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최근 운동엔 '기승전박'이란 말이 있다. 기승전결에서 차용했고, '박'은 박근혜를 뜻한다. 무슨 사안을 다루든 어떤 형태의 실천이든 박근혜 퇴진으로 귀결되고 박근혜 퇴진에서 멈추는 현상을 빗댄 표현이다. 현 단계 운동 수준을 단적으로 꼬집는 표현이다.

대통령 퇴진투쟁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땐 실효성이 컸다. 국민이 호응했다. 정부를 찬탈했고 정당성이 결여된 군사독재였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로 회를 거듭하면서는 실효성이 떨어졌다. 형식적이든 어쨌든 민주절차로 국민이 직접 선출한 정부였다. 누가 붙든다 해도 5년이면 자동 퇴진하는 짧은 임기의 자리다. 국민은 특수한 정세가 펼쳐지지 않는 한 중도 퇴진에 동의하지 않는다. 섣불리 밀어붙였다간 민심의 몰매를 맞는다.

퇴진투쟁은 대통령을 고립시키고 운동 지평을 넓히는 것, 청와대를 압박해 요구를 수용하게 만드는 것, 투쟁 태세와 정세 파고를 높이는 것, 퇴진 뒤의 새로운 정부 및 사회 전망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 실제 퇴진시키고 신정부를 구성하는 것 등의 의미가 있다. 여기에 하나라도 적합해야 퇴진투쟁은 전략·전술로서 성립된다.

현실은 어떤가. 기승전박 민중운동은 퇴진투쟁을 전개할 실력도 결의도 없다. 당면 정세에서 그 싸움이 실제로 전개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도 안다. 운동 초토화요, 감옥살이다. 그래서 이쑤시개 치켜들고 악어에게 덤비는 '웃픈' 희극을 반복한다. 악어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100미터 밖에서 "악어 죽어라" 소리만 친다. 악어가 짜증 내며 다가오면 도망치기 바쁘다. 근처까지 가는 용감한 몇몇이 있긴 하다. 그러나 찔러 봐야 가죽엔 흠도 나지 않고 이쑤시개만 부러진 채 허망하게 죽을 게 빤하니까, 1미터 밖 허공을 찌르는 시늉만 하곤 내뺀다. 이 촌극을 운동이 알고 대통령도 안다. 그렇다. 퇴진은 그냥 구호 수준이다. 국민이 모를 리 없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운동에도 진정성 없는 구호인데 국민 마음에 꽂힐 리 만무하다. 재밌는 영화도 거듭 보면 식상하다. 퇴진구호 반복은 운동을 상투적 반대집단으로 인식시킨다. 퇴진구호 무게에 다른 구호가 가려지는 탓이다. 쟤들은 항상 저래, 들을 게 뭐 있어, 라는 심리만 강화시킨다.

둘째, 때론 대통령을 되레 강화시키는 마술도 부린다. 한국은 바닥까지 진영정치로 갈라진 사회다. 대구 태생이란 이유로 평생 수구정당을 지지하기도 한다. 운동은 야당 지지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나머지 절반에도 함께해야 할 노동자·민중이 있다. 퇴진구호는 그들을 오히려 대통령에게 밀어 넣는다. 위기에 처한 대통령을 구하자는 심리를 발동시킨다. 운동이 퇴진을 세게 외치는데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역설이 종종 발생하는 건 그래서다.

셋째, 차기 대선이 되면 대통령과 선 긋는 집권당 후보 또는 보수야당 후보가 퇴진구호 상징으로 많은 국민의 인식을 왜곡시킨다. 박근혜가 그런 사례였다. 작금엔 유승민과 문재인과 안철수가 박근혜 대척점의 상징이다. 운동은 들러리로 전락한다.

넷째, 운동을 더욱 게으르게 한다. 국민을 대통령에게서 진짜 멀어지게 만들 묘수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퇴진 현수막과 선전물이면 땡이다. 일부를 뺀 다수 국민,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에 지쳐 세상 쳐다볼 겨를조차 없는 민초들은 대통령 퇴진 같은 실현 불가능한 구호에 끌리지 않는다. 민생복지·담뱃값·최저임금·위안부 문제 같이 피부에 와 닿는 사안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그것만 해야 한다. 고개 끄덕이다가도 퇴진구호가 나오면 뒤돌아선다.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퇴진을 걸지 않았다. "대통령이 책임져라"였다. 그게 더 설득력이 있었다.

다섯째, 운동의 영혼은 세상 변화의 꿈이다. 작금의 운동에선 거의 사라졌다. 퇴진구호에 안주하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영혼마저 갉아먹는 것이다. 팍팍한 삶에 지친 다수는 희망을 갈구한다.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인데 자꾸만 부정적 주장을 앞세우면 듣기 싫어진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를 던져서 비웃음당할 것 같다면, 자주정부를 꺼내서 내부논란이 심해질 것 같다면, 단계적으로 서민정부라는 프레임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퇴진은 전망이 아니고 희망도 아니다. 전망은 새로운 사회의 상이다. 희망은 그 상을 뒷받침하고 민중이 피부로 절감할 수 있는 대안이다. 운동은 그걸 중심에 둬야 한다.

그럼에도 민중운동은 주야장천 '기승전대통령'이다. 제 분을 못 이겨서다. 변혁의 꿈을 잃어서다. 다들 너무 잘나서다. 뭔가 전망을 고민하는 단위가 있으면 이건 저래서 안 되고 저건 그래서 안 된다며 이론적 허점을 귀신처럼 찾아내 방해한다. 현실은 이론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곤 왠지 허전하니까, 퇴진구호를 만병통치약처럼 꺼낸다.

퇴진구호는 엄밀해야 한다. 지금은 아무리 봐도 주·객관적 조건이 아니다. 남은 임기 박근혜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기 위해서라도 퇴진구호는 그만 외쳐야 한다.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인다. 민중운동이 박근혜 퇴진투쟁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됐다는 아전인수는 없어야 한다. 박근혜 퇴진을 전면에 걸고 13만명이나 집결했던 2015년 1차 민중총궐기 직후 민심은 민중운동을 싸늘하게 외면했다. 우리가 벌써 그걸 까먹진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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