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의 정치적 의미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훼손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이 승리했다면 정치 지형은 극우로 치달으며 파시즘 합법화에 한걸음 다가갔을 것이다. 독일·이탈리아·일본의 파시스트들은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권력 토대를 다졌다. 지정학적으론 지난해 12월 일본의 아베와 한국의 박근혜가 이룬 위안부 합의 이후 가속화되던 미국·일본·한국의 우익 삼각동맹에 잠정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공존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김대중·노무현 두 자유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약화된 자유민주주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반동을 가져왔고, 2008년 3월 이후 지금까지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돼 왔다. 김대중·노무현의 패착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질을 하락시켰고,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 그 결과 등장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허물었고, 87년 체제가 이룩한 사회경제적 성과들을 무너뜨렸다. 지난 8년 동안 정치적 자유와 민주적 토대에 대한 훼손이 사회경제적 이익의 퇴행으로 이어짐을 경험한 국민은 정치적 민주주의 회복의 필요성을 요구하게 됐고, 그러한 시대적 열망의 정치적 선택이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두 부류로 구성돼 있다. 다수의 극우세력과 소수의 자유민주세력이다. 극우세력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민간·군사 독재체제의 계승자다. 숙청당했다가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으로 대표되는 소수의 자유민주세력은 지리멸렬 상태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영삼처럼 이들이 헤게모니를 잡으면서 당을 자유민주적 정치단체로 개혁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김무성으로 대표되는 김영삼 잔존세력은 이념적으로 극우세력에 편입됨으로써 새누리당의 극우화에 기여했다. 박근혜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은 이념적으로 자유민주 체제를 거부한다. 3·1 운동과 4·19 혁명을 계승하는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세력이다. 통합진보당이 헌정질서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해산됐다면, 작금의 새누리당 역시 동일한 이유에서 해산당해야 한다.

정보기관과 군부의 선거 개입이 사법부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음은 박근혜 정권이 역사적 정통성은 물론 절차적 정통성까지 상실했음을 뜻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였다면 탄핵당해 대통령직을 내놓아야 할 사안이었다.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 심판을 넘어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의 탄핵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대통령제가 아닌 의회제였다면 정권이 교체돼야 할 상황이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국민적 열망이 표출된 총선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무엇보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퇴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유주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패, 즉 사회경제적 민주 과제의 무시라는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총선으로 회복의 기회를 잡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확대되지 못하고, 가까스로 출발점에 다시 선 자유민주주의가 사회민주주의로 확장되지 못할 경우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우익화하면서 극우체제, 다시 말해 파시즘으로 치달을 위험이 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역사적 퇴행과 민주주의 퇴보를 거치면서 역사적 발전과 조직노동의 역사적 임무에 대한 허무주의와 청산주의가 널리 퍼져 왔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강령과 정책조차 우경화해 사회민주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에 가까워졌다.

누가 뭐래도 이번 총선의 패자는 박근혜로 대표되는 극우세력과 새누리당이고, 승자는 민주주의를 열망한 국민과 야당들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형식과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 역사적 의무가 자유민주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어깨에 놓여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은 사회민주주의 외연을 넓히고 내포를 더할 수 있도록 활동 수준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친일파에 뿌리를 둔 파시즘 세력, 3·1 운동과 4·19 혁명 계승이라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민주 세력은 정치·사회적으로 척결해 나가야 한다. 역사적 기원과 이념적 본질에서 이들 세력은 보수가 아니며,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를 전쟁의 참화로 몰고 간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히로히토를 숭배하는 세력과 이념적으로 동일한 극우세력이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조직노동은 1997년 국민승리21이 출범해 대통령선거에 권영길 후보를 낸 이후 가장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줬다. 조합원들과 노동자들에게 대안세력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된 선거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이는 과학적인 정치방침의 부재와 실천적인 조직노선의 미정립에서 기인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로서 조직노동이 갖는 중요성이 거듭 확인됐다. 87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조직노동이 민주주의를 얼마만큼 밀어붙이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질이 결정돼 왔음을 보여 준다.

총선은 패배주의·청산주의·허무주의·냉소주의를 떨쳐 버릴 승리와 전진의 기운을 조직노동에 불어넣고 있다.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서로를 갉아먹는 대결 체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충분히 발흥할 때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다.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가 성장할 때 자유민주주의는 충분히 발양될 수 있다.

역사 발전의 주체는 노동자·민중이라는 자각을 갖고 스스로를 혁신해야 한다. 민주주의 발전의 대장정에 나설 역사적 사명이 노동운동의 두 어깨에 있음을 다시 확인한 선거였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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