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기업 구조조정이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3차 기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구조조정 고통이 늘 그랬듯이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처럼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두 차례에 걸쳐 노동자 퇴출이 당연시되는 한국형 기업 구조조정의 문제점과 실업급여 혜택 확대를 포함해 구조조정에 앞서 마련해야 할 사회안전망을 짚어 봤다.<편집자>

▲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해고된 지 일주일 지났네요. 가족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최근 실직한 임동원(53·가명)씨. 의료기기를 수입 판매하는 개인사업자였던 그는 3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거제로 왔다. 나이 많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취직이 가능하다는 인터넷 구인공고를 보고 선택한 일이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가족과는 생이별을 했다.

임씨는 그동안 선박에 전기케이블을 설치하는 일을 하며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벌었다. 상여금 50만원이 포함된 액수다. 잔업·특근을 하면 수당이 붙지만 지난해부터 일감이 절반으로 줄었다.

“올해 초부터 상여금이 밀리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에는 사장이 직원들을 불러 놓고 ‘앞으로 월급을 70%밖에 못 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원청에서 기성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회사 사정이 어렵다면서…. 상여금 없이 월급 70%면 한 달에 100만원밖에 안 돼요.”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처럼 타지에서 온 직원들을 위해 회사에서 원룸을 몇 개 빌려 기숙사로 썼는데, 전부 퇴실하라는 공지가 내려왔어요. 4대 보험을 제때 못 내 회사로 압류가 들어온다고, 감원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지난달에만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10여곳이 문을 닫았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주기 어려우니 체당금을 신청하라”며 직원들에게 사전에 폐업 사실을 알린 회사는 그나마 양심적인 편이다. 사장이 하루아침에 잠적해 버린 곳이 적지 않다.

2000년대 중반 일본의 반빈곤 운동을 이끌었던 유아사 마코토는 일본 사회를 ‘미끄럼틀 사회’에 비유했다. 한 번 미끄러지면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재기불능 사회'라는 뜻이다.

고용이 불안하고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실직은 빈곤을 향해 고꾸라지는 미끄럼틀이다. 최근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해고된 뒤 생활고에 시달리던 30대 청년이 강도로 돌변했다거나 또 다른 해고자가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사건이 신문 사회면 한 귀퉁이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임씨는 “나이 50 넘어 새 직장 찾기도 막막하고, 앞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하다”며 “실업급여(구직급여) 받아서 몇 달은 버티겠지만 그 뒤가 더 문제”라고 한숨을 쉬었다. 빈곤의 늪으로 미끄러져 내리지 말라고 그를 붙잡아 줄 손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부터 줄이자? 구조조정 1순위 '취약계층'

조선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업 구조조정이 통상 비정규직으로 일컬어지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하청을 재하청한’ 물량팀 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비능률적인 기업 구조를 짜임새 있게 재구성한다는 구조조정 본래 취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부터 줄이고 보자는 식이다.

사회적 보호에서 취약한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내동댕이쳐진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업자는 115만3천명으로 전년 대비 5.9% 늘었다. 이 중 6개월 이상 장기실업 상태에 놓인 인구는 11만2천명에 달한다. 1년 전보다 57.1%나 증가했다. 한번 직장을 잃으면 실직기간이 오래간다는 뜻이다.

실업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비해 고용보험제도가 운영 중이지만 고용안전망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넓은 데다, 고용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실업급여 수급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탓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1천931만2천명 중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42.5%로 정규직(82.4%)에 턱없이 못 미친다. 비정규직 절반 이상이 실직 후 생계대책 없이 소득단절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표1 참조>

실업급여 수급자 비율을 따져 봐도 마찬가지다. 통계청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실업자 대비 실업급여 인정자 비율은 9.09%, 실업급여 수급자 비율은 37.06%에 불과하다.<표2 참조>

사회보험 가입률이 가장 낮은 직업은 단순노무종사자다. 지난해 기준 단순노무종사자 고용보험 가입률은 37.7%에 머물렀다. 고용이 불안정해 노동시장 밖으로 퇴출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고용보험 보호를 받기 어려운 모순적인 구조다.

