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노조가 하면 투쟁, 사용자가 하면 로비란 말이 있다. 그런데 노사가 함께하면 투쟁도 로비도 아닌 정책 공조다. 허약한 의료체계를 바로잡는 것은 개별 노사가 풀 수 없는 문제다. 얼마 뒤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터진 지 꼭 1년이 된다. 의료체계를 바로잡는 정책을 논의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건의료 노사가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환자안전과 국민건강을 위한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유지현(48·사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지난 4일 서울 오전 영등포구 노조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올해 노조가 제출한 교섭요구안은 '안전한 병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노동자와 환자 모두 안전해야 하고, 그러려면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논리다. 노조는 이달 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4대 핵심요구안을 확정했다. 그중 으뜸은 보건의료인력 확충이다.

유지현 위원장은 인력확충과 관련한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돼 있다고 봤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겪은 탓이다. 국민은 허둥대던 정부의 초동대처에 놀랐고, 의료인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여기에 새로운 제도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인력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다. 보호자 없이 보건의료인력이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옛 포괄간호서비스) 얘기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지난해 시범운영에 이어 지난달부터 상급종합병원과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 시행됐다.

노조는 통합서비스에 따른 인력을 안정적으로 충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요·공급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는 불안정한 일자리로는 제도시행 효과를 낼 수 없기 대문이다.

유지현 위원장은 “노조는 올해 산별교섭에서 산업정책에 개입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교섭을 할 것”이라며 “국립대·사립대 병원이 교섭에 참여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는 산별교섭에 국립대·사립대 참여해야”

-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에 대한 노동계 안팎의 관심이 높다.


“2004년 노동계에서 첫 산별교섭을 시작해 두 번의 과도기가 있었다. 산별교섭에 참여하는 사업장마다 (임금인상분에 대한) 지불능력이 달라 임금인상률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에는 국립대·사립대 병원이 교섭에 참가하지 않았다. 주요 사업장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산별교섭 영향력과 파급력이 줄어들었다. 2007년 교섭에서는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쓰기로 하는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 냈다. 올해는 보건의료인력 확충의 골든타임이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인력확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개별 노사 간 교섭으로 풀 수 없었던 일자리 문제를 산별교섭으로 해결해 산별노조운동의 중요성을 보여 줄 생각이다.”

- 국립대·사립대 병원이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아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는데.

“2010년과 2011년 산별교섭이 한때 중단됐다. 2012년부터 지방의료원·특수목적병원이 참여하는 산별교섭을 했다. 지방의료원은 지역 거점병원으로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공병원이다. 특수목적병원도 각자 특성이 있는 병원이다. 매년 교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보건의료인력 문제는 병원 몇 곳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계 전체의 문제다.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립대·사립대 병원이 교섭에 참여해야 한다. 이 병원들은 제조업종으로 말하면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다. 의료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사회적 책임을 갖고 산별중앙교섭에 함께해야 한다.”

보건의료 노사 산별중앙교섭에는 국립중앙의료원·인천시의료원·경기도의료원·한국원자력의학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4일 국립대·사립대 병원에 교섭 참가 요청공문을 보냈다. 노조는 올해는 대형병원들의 참여를 통해 산별중앙교섭 파급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보건의료인력 늘리면 환자·노동자 모두 만족"

-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행대상 병원이 확대되고 있다.


“간호사들은 노동강도가 워낙 세다. 입사 첫해부터 그만두려는 간호사들이 속출한다.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를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요구가 임금인상과 인력충원이다. 처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인력까지 부족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을지대병원을 비롯한 일부 병원에서 시범운영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확대될 경우 노동강도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는 사직을 하고 떠나는 간호사가 10%를 넘어섰다. 종합병원의 경우 간호사 1명이 환자 8명에서 12명을 돌봐야 한다. 일본과 캐나다는 간호사 1명이 환자 4명 정도를 돌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병원에 따라 환자를 최소 7명에서 14명까지 맡는다. 보건의료 노동자와 국민 모두 만족하기 위해서는 현장 의견을 수렴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 모성정원제 실시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성정원제를 설명한다면.

“병원은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으로 인해 상시적으로 결원인력이 생긴다. 결원이 생기면 땜빵식으로 비정규 노동자로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성정원제는 정규직 사직이나 육아휴직으로 결원이 생기면 정규직으로 충원하는 제도다. 모성정원제에는 임신 16주 이내 32주 이후에 있는 여성노동자가 1일 2시간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상시·지속 업무에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비정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와 노동자가 존중받는 병원을 만들 수 있다.”

“보건정책 개입해 산별노조운동 불씨 살리겠다”

- 교섭에 참가하는 사용자들이 부담을 느낄 만한 내용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올해는 의료계 전반에 제도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7월29일부터는 환자안전법이 시행된다. 200병상 이상 병원에는 환자안전을 전담하는 인력이 필수적으로 배치된다. 그만큼 올해 노사 모두 풀어야 할 과제가 있고 사측도 산별중앙교섭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교섭에 나오라는 얘기가 아니다. 9일에 열리는 '보건의료산업 산별교섭 발전을 위한 노사대토론회'에서 사측 의견을 듣고 공감대도 만들면서 이 문제를 풀어 갈 계획이다.”

- 국립대·사립대 병원은 어떤 방식으로 교섭 참여를 이끌어 낼 생각인가.

“의료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을 논의하자는 데에는 사용자들도 동의한다. 하지만 교섭에 나오라고 요구하면 부담스러워 한다. 교섭 참가 요청공문을 보냈다. 노조는 인내심을 갖고 대형병원 사용자를 기다릴 생각이다. 9일 토론회와 25일 상견례까지 참가를 결정하지 않을 경우 투쟁할 수밖에 없다. 다음달 29일에는 3천여명이 상경투쟁을 하는 계획도 마련했다. 산별교섭에 불참하는 병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다양한 활동과 투쟁을 준비 중이다.”

- 올해 산별중앙교섭에 임하는 각오를 말해 달라.

“국민은 의료사고로 숨지는 사망자를 줄이고, 메르스 사태로 인해 불거진 감염병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 만족도를 높이고 안전한 병원을 만들 것이다. 올해가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골든타임이다. 2007년 산별교섭으로 아름다운 합의를 만들었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했으면 좋겠다. 임금과 인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임금인상 요구율은 7.4%다. 산별중앙교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면 산별노조운동이 살아나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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