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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탄가루를 마셔 가며 탄광에서 일한 박충식(72) 할아버지는 숨구멍이 조이는 진폐증으로 고통받으며 여생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다. 박 할아버지에게 가장 위험한 건 기침이다. 각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한 번 피가 터져 나오면 지혈을 하느라 애를 먹는다. 의사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절대 외출을 삼가라”고 신신당부했다.

박 할아버지 내외는 한 달에 88만380원씩 나오는 진폐기초연금으로 살아간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대신 부인 윤종순(65) 할머니가 동네 밭일을 거들며 생활비를 보탰는데, 지난 겨울 할머니가 관절염 수술을 받은 뒤로는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산업전사’로 칭송받으며 조국 근대화를 위해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막장을 드나들었던 과거의 영광은 박 할아버지의 육신에 진폐증 외에 또 하나의 훈장을 새겨 놓았다. 굴을 뚫고(굴진) 탄을 캐며(채탄) 소음에 노출됐던 할아버지는 귀가 망가져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탄광 굴진작업 때 드릴기계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90~119데시벨(dB)이나 된다. 작업공간 소음 허용치인 85데시벨을 훌쩍 뛰어넘는다. 115데시벨 이상 소음은 단시간 노출로도 소음성 난청을 일으킨다. 그보다 낮은 110데시벨에서 30분, 105데시벨에서 1시간씩 매일 노출돼도 소음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다.

“탄광에서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귀가 먹먹하고 어질어질하다고 했어요. 그래도 그땐 말귀를 못 알아먹는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별일 아니다 여겼죠. 그런데 탄광을 떠나고 나서 차츰 귀가 어두워지더라고요. 5~6년 전부터는 1미터 앞에서 말해도 못 알아들어요.”

의사소통이 어려운 박 할아버지를 대신해 윤 할머니가 남편의 상태를 설명한다.

“탄광 문 닫고서는 나랑 같이 동네 밭일이나 거들러 다녔죠 뭐. 공장에 취직하려고 해도 귀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까 써 주는 데가 있어야지요. 그러다 폐병이 심해져서 병원에 드러누웠어요. 며칠 전에도 아저씨가 피를 토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노부부는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에 박 할아버지의 소음성 난청 증세에 대한 산재를 신청했다. 탄광에서 일하다 생긴 소음성 난청을 장해로 인정하고 장해급여를 지급해 달라는 내용이다. 탄광 일을 그만둔 지 26년 만이다. 이들 내외가 이렇게 뒤늦게 산재신청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공단은 또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탄광 산업전사들 "탄광 떠난 뒤 귀가 안 들려요"

탄광에서 일하며 오랜 기간 소음에 노출돼 귀가 어두워진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낸 이 사건은 언뜻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소음성 난청을 직업병으로 인정받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국내 제조업체 12만6천여곳을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5인 이상 제조업체 10곳 중 6곳(58.2%)의 작업장에서 소음과 진동이 발생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노동자가 소음성 난청의 위험지대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노동부가 2014년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한 결과 전체 직업병 요관찰자(C1)와 유소견자(D1) 15만2천443명 가운데 88.4%에 해당하는 13만4천728명이 소음성 난청에 해당했다. 특수건강진단 대상자 10명 중 9명꼴이다. 소음성 난청으로 한 번 청력이 약해지기 시작하면 회복은 불가능하다. 현대의학에서 난청은 불치병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정작 소음성 난청이 산재로 인정된 비율은 매우 낮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4년 397명이 장해급여를 신청해 253명이 승인됐고, 지난해(1~10월)에는 500명이 신청해 344명이 승인됐다. 직업병 요관찰자·유소견자 규모를 감안하면 산재 신청자·승인자가 절대적으로 적다. 산재신청까지 높은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다.

소음성 난청의 산재신청을 가로막는 첫 번째 걸림돌은 근로복지공단의 ‘소음성 난청 인정기준’이다. 공단은 "연속음으로 85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노출되는 작업장에서 3년 이상 종사하고 있거나 3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통상 중형트럭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80데시벨, 교통량이 많은 도로 소음이 90데시벨 정도다.

공단 인정기준은 법원의 잣대보다 까다롭다. 판례에 따르면 법원은 85데시벨 이하 소음에 노출됐어도 근무기간과 작업시간·소음노출시간·근무시 소음정도·개인의 감수성에 따라 소음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노동계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된 데시벨 기준을 완화하라"고 요구해 온 배경이다.

소음성 난청 의심자 13만명, 산재인정은 300명

소음성 난청의 산재신청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은 공단이 규정한 ‘소음성 난청 치유시기’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부상이나 질병의 ‘치유’에 대해 “완치되거나 치료의 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그 증상이 고정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공단은 지난해까지 ‘소음성 난청에 걸린 노동자들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비소음부서로 전환 배치된 시점으로부터 3년 이내’에만 산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소음성 난청 업무처리기준’을 고수했다. 노동자가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곳에 머물 때를 ‘증상이 고정된 상태’로 봤다.

이 같은 지침은 직장을 그만둔 지 3년이 흐른 뒤 소음성 난청 진단을 받은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해 왔다. 청춘을 탄광에서 보낸 박충식 할아버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박 할아버지는 1968년부터 90년까지 탄광에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세 곳의 광업소를 거쳤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제일 마지막에 근무했던 호남탄좌개발 근무경력 정도가 공식적으로 확인 가능한 기록이다. 할아버지의 ‘진폐근로자 건강관리카드’를 보면 이곳에서 7년간 근무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광부로 일하는 동안 박 할아버지는 주로 굴진과 채탄 업무를 했다. 공단이 현재 가동 중인 광업소를 대상으로 5년간 평균소음을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터널 굴진 92.18데시벨 △굴진 91.1데시벨 △채탄 86.98데시벨 등 탄광에서 이뤄지는 업무 대부분이 작업공간 소음 허용치인 85데시벨을 뛰어넘는다.

