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장시간 노동 해소다. 박병원 회장은 2월에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와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연장근로 가산수당 삭감과 연차수당 폐지를 통한 장시간 노동 해소를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소득보전을 위해 연장근로를 자처하거나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로 인해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청년취업도 어려워진다는 주장이다.

경총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경총은 지난달 노동자들이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하도록 하는 내용의 연차휴가 사용지침을 발표했다. 이달 11일에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방안과 관련해 연구포럼을 열고 그 내용을 언론사에 뿌렸다. 생산유연성을 높이면서 노동시간도 줄이되,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축소하자는 취지였다.

노동계는 반대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린다는 비판이다. 문득 그가 2월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이 떠오른다. 당시 박 회장이 연장근로 가산수당 삭감과 연차수당 제도 폐지를 주장하자 기자들은 곧바로 반박했다.

“추가 근무를 많이 하고 연차를 사용하지 않는 게 노동자가 원하는 것인가. 회사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정시퇴근을 하거나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면) 저성과자가 된다.”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내용이었다. 박 회장은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결국 “회원사들 중에서도 (연차휴가 사용을) 싫어하는 곳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연차휴가 눈치 보이는 것에 대해 노조가 (사용자와) 투쟁해 줘야 한다”고 까지 밝혔다. 박 회장 자신이 내부에서 회원사들과 싸우고 설득할 테니, 노조가 도와 달라는 뜻으로 들렸다.

노동계가 노동시간단축을 주장하고 있지만, 소득감소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재계는 노동계와 비교해 내부를 설득하는 데 훨씬 소극적인 게 사실이다.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 점에서 박 회장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를 포함한 재계 인사들이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내부투쟁을 한다면 많은 박수를 받을 것이다.

다만 연장근로 가산수당이나 연차수당 폐지·축소를 계속 주장한다면 진정성을 의심받기 쉽다. 박 회장도 인정했듯이 우리나라 사용자들은 칼퇴근을 하거나, 꼬박꼬박 연차휴가를 가는 직원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최소한의 보호장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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