사회적 약자에게 되레 엄격한 실업급여제도

속수무책으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조선산업 노동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구조조정 1순위가 된 사내하청과 물량팀 노동자의 경우 실업급여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창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은 “시급제가 아닌 일당제로 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일당을 더 받기도 한다”며 “조선소에 일감이 많을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재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당장 생계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소 다단계 하도급의 밑바닥에 있는 물량팀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조선소 하청업체들은 물량팀이라는 별도 인력운용팀을 두고, 건설현장 ‘십장’ 격인 물량팀장이 물량팀 인원을 채용해 관리한다. '원청→하청→물량팀→2차 물량팀→3차 물량팀' 식으로 하도급 구조가 형성돼 있다.

한데 물량팀 노동자를 채용하는 물량팀장이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하창민 지회장은 “실업급여를 받기는커녕 평소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사용자에게 법률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이들은 정부가 조선업종을 대상으로 검토 중인 ‘고용위기지역’이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에 따른 지원에서도 제외된다”고 우려했다. 단기 임시직인 물량팀 노동자들은 정부 고용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조선소 사내하청과 물량팀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상태다. 노조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나면 원청이 조선소 출입자격을 박탈당하는 등 불이익이 뒤따른다. 법·제도는 물론 노조를 통한 보호마저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구조조정 희생양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고용노동부도 조선업계의 이 같은 실태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외려 “고용보험은 사후 확인해 가입한 뒤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업주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해당 노동자가 180일 이상 근무했다면 사후 가입을 통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절차를 알고 있는 노동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상자기사1 참조>
 

▲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실업급여 문턱 높인 고용보험법 개정안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지난달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수주 0건’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면 올해는 더 많은 인원이 실직대열에 휩쓸릴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까지 합치면 실직에 따른 고통의 크기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4·13 총선 이후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앞다퉈 역설했던 정부와 정치권은 이렇다 할 실업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가 조선업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도뿐이다. 당초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부에 건의한 ‘고용위기지역’ 지정은 절차가 까다로워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다.

결국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실업급여뿐이다. 현재 국회에는 실업급여 지급액과 지급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더 내면 더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30일 연장되고, 지급수준(소득대체율)은 50%에서 60%로 인상된다. 기존에는 이직 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일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직 전 24개월 동안 270일 이상 일해야 한다.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따져 보면 1년 정도 재직상태를 유지하면서 고용보험료를 납부해야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발생한다. 단기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실업급여 문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반면 ‘자발적 퇴사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도록 한 기존 조항은 유지된다. ‘자발적 퇴사’를 가장한 노동자 해고가 관행처럼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실업급여 수급자격에서 ‘자발적 퇴사자’를 배제하는 나라다.<상자기사2 참조>

‘파견법 개정’이 실업대책이라니…

실업대책 마련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정부는 정작 엉뚱한 데 힘을 쏟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노동개혁법 중에서 파견법을 자꾸 빼자고 그러는데 파견법이야말로 ‘일석사조’쯤 될 것”이라며 “구조조정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그런 실업자들이 파견법을 통해 빨리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그렇게 파견법만 통과되면 9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야당과 노동계의 반대에 부딪혀 노동 4법 강행처리에 실패한 정부·여당이 기업 구조조정을 명분 삼아 노동개혁 카드를 다시 꺼내 든 셈이다. 김준영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장은 “정부가 내놓은 구조조정 해법은 결국 노동개악”이라며 “파견법 개정이 실업대책으로서 어떤 실효성을 갖는지 입증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과관계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업급여 지급이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정도로는 부족한 만큼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와 관련한 정부의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실업급여 혜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구조조정기금을 만든다든지, 일자리 나누기를 하면 추가로 지원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지원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기실업자 실업급여 지원과 함께 중장기실업자에 대한 실업부조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실업자를 대상으로 자산조사를 거쳐 일정한 소득수준 이하인 사람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구묵 박사(전 원광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실업부조 도입효과와 관련한 ‘OECD 주요국 실업급여제도의 유형별 비교’ 연구에서 “실업급여와 실업부조를 함께 운영하는 국가가 실업급여만 운영하는 국가보다 실업자 기본생활 보장과 재취업 지원에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정부 실업대책에 국가재정 투입해야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와 성남시는 '한국형 실업부조'의 단초를 보여 준다. 서울시는 올해 7월부터 사회활동 참여의지가 높은 미취업·저소득층 청년 3천명을 선정해 최대 6개월에 걸쳐 사회참여 활동비로 월 50만원씩 현금으로 지급하는 ‘청년수당’을 시행한다. 성남시는 올해 1월부터 분기별로 만 19~24세 청년들의 복지향상과 취업역량 강화를 위해 일정액을 지원하는 ‘청년배당’을 시행 중이다.