박 할아버지는 90년 호남탄좌개발이 폐광하면서 탄광을 떠났다. 20년 넘게 탄가루를 마신 할아버지의 폐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양쪽 귀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의사소통이 어려워졌다. 산재신청을 위해 공단을 찾았지만 퇴사하거나 전환배치된 시점으로부터 3년 이내에만 산재신청을 할 수 있다는 공단 지침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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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 조각 된 '소음성 난청' 진단서

산재신청이 좌절된 박 할아버지에게 2년 전 희소식이 들려왔다. 대법원이 2014년 9월 "소음성 난청 인정기준을 변경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퇴사하거나 전환배치된 뒤 3년 이내에만 산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옛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내용이다. 시행규칙을 근거로 만들어진 공단 지침 역시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공단은 올해 1월 새로운 내용의 지침을 내놓았다. 논란이 됐던 ‘소음성 난청 치유시기’는 ‘소음작업장을 떠난 날’에서 ‘소음성 난청 진단일’로 바뀌었다. 병원에서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해당하는 장해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3년 내에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박 할아버지는 이비인후과에 찾아가 ‘감각신경성 난청’과 ‘소음성 난청’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진단서에 “과거에 소음성 환경에서 십수년간 작업한 경력이 있으며, 청력검사도에서 4천~6천헤르츠(Hz)의 청력손실이 심해 소음에 의한 청력감소로 추정할 수 있다”고 썼다.

소음성 난청은 3천헤르츠 이상의 고주파 영역에서 청력이 떨어지는 특징을 보여 준다. 연령증가에 따른 퇴행성 난청과 다른 점이다.

박 할아버지는 진단서를 받아들고 다시 공단을 찾았다. ‘소음성 난청 진단일’로부터 3년 안에 산재를 신청하면 된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초 공단은 박 할아버지에 대해 ‘장해 7급’ 승인 결정을 내리고 616일치의 장해보상 일시금이 지급될 내용이라고 통지했다. 산재를 인정한 것이다. 장해 7급에 해당하면 장해보상연금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공단은 며칠 뒤 “장해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며 산재승인 결정을 뒤집었다. 공단은 결정을 번복하면서 △호남탄좌개발 재직 당시 85데시벨 이상 소음에 3년 이상 노출됐는지 확인할 수 없고 △소음부서를 떠난 지 26년이 지났으며 △화순군수로부터 장애등급 4급 인정을 받기 위해 2012년 2월 (난청) 진단을 받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박 할아버지의 아내 윤종순 할머니는 “공단 지침 때문에 산재신청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장애인증이라도 받으려고 진단을 받았던 건데, 그것 때문에 또다시 신재신청을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장애인증 발급받고 받은 혜택이라고는 아저씨가 보청기를 할 때 110만원, 동네 상수도 놓을 때 40만원 지원받은 게 전부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장애인 등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장애인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장해보상 일시금과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다.

노동계 "공단, 억울한 피해자 없게 후속조치 취해야"

공단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이 나온 2014년 9월 이후 현재까지 박 할아버지처럼 탄광에 근무하다 퇴직한 고령자 1천여명이 소음성 난청을 산재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한 상태다. 이미 진폐증을 앓고 있는 직업병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 역시 박 할아버지와 같은 이유로 산재 불승인을 받고 있다.

해당 노동자들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신현종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푸른솔)는 “장애인복지법과 산재보험법은 법 제정 취지와 내용이 현저히 다르다”며 “전자는 장애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편의제공, 후자는 업무상 피해를 입은 재해자에 대한 손실보전이 주목적”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등록을 위한 진단경력을 이유로 산재신청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 노무사는 박 할아버지 사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박 할아버지가 장애인 등록을 위해 받은 장애진단서를 보면 ‘장애유형 : 난청’, ‘장애 원인 : 미상’으로 기재돼 있다. 신 노무사는 “명확하게 소음성 난청으로 진단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재해 여부를 판단해야 억울함을 호소하는 재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며 공단에 지침 보완·변경을 주문했다.

노동계 산업안전 문제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은 “공단의 기존 지침에 따라 산재신청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장애진단을 이유로 산재신청을 통해 본인이 앓고 있는 질병을 입증할 기회를 재차 박탈당하는 상황은 문제가 있다”며 “공단의 행정 편의주의가 해당 노동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소음성 난청 관련 대법원 판결은 잘못된 제도로 피해를 본 노동자를 구제하라는 것”이라며 “공단이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해 적어도 산재신청은 가능하도록 후속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단은 해당 노동자들을 구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입장이다. 강승훈 공단 보험급여국 보상부 차장은 “최근 산재신청을 하는 재해자들은 진단서를 새로 받아 제출하기만 하면 재해 보상이 가능한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데, 이는 산재신청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산재보험법 취지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상병을 앓고도 3년 시효가 넘어 보상을 받지 못한 재해자와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며 “탄광에서 일했던 고령 노동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별도의 구제방안을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박 할아버지 사건은 감사원에 심사청구가 제기돼 있는 상태다. 당초 산재승인 결정을 내렸다가 이를 번복한 공단의 결정이 온당한 지 심사해 달라는 취지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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