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전북본부)

"도망 나왔어요. 다시 가면 죽일지 몰라요."

우리 사무실 공인노무사가 어느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나서 그 청소년들이 했던 말이라고 기가 찬 표정을 하면서 꺼낸 말이다. 어느 전쟁터에서나 들을 법한 말을 21세기 우리나라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들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 사업장에서 '도망' 나왔다고 수차례 반복했다. 아이들에게 21세기 한국의 사업장은 퇴사하는 곳이 아니다. 도망쳐야 하는 곳이다.

상담 내용을 자세히 들어 보니, 겨울이 되면 이 지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리조트와 그 리조트 앞 일부 펜션 및 스키 장비 대여업체가 성수기가 되는지라, 스키도 타면서 돈도 번다는 광고로 말 잘 듣는 아이들을 모집하고서 밤낮없이 일시키고 정작 임금은 안 준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돈이 필요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임금을 못 받으니 결국 돈 5만원을 '가불'해 '탈출'했고, 어찌저찌해서 '탈출'한 아이들이 용기를 내서 사장에게 밀린 임금 달라 하니 "줄 테니까 와라. 칼로 배를 XX버릴 테니까" 등등의 욕설과 협박만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때 당한 일들이 생각나는지 상담하는 내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는데도 겁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필자는 이전에도 이렇게 성수기 관광지에서 어린 청소년들이 일만 죽어라 하고, 임금은커녕 욕설과 협박만 듣고 돌아오는 사례(어른들이 청소년 상대로 협박해 '삥' 뜯는 것과 다를 바 없다!)를 상담하고 지원한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그때와 비교해 조금도 나아진 게 없는 것이다. 이전 그 청소년들은 오늘 이 청소년들의 형일지도 모르고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내일은 이 청소년들의 동생들이 어른에게 '삥'을 뜯기게 될 거라는 얘기다.

아무런 정당성도 없이 강자가 약자에게 오로지 힘으로 무언가를 빼앗는 행위를 '삥 뜯는 것'이라 한다면 삥 뜯기는 게 어찌 어린 청소년들뿐이랴. 이 땅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에 항상 삥을 뜯긴다. 조폭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자릿세를 내면서 수시로 삥을 뜯기는 처지다. 한낱 행정명령으로 헌법상 보장된 교사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부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임자·사무실까지 삥 뜯고, 한낱 행정지침으로 노동자들을 저성과자로 낙인찍어 쥐꼬리만 한 임금조차 삥 뜯고, 한낱 가이드라인으로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얻은 각종 편의사항도 불법이랍시고 삥 뜯고, 부당하다고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구속해 삥 뜯어 가고 있다.

어느 고인류학 책을 보면 현생인류, 즉 호모사피엔스종과 다른 종을 구별하는 특징 중 하나는 '이타심'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류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종이나 고릴라 등 유인원 같은 종은 자신들의 생존과 번창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생산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개체(노인과 장애인 등)를 제거하는 반면, 현생인류는 그들을 보살펴 줬는데 결과적으로 그 이타심이 있는 현생인류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타심'으로 다른 종과 구분되는 현생인류인 현재 사회적 강자들이 약자들에게 삥 뜯는 행위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종이 자연적 약자들을 제거하는 행위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적어도 현재 정부는 현생인류로 구성된 단체임에도 '이타심'이란 유전적 특징은 없어 보인다. 저 고인류학 학자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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