서울시와 성남시의 시도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던 정부도 지난달 ‘정부판 청년수당’으로 불리는 ‘청년취업내일공제’ 도입계획을 발표했다. 청년의 자산 형성을 돕는다는 취지의 청년취업내일공제는 국가재정을 통한 직접지원이라는 점에서 기존 제도와 차별성을 갖는다. 노사가 분담한 고용보험기금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정부가 국가재정을 직접 투입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셈이다. 올해 기준 고용보험기금에서 정부 일반회계 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0.54%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고용보험기금을 이용한 '손 안 대고 코 풀기' 식 실업대책으로 일관했던 정부가 재정투입 필요성을 인식한 대목은 고무적이다.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은 정부 실업대책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며 “기업 구조조정에서 파생되는 실업문제를 최소화하는 다양한 대책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정부 재정투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상자기사1] “고용보험료 안 냈어도 실업급여 받을 수 있어요”

‘180일 이상 근무·비자발적 퇴사’ 요건 충족하면 고용보험 사후가입 가능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고용보험법(제13조)은 “이 법이 적용되는 사업에 고용된 날에 피보험자격을 취득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업주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180일 이상 임금근로자로 근무하다 비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 사실이 인정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고용보험 미가입 노동자가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관할 고용센터를 찾아가 ‘피보험자격 확인청구’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용보험 사후가입이 가능하다.

고용센터는 해당 노동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사업주에게는 고용보험 사후가입 사실을 통지한 뒤 보험료를 청구한다. 이때 사업주는 노동자가 내야 할 보험료까지 한꺼번에 납부해야 한다. 그런 다음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수순이다.

사후에 보험료를 납부하더라도, 보험료로 내는 돈보다 실직한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 혜택이 훨씬 크다. 직장을 잃어 생계난에 부딪힌 노동자들은 이런 제도를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절차를 알고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노동부는 그동안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다. 고용보험 가입률이 낮아질 것을 우려해서다.


 

[상자기사2] “사장 말 듣고 사표 썼는데, 실업급여 못 준대요”

‘자발적 퇴사자’ 실업급여 배제 규정 악용하는 사용자들


“3년 넘게 한 회사에 근무 중인 회사원입니다. 두 달 전 사장이 ‘회사가 어렵다’며 제가 지금 맡고 있는 직책이 회사에 꼭 필요한지 설명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회사가 어렵다면 퇴사를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요. 사장이 '스스로 퇴직하기로 결정했으니 자발적 퇴사에 해당한다'면서 실업급여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하네요.”

“소규모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다 현재는 일이 없어 쉬고 있습니다. 사장이 출근하지 말라고 해서요. 그런데 사장이 ‘일감이 없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면서 ‘내가 당신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다. 나가지 않겠다면 일감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네요. 그러더니 ‘권고사직이 아니므로 실업급여 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여태껏 사업하면서 실업급여 처리를 해 준 적이 없다. 처리해 주면 회사가 불이익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이다. 고용보험 당연가입 사업장에서 일하다 실직한 경우라도 실업급여(구직급여)를 받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까다로운 수급요건으로 인해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한 노동자들이 억울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 개인 사정에 따른 자진퇴사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한 고용보험법 조항을 사용자들이 악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실업급여 수급자격에서 ‘자발적 퇴사자’를 배제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자발적 퇴사자라도 3~4개월의 유예기간을 둔 뒤 엄격한 구직활동과 직업훈련을 전제로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자발적 퇴사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 금지규정은 우리나라 실업급여 수급률을 낮추는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2011년 청년유니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직·퇴사 경험이 있는 직장인 중 실업급여를 받아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예외는 있다. 회사에서 당초 제시한 근무조건을 2개월 이상 지키지 않았거나 임금체불이 있었다면 자발적 퇴사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 밖에 회사 이전으로 △통근이 곤란하거나(통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출퇴근 3시간 이상 소요) △다른 지역 사업장 전근 명령 △배우자나 부양가족 동거를 위해 거주지를 이전해야 하는 경우 퇴사시 실업급여 지급대상에 포함된다.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자발적 퇴사자라도 일정한 유예기간을 거쳐 실업급여를 지급하면 고용보호 사각지대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제언한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자 가운데 자발적 퇴사자 비율이 절반을 넘는 상황”이라며 “구직기간이 장기화된 자발적 퇴사자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면 수급률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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