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총 노동경제연구원이 11일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주제로 연구포럼을 열고 “근로시간저축에 따른 휴가사용 시기에 대한 사용자 결정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원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 경총회관에서 포럼을 열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사용자에게는 생산유연성 제고를, 근로자에게는 경영상 해고로부터 일자리 유지라는 이점을 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노동시간단축·일자리 유지 이점에도 도입 난항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연장·휴일근로 같은 초과근로시간을 수당(임금) 대신 근로시간계좌에 적립한 뒤 나중에 휴가로 사용하는 제도다. 휴가를 먼저 사용하고 나중에 그 시간만큼 초과근로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독일 폭스바겐은 1990년대 중반 수요 급감에 따른 경제위기 상황에서 인력조정(정리해고) 대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위기를 극복했다. 이후 독일 전역으로 확산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70%의 고용률을 달성한 ‘독일 고용기적’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11월 정부 주도로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이 추진됐다. 정부가 이와 관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도입되지 않은 상태다.

연구원은 “독일에서는 노사 주도로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도입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임금·근로시간 법제가 상당히 규제적이어서 법 개정 없이 노사 자율로 도입할 수 없는 구조”라며 “전반적인 노사관계 분위기 또한 합리적 혹은 협력적이라기보다는 대치적 긴장관계에 가까워 새로운 제도 도입에 노사 모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그럼에도 “근로자에게 일자리 보장과 실근로시간단축, 일과 삶의 균형 도모라는 장점이 있고 사용자에게는 생산유연성 제고와 함께 노동비용 절감과 고용유지에 따른 인적자원 손실 최소화라는 이점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변동에 따른 인력조정 중심 유연화 대신 노동시간조정 유연화가 도입될 것이라는 얘기다.

근로시간 통제권 누가 행사하나

노동계는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은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경제위기시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평상시 보상휴가 확대에 따른 실노동시간단축 효과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근로시간저축과 휴가사용권이 노동자에게 있거나 노사 간 협의 혹은 합의로 결정되는 독일과 달리 경영자가 전권을 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악용될 소지가 더 크다”고 우려했다. 유 실장은 “노동자 권리인 연차휴가를 사실상 사용자가 통제하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노동자 혹은 노조가 근로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한다면 긍정적 효과가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노사 모두 누가 통제권을 갖냐에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연장·휴일근로 가산수당 문제도 제도 도입을 어렵게 하는 쟁점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연장·휴일근로를 할 경우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만약 4시간 연장근로를 한다면 그 시간만큼만 휴가로 보장할 것인지, 50% 할증해 6시간을 보장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숙제라는 의미다.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50%를 할증해 근로시간을 저축할 경우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할증률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추거나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경총 주장대로 제도가 설계될 경우 현재보다 불이익하게 변경되는 것인 만큼 근로시간을 저축하는 것보다 할증수당을 받고 일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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