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올해 10월부터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근로자 이사제’가 도입된다. 근로자 대표를 비상임 이사로 선임해 이사회 참여를 보장하고, 회사 경영상황을 논의하는 경영협의회를 설치·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노동자가 단체교섭·노사협의회 같은 제한적 틀에서 벗어나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참여형 노사관계, 노사갈등↓ 효율성↑"=박원순 서울시장은 노동절을 며칠 앞둔 27일 오전 노동종합정책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을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박 시장은 “기업경영이 투명하지 않고 노사협력이 원활하지 않은 사회는 갈등과 불신이 팽배하고 결과적으로 성장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며 “독일 등 유럽 18개 선진국이 최고의 성장을 거듭하는 배경에는 근로자 이사제 같은 노동자 참여형 경영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어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3년 코레일 총파업으로 발생한 영업손실이 447억원에 달한다”며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하고 노사민정 협력체계를 강화하면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과 시민불편이 줄어들고 경제사회적 편익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형 노사관계를 구축해 '노사갈등 감소'와 '효율성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시장은 2014년 11월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경영혁신방안’과 지난해 4월 ‘서울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통해 근로자 이사제와 경영협의회 도입계획을 밝힌 바 있다. 올해 들어서는 지하철 두 공사 통합과 근로자 이사제 도입을 함께 추진했지만, 공사 통합 자체가 무산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공사 통합으로 근로자 이사제의 순조로운 출발을 기대했던 서울시로서는 당혹스러운 결과였다.

서울시는 그러나 산하 19개 투자·출연기관에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하는 논의를 지속할 방침이다. 다음달 초 서울시와 투자·출연기관 노사, 전문가들이 비공개 워크숍을 갖고 제도 도입을 위한 제반사항을 논의한다. 박 시장은 “서울시가 근로자 이사제 도입을 혼자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고, 노사가 한자리에서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다음달 초중순께 다시 깊이 있게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근로자 이사제의 구체적인 윤곽은 대시민 발표 형태로 공개될 예정이다.

당초 ‘노동이사제’로 명명했던 제도 명칭은 ‘근로자 이사제’로 변경하기로 했다. 근로기준법이나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서 법률용어로 쓰이는 ‘근로자’ 개념을 따왔다. 관련 조례 등을 제정할 때 해석상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6~9월 근로자 이사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과 조례 제정을 비롯한 제도화 과정을 거쳐 빠르면 올해 10월부터 해당 기관에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노동권 침해 노동자 소송 지원=이날 서울시가 내놓은 종합정책에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이 포함됐다. 산하기관인 서울신용보증재단과 서울의료원에 노동시간 단축모델을 도입한다. 예컨대 △시간외근무 주 8시간 상한제 △시간외수당과 연차수당 점진적 감축 △단축근무제 도입에 따른 절감예산으로 일자리 창출기금 조성 △교대제 개선 △모성 관련 휴직지원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두 기관에서 노동시간 단축모델을 적용한 뒤 19개 산하기관으로 확산할 방침이다.

노동권을 침해당한 월 소득 250만원 이하 시민(서울 소재 사업장 노동자 포함)을 대상으로 상담뿐만 아니라 진정·청구·행정소송까지 무료로 지원하는 내용도 종합정책에 포함됐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대리운전·퀵서비스·택배기사들도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노동권을 침해받은 노동자에 대한 법적 권리구제는 '노동권리보호관'이 맡는다. 보호관은 변호사 25명과 노무사 15명으로 구성되고, 2018년까지 100명으로 확대된다.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다산콜센터나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신고하면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이 1차로 상담하고 구제지원이 필요할 경우 노동권리보호관을 원스톱으로 연결해 준다.

박 시장은 새로 들어설 20대 국회를 상대로 “생활임금의 보편적 적용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최저임금법과 지방계약법(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개정, 지방 특별사법경찰 단속업무에 근로감독권을 추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을 건의한다”며 “20대 국회가 노동존중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여야 민생경제협의체’ 운영에 나서 주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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