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구조조정. 4·13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은 수권정당이 되겠다고, 패배한 여당은 수권정당이라고 구조조정을 말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나라 살리기 위해서라고 서둘러 해야 할 일이라고 다투어 말하고 있다.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조선과 해운 사업장들의 경영상태를 내세워 이 나라 경제는 심각한 위기라고 이구동성으로 구조조정이 살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양적완화를 두고서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을 지원하는 것을 두고서 논란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2016년 오늘 이 나라는 구조조정이 살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2. 낯선 풍경이 아니다. 권력이 기업 구조조정이 살길이라며 추진했던 것은 이 나라에서 새롭지 않다.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다. 대중경제를 외쳐 왔던 김대중 대통령이 그때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최고 권력자였다. 자동차·철강·항공·철도차량 등 제조업, 은행 등 금융업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됐다. 권력에 의해서 추진된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망하거나 살아남았다. IMF 처방에 따라 이 나라는 신자유주의로 구조조정을 당했다. 오늘 이 나라의 경제질서는 그때 단행했던 구조조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이 나라에서 주요 기업들은 그때 단행했던 구조조정, 기업구조재편으로 재탄생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다. 이 나라에서 권력은 여기까지 구조조정을 추억하고 있을 것이다. 기업을 망하게 하거나 살리는 것으로 구조조정을 말하고 그것이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것이라고 추억하고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에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지난날은 아름다운 추억일 수 있다. IMF 관리체제 아래의 기업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이 나라 기업들에게는 그때는 새로이 태어나고 도약했던 날일 테니, 그 기업의 주인 자본에게 구조조정은 아픈 추억은 아닐 것이다.

3. 수십만의 정규직 노동자가 정리해고·희망퇴직과 명예퇴직으로 사업장에서 쫓겨났다. 당시 살아남은 기업, 현대자동차조차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수백만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자가 실업자로, 심지어 노숙자가 되기도 했던 날이었다. 쫓겨나지 않은 노동자들은 임금의 반납·삭감·동결을 당했다. 기아그룹 소속 사업장을 비롯한 수많은 사업장에서 상여금·연차수당 등 임금의 반납이 회사 살리기 운동으로 전개됐다. IMF의 처방과 이에 따른 정부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가계부채는 엄청난 규모로 증가했고, 많은 이들이 고리대의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자살하기도 했다. IMF 관리체제 아래 구조조정은 이렇게 이 나라 노동자에게 추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을 안겨 줬다. 노동자들에게 IMF 관리체제 아래서 단행됐던 구조조정은 실업·임금 등 근로조건의 저하, 자살 등 고통으로 기억될 뿐이다. IMF가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자평했다는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과정은 노동자에게는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일 뿐이다. 당시 구조조정 반대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의 기치였다. 1998년 통합 출범한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을 중심으로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반대해서 총력투쟁·총파업투쟁을 전개했다. 권력은 이러한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대규모 공권력까지 투입해서 진압하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1998년 9월3일 전국 7개 공장에 중무장 경찰을 투입해서 조합원 2천400여명을 체포·연행해서 만도기계 파업투쟁을 진압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4. 구조조정에서 사용자 자본은 기업의 주인으로, 주채권은행 등 채권은행은 채권자로 기업의 구조조정방안을 정하는 데 참여한다. 워크아웃 기업구조개선작업이든, 기업 회생절차든 혹은 아직 이러한 법적 구조조정 단계에 이르지 않은 경우이든 이들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의 세상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법적인 권리로 그들에게 보장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그들의 일이다. 기업의 주인인 자본은 제가 가진 지분·주식을 휴지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기업의 채권자 채권은행은 제가 가진 채권을 회수 불능으로 되지 않도록 기업의 구조조정은 그들의 일이다. 가진 재산의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제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구조조정은 그들의 일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다시 오늘 권력의 말에 따라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당장 5월,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발표에 따라 조선 3사가 구조조정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뉴스는 보도하고 있다. “수주 절벽으로 자체 인력 및 조직 축소가 불가피한 데다 정부의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5월에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구조조정 태풍이 조선업계에 몰아닥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달 26일 5대 업종 구조조정안을 발표해 조선사들에 강력한 자구안 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채권단 관리로 넘어온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정부는 