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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전류 만지는 전기노동자 직업성암·뇌심혈관질환 '경고등'3개월 동안 건설노조에 질환 신고 노동자 26명 … 한전 앞에서 2천여명 채혈하고 "직접활선 중단" 촉구
   
▲ 건설노조

경주지역에서 전기원으로 일하는 천아무개(40)씨는 2014년 10월 한 달 넘게 두통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지역 대학병원에서도, 서울 종합병원에서도 끔찍한 두통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서너 차례 코피를 쏟았던 천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은 이비인후과에서 비인두암과 편평성세포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는 림프절을 타고 뇌하수체와 시신경까지 전이돼 있었다.

천씨는 2001년부터 15년 동안 활선 전선로에서 일했다. 병원은 "자외선과 미세먼지가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주치의는 천씨가 고압전선을 만진다고 하자 "암 발병에 (전자파도) 관련성이 있다"고 말했다. 키 186센티미터의 장신인 천씨는 암 발병 사실을 확인한 2014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았다. 몸무게가 30킬로그램 가까이 빠졌다. 시신경 마비로 동공이 움직이지 않던 오른쪽 눈은 항암치료 후 회복됐지만 충혈에다 이물질이 낀 것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말투도 어눌해졌다. 최근에는 뇌하수체 쪽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됐다. 수술을 할지, 약물 치료를 할지 조만간 결정해야 한다.

암투병 중이지만 천씨는 여전히 하루 평균 8시간, 한 달에 보름은 전신주를 타고 있다.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씨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전기 만지면서 얻은 병인데도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며 "가진 게 없는 게 죄"라고 토로했다. 그는 "체력이 버티는 한 일을 계속할 생각인데 항상 불안하다"며 "마스크나 장비도 없이 일하는 전기노동자들은 모두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암·뇌심혈관계질환 발병 잇따라=2만2천900볼트의 고압전류를 손으로 만지는 전기노동자들이 암이나 뇌심혈관계질환에 걸리거나 같은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연이어 보고되고 있다.

11일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회(위원장 석원희)에 따르면 한국전력 협력업체 소속으로 전남 순천에서 25년간 배전설비 보수업무를 한 장아무개씨가 지난해 5월 백혈병으로 숨졌다. 직업성암과 뇌심혈관계질환이 발병했다는 전기노동자들의 신고도 잇따르는 실정이다.

올해 2월부터 이달 10일까지 노조가 파악한 암·뇌심혈관계질환 발병 전기노동자들은 26명이다. 이 중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폐암(1명)·흉선종(1명)·대장암(1명)·심장질환(1명)·뇌경색(5명)·뇌종양(1명)·위암(4명)·간암(3명, 1명 사망)·갑상선암(2명)·세포암(1명)·췌장암(1명)·심근경색(1명, 사망)·백혈병(3명, 2명 사망)·부정맥(1명)을 앓고 있다.

전기분과위 관계자는 "활선작업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전기노동자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전기분과위는 전기노동자들의 질병 발병이 직접활선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활선배전은 전기를 살려 둔 채 진행하는 전기공사다. 활선배전은 다시 고압선을 손으로 만지는 직접활선과 핫스틱·로봇장비를 사용하는 간접활선으로 나뉜다. 미국·일본은 장비를 이용한 간접활선이나 작업구간에 전류가 흐르지 않게 우회시키는 바이패스케이블 공법을 쓴다.

문제는 비용이다. 전류를 차단하거나 우회시키면 공사비가 20% 가까이 더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직접활선 작업이 이뤄지는 이유다.

전류가 흐르는 곳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전자기파 노출은 물론 감전사고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초저주파 전자기장을 인체발암가능물질(Group 2B)로 분류하고 있다.

◇전기원 2천명 채혈검사=전기분과위는 이날 오전부터 전남 나주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전기노동자 2천명을 대상으로 채혈검사와 건강상담을 진행했다. 이철갑 조선대 의대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직접활선과 암·뇌심혈관계질환의 연관성을 의심할 만하다"며 "거리에 따라 전자기파 노출 정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간접활선만 해도 발병률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혈액검사 결과는 1주일 안에 나온다. 전기분과위는 근로복지공단에 전기원 산업재해 관련 자료로 검사 결과를 제출할 계획이다. 현재 공단은 지난해 7월 장씨의 유족이 신청한 산재유족급여·장의비 지급청구 건을 심사 중이다. 안전보건공단 산업보건연구원은 장씨의 사망원인인 백혈병이 업무와 연관이 있는지 확인하는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

한편 전기분과위는 이날 건강검진 뒤 직접활선공법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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