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정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 기한을 하루 앞두고, 공공기관마다 각종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노조를 압박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가 이달 2일까지 성과연봉제 미도입 기관은 경영평가 성과급이나 임금동결·예산삭감, 정원협의 때 불이익을 주겠다며 협박하자 공공기관들이 불법을 감행하면서까지 막판 '도장 찍기'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 개입에 노사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국노총과 공공부문 3개 산별연맹이 3일 정치권에 가칭 '공공부문 노사관계 개선 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의원 감금·협박"=3일 한국노총과 공공노련에 따르면 지난 2일 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과 인천항만공사가 편법적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노사합의서를 작성해 기획재정부에 보고했다. 수산자원관리공단은 2일 오전 9시부터 부산 본사 19층 회의실에서 강영실 이사장 주재로 '성과연봉제 제도개선 관련 업무협의회'를 열었다. 김성규 수산자원관리공단노조 위원장이 노사합의서 작성을 거부하며 회사에 나오지 않자 노조 간부들과 동해·서해·남해·제주지사 대의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강영실 이사장은 "사업예산이 삭감되고 불이익을 받으면 책임질 수 있냐"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수석부위원장이 "도장 찍는 건 내 권한이 아니다"며 사퇴의사를 밝히고 나가자, 남아 있던 각 지사 대의원 4명에게 합의를 강요했다. 강 이사장은 "위원장이 연락이 안 되니 유고 상태로 봐야 한다"며 기한 내에 제도개선을 하지 않을 경우 기재부와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각종 불이익을 열거했다. "노조활동을 할 수 없는 부서로 인사발령하겠다"는 압력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14시간 가깝게 발이 묶인 채 압박을 받은 대의원들이 밤 11시께 서명을 하자 공단은 곧바로 이사회를 열어 보수규정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김성규 위원장은 "공단이 대의원들을 감금·협박해 합의서를 체결했다"며 "단체교섭과 협약체결 권한은 노조위원장에게 있기 때문에 합의서는 무효"라고 말했다.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하고, 법원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할 방침이다. 공단 관계자는 "급한 대로 연서하는 형태로 체결한 것"이라며 "이사장이 강요한 게 아니라 전향적으로 생각해 달라며 애걸하는 분위기였다"고 해명했다.

◇명의도용·사문서 위조 논란=인천항만공사에서는 2일 오후 6시께 팀장·본부장 10여명이 노조사무실로 몰려와 이현 인천항만공사노조 위원장의 퇴근을 막으면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 공사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과연봉제 도입 찬반투표에서 63% 반대로 부결됐는데도 "합의를 하자"며 붙잡은 것이다. 5시간이 넘는 대치 끝에 오후 11시40분께 이현 위원장이 가까스로 관리자들을 뚫고 사무실을 나간 사이 사무국장이 노조위원장 직인을 들고 가 노사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사무국장은 도장을 찍은 직후 사직서를 내고 잠적했다.

이현 위원장은 3일 오전 공사에 '노조 직인 불법도용 사실확인' 내용증명을 보내고, 사무국장을 사문서 위조로 경찰에 고소했다. 공공노련은 성명을 내고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노동개혁 핵심으로 내세우며 온갖 파렴치한 범법행위조차 묵인하고 방조하는 게 정부 개혁의 실체냐"며 "공공기관에 대한 노예연봉제와 쉬운 해고 도입 강요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불법시비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노조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노조 내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 한 기관에 대해서는 도입한 것으로 인정할지 다시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총 "국회서 논의하자"=공공기관마다 불법시비가 끊이지 않으면서 한국노총과 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는 정치권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법·부당한 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퇴출제 강제 도입행위를 중단하라"며 "공공부문 노사관계 개선을 위한 국회 차원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동만 위원장은 "지난해 노사정위에서 성과연봉제는 노사자치주의에 입각해 2년간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 틀을 갖춘 후에 시행하기로 했는데도 불법까지 자행하면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며 "국회에 특위를 설치해 당사자들과 대화채널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만나 국회에 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각 정당에도 제안서를 보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