육과정, 커뮤니케이션 없는 일방성, 전체적인 목표와 과정을 보여 주지 않고 ‘까라면 까’ 식의 지시만 있는 교육은 뭘 목표하는 걸까. 이런 교육이 요구하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순응이며, 너는 통합적 인격체가 아니라 한갓 부속품일 뿐이란 걸 뼈에 새기라는 것 아닐까. 박박 기지만 경험을 전수받지 못하는 교육, 그 속에서 누구나 ‘땜빵’할 수 있는 일을 때우며 일도 관계도 배우지 못하는 ‘뺑뺑이’가 계속되는 것,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하는 괴롭힘을 통과의례로 포장한다.

일터 괴롭힘으로 누가 가장 영향을 받는가. 여러 나라의 선행연구를 보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험하고 불안하고 저평가되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일수록 괴롭힘 빈도와 강도가 세다. 젊을수록(어릴수록), 계약조건이 불안정할수록 더 많이 괴롭힘을 당한다. 여성이 훨씬 더 많이 당한다. 괴롭히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은밀하고 간접적인 방법보다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대놓고 무시하고 괴롭힌다는 뜻이다. 낮춰 보는 노동자일수록 ‘그만두라’는 식의 말을 더 자주 듣고, 구체적인 업무 지적이 아니라 인격을 모욕하는 공격을 더 자주 받는다. 대놓고 괴롭혀도 나(또는 자기 기업)에게 위해가 없을 사람, 그런 대우를 해도 괜찮은 ‘서열’의 사람이라는 사회적 용인 속에서 일터 괴롭힘이 번성한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시민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 노동권 문헌에 나오는 금언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군인의 인권을 말할 때도 군인을 ‘제복 입은 시민’이라 칭한다. 여기서 ‘시민’의 의미는 어느 공동체(조직)의 어엿한 구성원이란 말이고 구성원으로서 자기결정권, 일에 대한 통제권과 재량, 평등한 사람으로서 대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장에서도 어떤 특수한 신분에서도 기본적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 경계에 선 현장실습생의 인권도 예외가 아니다. 일터에서의 억압은 단지 싫고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노동자를 직접적인 위험에 빠뜨린다. 현장실습생들이 겪는 일터 괴롭힘, 노동재해 등이 이것을 증명한다. 괴롭힘에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협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거나 ‘자기에게 중요한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포함된다. 현장실습생에게 이런 무력감을 언제까지 강요할 것인가.

류은숙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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