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을 얻었다.‘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을 외쳤던 여당이 20대 총선에서 참패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국은 16년 만에 여소야대로 재편됐다. 당초 정부·여당은 새 국회가 열리면 5개 노동법안 등 구조개혁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할 계획이었다. 총선 결과로 정부·여당의 이런 구상이 미궁에 빠진 것이다. 노동계는 “반 노동정책을 추진한 박근혜 정권의 아집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며 총선 결과를 자평했다.

노동계는 이번 총선에서 반노동자정당 후보 낙선운동과 친노동자 후보 지원 활동을 벌였다. 정부의 공정인사(일반해고)·취업규칙 운영지침과 5개 노동법안에 대해 찬성하는 세력을 반노동자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양대 노총과 산별연맹들은 수도권 등 여·야 접전지역에서 반노동자정당 후보 낙선 운동을 벌였다. 수도권에서 야권 후보들이 약진하는데 힘을 보탰다는 게 노동계 평가다. 물론 이를 검증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노동계의 총선활동도 정권심판 바람을 타고 전개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노동계의 친노동자 당선운동은 성적표를 매길 수 있다. 민주노총은 산별연맹 추천후보 29명, 지지후보 28명의 당선을 지원했다. 이들 명단 가운데 정의당 노회찬(경남 창원성산), 무소속 김종훈(울산 동)·윤종오(울산 북) 후보가 당선됐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노회찬·심상정 당선자(고양갑) 포함해 6명의 국회의석을 확보했다. 정의당과 무소속 당선자를 포함하면 진보진영은 약 8석의 의석을 얻었다. 아울러 정의당·녹색당·노동당·민중연합당 등의 정당투표 지지율을 합산하면 약 8.95%다. 민주노총 이들 4개 정당을 정당투표 대상자로 지목했다.

반면 한국노총은 정당투표와 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연맹 및 산별연맹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 9명이 배출됐다. 경북 구미을의 장석춘(새누리당) 당선자 포함해 비례대표 이용득(더불어민주당)·문진국(새누리당) 당선자는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이다. 한국노총 출신 당선자는 주로 더불어민주당(5명)과 새누리당(4명)에 포진돼 있다.

이러한 20대 총선 결과는 노동계에게 몇 가지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첫째, 여당에 비해 야당의 정당투표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진보정당들은 상승세를 타지 못했다. 정의당·녹색당·노동당·민중연합당의 정당투표 지지율(8.95%)은 역대 총선 대비 최저 수준이다. 17~19대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은 평균 10% 이상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다. 17대 총선의 민주노동당(13%)과 19대 총선의 통합진보당(10%)에도 못 미쳤다. 진보정당들에 대한 정당투표 방침을 결정한 민주노총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 물론 국민의당이 약진하면서 진보정당들의 지지율이 잠식된 탓도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 국한된 분석이다. 그간 민주노총은 배타적지지 방침을 통해 민주노동당 등의 정당지지율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선 정의당·녹색당·노동당·민중연합당 4개 정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침을 정했다. 민주노총의 방침이 진보정당 정당지지율 추락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진보정당의 위상 약화는 나쁜 징조다. 노동계는 진보정당 정당지지율 제고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둘째, 국민은 불통 청와대와 오만한 여당을 심판했다. 즉 국민은 노동개혁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정부·여당에 대해 심판했을 뿐이다. 반면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의 호불호는 되레 엇갈린다. 총선 결과와 다를 수도 있다. 노동계가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졌다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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