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 간접고용 현장실습 실태보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2005년 발표한 보고서 제목이다. 청소년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10~12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중소·영세 업체가 대부분인지라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산업재해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 후 10년여가 지났다. 문제는 외려 악화됐다.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해법을 찾는 이들의 기고를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김성호 공인노무사(성동근로자복지센터)

각 학교별 취업률이 집계되는 4월이 지나갔다. 학교 현장 중 어떤 곳은 잠시 한숨을 돌리기도 하겠지만 많은 곳에서는 2016년 취업률로 인해 정부 예산지원에 변화가 없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2017년 취업률에 차질이 없도록 채비를 시작한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학교별 취업률 경쟁에는 사업장으로 파견돼 시행되는 ‘파견형 현장실습’이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2011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발생한 과로에 의한 뇌출혈 사고(현재까지 뇌사상태), 2012년 12월 한라건설 해상 크레인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2014년 1월 CJ제일제당 사내 괴롭힘과 폭행에 의한 자살, 2014년 2월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금영ETS) 야간작업 중 공장지붕 붕괴 사망사고. 지난 5년 사이 언론에 보도된 현장실습 사고 소식이다. 현장실습 사업장 대부분이 하청업체거나 중소·영세 사업장인 점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사고 보도는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일 것이다. 지난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한국 폴리텍대학의 현장실습 산재은폐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교육’의 이름으로 고위험 작업에 내몰리다가 사망에까지 이르는 비극을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묵인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교육이란 말인가

2014년 말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학생(실습생)·교사, 동료 노동자, 교육청 관계자를 면접조사한 결과는 현장실습 문제와 이를 유지하게 하는 구조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줬다. 교사는 교육이 아닌 취업을 목적으로 현장실습 사업장을 매칭하고 있었고, 실습생도 현장실습과 취업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사업장으로 파견되고 있었다. 현장실습 사업장 사업주는 말만 실습이지 일반사원과 같다고 설명했고, 그 사업장의 동료노동자는 현장실습이란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취업생’이라고 부르며, 무언가를 배우는 개념은 없다고 말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는 취업률을 목적으로, 기업은 싼 노동력으로 이윤을 추구하려는 목적으로, 그리고 학생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현장실습을 대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2013년 5월에 열린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한 교장선생님은 현장실습이 특성화 교육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나의 문제는 다른 문제를 끌고 들어오며 위태로운 ‘기만의 연쇄고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위태로운 연쇄고리 중 하나가 끊어질 때마다 현장실습의 눌려진 문제들이 튕겨 나왔고, 결국 현장실습 사고로 이어졌던 것일 수도 있겠다.

기만의 연쇄고리는 다른 측면으로도 이어졌다. 전년도 졸업생들의 해당 사업장에서의 업무태도 등이 다음 연도 졸업생의 취업에 영향을 주는 구조 속에서 학교들은 적성에 맞지 않거나 과로·사내 폭력·괴롭힘·성추행으로 고통받는 학생들을 외면했고, 때로는 그냥 참으라며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도 했다. 사업체는 주기적으로 공급되고 다시 배출되는 싼 노동력을 영리하게 활용했으며, 동료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들어올 가망이 없는 실습생들을 동료가 아닌 ‘파견노동자’로 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실습생은 법의 보호도, 노동조합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고위험 작업과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곤 했다. 또 학교 취업지원관 상당수가 기간제 신분이다 보니 본인의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한 해 한 해의 취업률 실적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면접조사 결과를 정리하면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현장실습이지만 어디에도 교육의 권리와 보호를 찾을 수 없는 이 제도를 우리는 ‘교육’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것은 취업도 아니다

2015년 9월 발표된 ‘2015년 고졸 취업률’을 보면 고졸 취업률은 2009년 이후 6년 연속 상승해 2015년에는 46.6%를 나타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고졸 취업 활성화' 혹은 '산학일체형 직업교육' 등의 성과라고 자찬했고, 향후 ‘선 취업 후 진학’이나 ‘일·학습 병행’을 교육개혁 과제로 두고 산학일체형 도제교육을 확대·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고졸 취업률의 실상은 정부 발표와는 사뭇 달랐다.

고용률 70% 로드맵에 따라 정부가 지원금을 학교별 취업률과 연계하다 보니 학교들은 학생들의 진학의사를 경제적 이유로 억제하며 취업으로 유도했다. 그러나 그렇게 지원한 취업마저 1만1천731명의 취업자 중 4천581명은 실제 취업을 못한 것으로 확인됐고, 20%가 넘는 학생들은 전공과 무관한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취업)을 하고 있었다(감사원 발표).

일부 지역과 학교에서 치킨집·꽃집 등 전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업체에 임시 취업한 것도 현장실습(취업)에 포함시켰고, 실제 취직하지 않은 인원을 허수로 등록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여기에도 앞서 말한 ‘기만의 연쇄고리’가 어김없이 작동되고 있었다.

이렇듯 학생의 적성과 미래를 아우르는 진로·직업상담이 아닌 학교별 취업률 경쟁에 내몰리는 취업현실은 ‘특정 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초·중등교육법 시행령)’ 특성화고의 취지를 생각해 봤을 때 결코 취업답지도 못했다.

교육적 고려 없는 무권리 상태의 현장실습

현장실습은 1963년 학교의 교육기자재 부족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처음 시행됐다. 시행부터 교육적인 고려보다는 예산문제를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93년 신경제 5개년 개발계획과 함께 소위 3D 업종 인력공급을 목적으로 2+1(2년은 학교에서, 1년은 현장에서)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이 역시 교육적인 고려 없이 저임금 노동자를 기업에 공급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불법파견 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가고, 파업현장에서 노조원들을 막는 데 동원되거나, 법에서마저 금지하는 야간·휴일노동에 투입됐다. 안전장구류를 지급받지 못했으며, 폭행과 성희롱에도 노출되는 문제가 계속 나타났다.

2000년대부터 전교조·참여연대·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청소년단체 등의 노력으로 2003년과 2006년에 ‘실업계고교 현장실습 운영정상화방안’ 이끌어 냈다. 그러나 현장실습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기만의 연쇄고리’를 끊어 내는 방식이 아닌 현 상태를 유지하며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차원에 머물렀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8년에는 최소한의 안전판인 정상화 방안을 폐지해 버리고 말았다.

이 문제의 책임을 진 다른 한 축인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취업상태인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현장실습생의 무권리상태에 눈을 감았다.

노동부는 현장실습 도중 발생한 폭행·성희롱·산업재해에 등을 돌리다가 현장실습제도가 만들어진 지 35년이 지난 98년이 돼서야 산재보상에 관한 특례조치를 만들었고, 최근에야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될 경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는 권고를 했다. 그렇다고 노동부가 현장실습생에 대한 근로자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취업을 넘어 진로·직업교육으로

현장실습제도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교육은 교육답게, 취업은 취업답게 개념화하고 교육의 내용과 체계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현장실습을 취업의 통로로만 다루는 현실을 넘어 청소년의 진로와 직업에 대한 계획을 함께 찾아보고, 경험하는 과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직업교육의 로드맵을 교육계·노동계·시민사회계 등이 모여 사회적 논의를 통해 다시 짤 필요가 있다. 현장실습에 투여되는 비용의 책임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교육수요자인 국가가 비용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 실정이다.

배움의 과정에서부터 노동의 권리를 공기처럼 느낄 수 있도록 경험하고 익히게 해 줘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 또는 그 가족, 그리고 이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장실습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도적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장실습 문제는 우리 사회, 교육, 노동의 민낯과 속살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더 늦기 전에 각자의 책임을 조금씩 나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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