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주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회사의 위법한 직무변경명령·인사평가·해고·전보명령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 오던 노동자가 있다. 그 노동자는 적응장애를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에 최초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사업장은 산재 요양급여신청서 날인을 거부했고, 공단은 “업무상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인정되나 그 정도가 적응장애를 유발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며, 회사와 마찰이 지속되는 노조 업무를 하다가 발생한 갈등 상황에서 개인적인 성향(소송형)의 표출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므로 신청 상병과 업무 간에 의학적 상당인과관계를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라며 최초요양 급여신청을 불승인했다.

위 노동자의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을 맡게 되고 공단의 불승인처분서를 보았을 때 놀란 건 의학적이라고도 법률적이라고도 볼 수 없는 '소송형'이라는 표현이었다. 소송형이라니.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고 노동조합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를 하니, 노동자들은 싸우다 싸우다 법에 규정돼 있는 법적 구제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여러 법적 대응도 하는 것인데, 법적 수단을 강구하면 '소송형 인간'이 된다는 말인가. 정작 공단이 살펴야 하는 사항은 해당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몇 건의 소송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도대체 왜 이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여러 건의 소송을 하고 있는지, 소송을 유발한 책임이 회사에 있는 게 아닌지, 소송을 유발한 회사로 인해 이 노동자가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 왔는지 여부다. 그럼에도 공단은 그 노동자를 소송형 인간으로 낙인찍고, 요양불승인처분서에 명시한 '소송형'이라는 한마디 표현으로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단의 불승인처분서를 봤을 때 두 번째로 놀란 건 “업무상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인정되나 그 정도가 적응장애를 유발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었다. 요양신청 당시 이미 회사의 직무변경명령이 위법했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 회사 해고가 위법했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확정 판정, 하급심 법원에서 회사의 인사평가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온 상황이었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한 직무변경명령은 2년5개월이 지나서 대법원에서 위법하다고 최종 판단됐고, 회사가 노동자에게 한 해고는 1년5개월이 지나서 중앙노동위 판정 후 회사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소취하를 하면서 위법하다는 것이 확정됐다. 회사의 부당인사평가는 3년이 지나서 부당하다고 하급심 법원에서 판단됐고, 그 후 확정됐다. 요양신청 당시 회사는 또 한 차례 부당전보명령을 한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이처럼 수차례 부당한 직무변경명령·해고·인사고과를 겪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이처럼 부당한 처우를 계속 받았다면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노동자의 진료기록상에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공단의 불승인처분이 누구의 감정으로 누구의 관점에서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한 것인지 심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은 수차례의 진료기록감정신청·사실조회신청 등을 거치면서 최근에 판결이 선고됐다. 결과는 공단의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랜 시간 법원에서의 다툼을 통해 1심 법원은 공단의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했지만 공단과 회사가 1심 판결을 안 다툴지는 알 수 없다. 그 기간만큼 노동자는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버텨야 할 수도 있다. 공단이 아프다고 외치는 노동자를 '소송형'으로 낙인찍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이제라도 노동자들의 신체에 드러나는 상병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상병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조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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