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부디 저희 정신보건 종사자들이 고용이나 처우가 아니라 환자들에게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힘써 주길 간절히 부탁합니다.”

손상희 은평구정신건강증진센터 팀장은 25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시 정신보건사업 종사자 노동조건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이렇게 호소했다. 이날 토론회는 보건의료노조와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민생실천위원회가 주최했다.

서울시에는 2013년 기준 451곳의 정신의료기관(국립·시립·민간)이 있고 이곳에 514명의 정신보건 종사자들이 일하고 있다. 인구 십만명당 5.1명 수준이다. 이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서울지역 27개 광역·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근무하는 정신보건사업 종사자들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높은 노동강도와 고용불안까지 이중고에 시달리는 셈이다. 손상희 팀장은 “올해로 8년차가 됐지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격무와 고용불안, 이중고”

손상희 팀장은 정신보건 간호사다. 정신보건 전문요원으로 불리는데 사회복지사나 간호사·임상심리사 자격을 취득한 뒤 최소 1년 이상의 임상수련을 거쳐 전문요원이 될 수 있다. 어렵게 자격을 얻은 만큼 보람도 크다. 손 팀장은 “환자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병원에서 환자를 돌봤던 때와는 다른 차원의 보람을 느꼈다”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조현병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설득했고 (환자가)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힘든 일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회의감도 떨칠 수 없다. 손 팀장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알코올중독 환자에게 폭언을 듣거나 성희롱을 당한 적도 있다"며 "여성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폭언이나 폭행보다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 해고될 지 모른다는 불확실함이다. 손 팀장은 "처음 센터에 입사했을 때부터 했던 고민을 8년이 지난 지금도 하고 있다"며 “결혼 6년 만에 어렵게 임신을 했고 3번이나 유산할 뻔하면서도 일이 좋았는데 고용불안 때문에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신보건 종사자들은 서울시 또는 25개 자치구에서 근무하지만 민간위탁기관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다. 위탁사업자가 바뀔 경우 사표를 쓰고 재입사하는 식으로 계약한다. 그때마다 고용은 불안정해진다.

"실사용자인 서울시가 결자해지해야"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신보건 종사자의 실사용자인 서울시가 결자해지하라고 주문했다. 김 연구위원은 ‘서울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 노동실태와 개선방향’ 발제에서 "서울시는 고용관계상 정신보건 종사자의 사용자 위치에 있다"며 "서울시가 종사자들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을 책임져야 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 예산은 서울시와 자치구가 반반씩 부담하고 있지만 위탁사업자에게 운영을 맡기면서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위탁·재위탁 과정에서 서울지역 센터 10곳 중 3곳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올해 3월 말부터 2주 동안 진행한 센터 노동자 설문조사에서는 사직과 퇴사를 강요받았다는 응답도 나왔다.

김 연구위원은 “정신건강증진센터 민간위탁 문제로 인해 노사관계 문제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서울시는 민간위탁 문제를 예산과 인력문제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시민의 서비스 질과 공공성 측면에서 봐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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