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9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6 보건의료산업 노사 공동 대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토론회에 참석한 노사 대표자들이 인사말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환자 한 명을 담당하는 의사와 간호사수가 늘어날수록 환자 사망률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 대토론회에서 ‘2016년 보건의료산업 노사가 함께해야 할 공동의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발생 1년을 맞아 보건의료산업 노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준)와 보건의료노조가 공동주최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5월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부실한 국내 의료체계를 확인했다. 병원내 감염병 관리는 취약했다. 환자 안전을 위해 보건의료인력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조성되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인력충원을 핵심 요구안으로 정했다. 인력 확충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것이다.

“왜곡된 수가구조 국민 건강 위험 초래”

김윤 교수의 주장도 궤를 같이한다. 김 교수는 “간호인력과 환자안전의 관계를 다룬 국외 90여개 논문에서 간호인력의 수가 환자안전에 유의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며 “환자당 간호사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높이면 환자 사망률이 최소 4%에서 최대 16%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의료인력은 나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OECD 국가 평균 의사수는 인구 천명당 3.2명, 간호사수는 9.67명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인구 천명당 의사 2.2명, 간호사수 4.84명이다. 의사와 간호사는 적은데 병상수는 2000년대 초반 이후 과잉상태로 전환돼 OECD 평균을 넘어섰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인력이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90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의사와 간호사수가 많으면 사망률이 낮고 의료사고의 발생률이 낮아지는 만큼 (의료행위에) 적정수가를 보장해 의료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왜곡된 수가구조로 인해 보건의료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는 의료장비를 통한 검사가 의료행위보다 수가가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은 의료인력을 늘리기보다 새로운 병원 장비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됐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의료기관 회계조사 연구 결과 의료기관 검체검사·영상검사 원가보전율은 각각 159%와 122%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진찰료(75%)·수술료(76%) 같은 의료행위 관련 수익은 원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같은 왜곡된 수가구조로 인해 병원이 인건비 지출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기계에는 후하고 사람에는 박한 수가체계로 인해 병원은 사망률이 높아도 진료비가 비싸다”며 “서비스 분야에서 돈을 많이 내고 질 낮은 서비스를 받는 곳은 병원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노사, 사회적 합의 이루면 국민 지지할 것”

이주호 노조 전략기획단장은 노사가 산별중앙교섭에서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비롯한 의료산업 현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섭에서 사용자측이 대표성을 갖기 위해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단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감염병 대응체계를 높이기 위해 보호자 없는 병원을 확대시행하고 있다”며 “개별 노사 간 불신의 벽을 넘어 초기업별 대화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공립대와 사립대 병원, 지방의료원이 사용자협의회에 참여해 산별교섭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이어 “보건의료정책·임금·일자리 같은 의제를 정해 노사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지난 3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주요 요구안으로 정해 올해 산별중앙교섭에 나서기로 했다. 노조는 △7.4% 임금인상 △인력확충 △3대 존중병원 만들기 △산별 노사관계 발전을 요구했다. 노조는 인력 확충을 이끌어 내기 위해 사용자측과 절충점을 찾을 방침이다. 이른바 ‘원포인트 합의’다. 이주호 단장은 “보건의료 노사는 2007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323억원의 비용을 투입해 67개 병원의 2천384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아름다운 합의를 한 전례가 있다”며 “메르스 해결을 위해 왜곡된 의료를 바로잡기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국민적 지지를 받아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원 사용자 산별교섭 참여할까

사용자들, 산별노조 거부감 강해 … 메르스 사태 이후 필요성은 커져


“국립대병원인 부산대병원에는 2012년 노조가 생겼는데 당시 노사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이후에는 달라져야 한다. 모든 병원이 (노사를 떠나) 한국 의료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돌아볼 때다.”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 대토론회에 참석한 이창훈 부산대병원장의 말이다. 부산대병원은 지난해 8월 의료민영화 저지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노조와 갈등을 빚었다. 국립대·사립대병원 사용자들의 태도는 이창훈 원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르스 이후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노사가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산별교섭에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국립대·사립대 병원은 2009년 이후 산별중앙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 노조는 이들 병원의 교섭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용자들은 산별중앙교섭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내보였다. 김경헌 한양대의료원장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의료산업 종사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있는 현안인 만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김 원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 경영상황은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결국은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 문제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산별중앙교섭 틀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김기정 경희의료원 인력관리본부장은 “사립대병원은 노조 요구로 검토 없이 산별교섭에 참여했다가 노조의 쟁의행위 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움을 치렀다”며 “산별교섭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노조가 정치적 요구를 지양하고 위임교섭에 따른 유연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교수(의과대학)는 “노사 모두 국민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하자면서 (교섭에서) 만나면 이념·정체성에 기반해 똑같은 말을 한다”며 “이번에는 개별 노사문제는 사업장별로 해결하고 어떤 의료가 국민에게 좋을지 노사가 만나 공통분모롤 뽑아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박 교수는 “노사가 이번 산별중앙교섭에서도 이념에 따라 각자 원하는 말만 자기 방식대로 주장한다면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지현 노조 위원장은 “25일 예정된 산별중앙교섭 상견례까지 어떤 논의를 할지 머리를 맞대자”며 “인력확충 문제를 함께 풀자고 부르면 어디든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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