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따란 플라스틱 화분에 거름기 많은 흙을 채웠고 씨앗을 뿌렸다. 강낭콩과 분꽃, 해바라기며 채송화와 봉선화까지 종류도 가지가지. 물 주기를 잊지 않고 살폈다. 햇볕과 바람을 신경 썼다. 어느 날 아침 새싹이 삐죽 여기저기 솟았다. 하루하루 달랐다. 가만히 들여다보기를 즐겼다. 한 시간도 훌쩍 갔다. 사방천지에 널린 게 새싹이고 꽃인데, 시간 들이고 마음 준 탓인지 하나하나가 특별해 보였다. 촘촘히 난 것들을 솎아 줘야 한다고 들었지만, 어느 놈을 살리고 어떤 놈을 죽일지를 결정하는 일이 참 버거웠다. 고민 끝에 내민 손이 떨렸다. 그 짧은 틈에 뿌리 어찌나 구석구석 깊게 뻗었던지. 옮겨심기가 쉽지 않았다. 그 작은 것들의 생명력에 감탄했다. 하늘 향해 뭐라도 쑥쑥 자라는 한창 봄이다. 저기 구로동, 아니 지금은 가산동 어느 문 닫힌 공장 담벼락에도 초록 잎이 한창이다. 가꾸지 않은 탓에 무성했다. 아스팔트 좁은 틈 척박한 데서 무럭무럭, 햇볕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사방으로 뻗었다. 하늘 가까이 쑥쑥 솟았다. 거기 얼기설기 지은 철탑에 사람 둘이 올라 산다. 공장 이전이 해고와 노조파괴 절차라며 싸운다. 언젠가부터 삐죽 솟았다 하면 고공농성이다. 척박한 땅에서 참 질기게도 자란다. 구석구석 뿌리 깊다. 입 거친 용역경비 들이닥친 이후로 그곳 담벼락이 더욱 높았다. 난리 통에 쫓겨난 사람들이 거기 기대어 지친 몸을 잠시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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