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호 공인노무사(성동근로자복지센터)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정규교육과정 수업 1만 시간 중에서 노동문제를 배우는 시간은 2~5시간 정도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반계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서 노동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2%뿐이라는 내용도 있다. 그마저도 실업이나 바람직한 노사관계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으니 실제 노동자 권리나 사용자 책임에 관한 내용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일부는 선택과목에 담겨 있어 학생들이 졸업 때까지 관련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70~80%가 노동자 또는 그 가족이 되고, 일부는 경영자가 될 것이다. 노동자가 되든, 경영자가 되든 하루 생활의 8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고 출퇴근과 연장노동까지 감안하면 잠자는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에 할애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는 ‘무관심’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4월29일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교육부가 “근로권익과 직업윤리에 대한 교육을 확대하고 교육방식을 질적으로 제고하겠다”고 발표했다(제2차 청소년종합보호대책). 발표만 보면 제법 고무적인 상황이 된 듯하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규교과에 노동교육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활동했던 일들이 작게나마 결실을 맺는 느낌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정부는 2012년 발표한 제1차 청소년종합보호대책(2013~2015)에서도 “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청소년근로자 근로조건 및 권리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그 대책이 구체화된 것이 그나마 앞서 말한 2~5시간, 혹은 2% 수치로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노동교육을 강화한 게 2~5시간이니 ‘확대 및 질적 제고’가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하다.

정부 대책이 발표처럼 질적 제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교육시간을 양적으로 확대하고 맥락이 있는 내용으로 기술해야 한다. 한국노동교육원(현 한국기술교육대 고용노동연수원)이 2003년 발표한 '선진 5개국 학교노동교육 실태'를 보면 해외에서는 사회·법과목 외에 경제·윤리·사회학 등의 영역에서도 노동교육을 다룬다. 그 내용도 '노동의 권리' 정도로 협소한 것이 아니라 노동기본권·노동시장·노사관계, 노동(노사관계) 역사,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쟁의행위 방식 등 풍부하고 실질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빈약한 내용의 노동교육을 하는 대신 정부는 '균형'을 내세워 기업가 정신이나 직업윤리도 함께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우리 교육에는 이 내용이 극심하게 편중돼 있음에도 말이다. 노동자와 그 가족이 될 사람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지나치게 가르치는 것은 일상화된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통을 노동자가 아닌 기업과 정부의 시선으로 이해하라는 메시지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수업은 주입식 방법이 아닌 참여·토론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권리를 주장하고 조정하는 과정은 자신의 요구를 스스로의 목소리로 만들고 나와 다른 의견을 설득하거나 조정하는 훈련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장기적인 평생교육이나 직업훈련 로드맵과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정부 직업훈련 관련 정책의 문제점은 한국 사회 산업특성을 반영한다기보다 외국에서 눈에 띄는 사례를 기계적이고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교육은 사회와 동떨어지게 진행되고, 문제가 제기돼도 땜질식 대책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성장과 자립 과정을 지원하는 교육체계와 그 속에서 노동교육이라는 밑그림이 필요한 이유다.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전교조가 노동교육에 대한 스스로의 상을 만들길 기대한다. 외국에서는 내셔널센터가 직업훈련 로드맵을 가지고 정부와 협상(협의)을 한다고 한다. 정부의 노동억압 정책으로 인해 숱한 현안투쟁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노동자 삶을 긴 호흡으로 책임지는 역할 역시 내셔널센터의 빼놓을 수 없는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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