당초 계획 대비 추가 인력감축, 급여체계 개편, 비용절감 등을 포함한 추가 자구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9년까지 인력 2천300여명을 추가 감축해 전체 인원을 1만명 수준으로 줄이는 구조조정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데 이 일정을 더욱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고 뉴스는 보도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28일 전체 임원의 25%인 60여명 감축을 단행한 가운데 이달 직원 및 각종 급여·복지 체계에 대한 감축 등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을 예고하고, 우선 지난 1일부터는 휴일 연장근로를 없애고 고정 연장근로도 폐지하기로 하는 등 각종 비용 감축에 나섰으며, 임원 4분의 1 가량이 옷을 벗음에 따라 전체 현대중공업 직원 2만7천여명 중 일부에 대해 희망퇴직 또는 권고사직 등 다양한 형식으로 감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일각에서는 3천명 감원설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중공업 또한 희망퇴직 등을 통해 대우조선 수준의 감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구조조정이다. 권력과 자본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됐다. 인력을 감축하고, 임금·복지를 삭감하는 것을 빼고서는 구조조정은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리 절박하고 시급해도 주식을 소각하고 매각하며 채권을 탕감하는 것만으로 기업의 주인 자본과 채권자가 손해를 감수하는 것만으로 구조조정은 실시되지 않았다. IMF 관리체제 아래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노동자들을 내쫓고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삭감하는 구조조정을 권력과 자본은 말하고 있다. 사실 이미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 조선사들에서는 많은 인력이 감축되고 있다. 위 뉴스 기사에서는 나타나 있지 않은 조선사 사내하청업체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아무도 그들의 일자리를 걱정해 주지 않았던 조선소를 그들은 떠나갔다. 조선소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조선사 정규직의 2~3배 이상이다. 아무 대책도 없이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고려도 되지 않는 사이에 그렇게 자신들에게 무심하기만 한 이 나라에서 이미 구조조정되고 있다. 조선소 노동자는 연장·야간·휴일근로 등 초과근로를 통해 가족을 부양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임금을 지급받아 왔다. 야간노동 없이 주 40시간으로 5일제로 법정근로시간만을 일하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 이 나라의 많은 노동자들처럼 정규직이든 사내하청 노동자든 초과근로를 하지 않고서는 기본급과 몇 가지 수당으로 지급되는 월급봉투로는 살아가기 어렵다. 그런 그들이 이미 생산물량 감소로 잔업·특근을 하지 못해 실질적으로 임금삭감의 구조조정을 당하고 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라는 것이 노동조합의 과도한 임금·단체협약 요구라고 비난받고 있지만, 그 요구가 관철되더라도 잔업·특근이 없으니 더 받을 임금도 없을 정도로 이미 실질적으로 임금이 구조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기본급 등 임금 인상이 아니면 이렇게 구조조정당한 노동자의 임금은 회복될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 있다. 이렇게 이미 구조조정은 노동자에게 닥치고 있다.

5.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의 일이 아니다. 이미 노동자들은 당하고 있지만, 이 나라에서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일이 아니다. IMF 관리체제에서 구조조정 반대 총파업투쟁을 하던 1998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전히 그것은 권력과 자본의 일일 뿐이다. 구조조정의 주체인 그들에게 노동자는 그들의 처분에 따라야 하는 객체, 구조조정의 대상일 뿐이다. 이 세상의 법은 주식과 채권의 소유로 그들의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니 객체로 존재하는 한 노동자는 주인의 처분에 따라야 하는 노예일 뿐이다. 이런 노동자들에게는 기업 구조조정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 살인으로 보일 뿐이다. 노동자들에게 기업 구조조정은 아무리 기억해 봐야 자신을 죽이는 ‘살인의 추억’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법은 분명히 노동자는 기업 구조조정의 주인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독일 등 유럽 나라에서처럼 노동자대표·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공동결정 내지 경영참가의 제도가 법으로 보장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주인인 자본과 채권자만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자들은 일자리와 임금삭감이라는 손해를 입는다. 주주와 채권자는 재산 일부의 손실을 감수할지 모르지만 노동자는 생존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한다. 자본이 해당 사업장에서 축적해온 재산을 모조리 쏟아내는 것도 아니다. 오늘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에서 주인은 자신이 축적해 온 재산-아마도 수십조원에 해당할 것이 분명하다-을 쏟아 내겠다고 약속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인이고 노동자는 주인의 처분에 따라 일자리를 잃고 임금을 삭감당해야 하는 노예라고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노조와 합의 없는 구조조정 반대의 파업투쟁은 정당한 쟁의행위의 목적이 아니라고 법원은 반복해서 판결해 왔다. 그러나 법이 선언하지 않았다고 노동자가 언제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이 노동자에게 기업 구조조정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으니 노동자는 자신의 힘으로 살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한 단결체, 노동조합이 구조조정을 자신의 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 죽이는 구조조정 반대한다고, 노동자(대표) 참여 없이 구조조정 없다고 이 노동자 살리기에 무심한 나라에서 노동자는 말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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