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를 무력화하는 데 일조했던 유성기업 회사노조가 자주성을 갖추지 못해 노조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유성기업과 유성기업노조가 맺은 임금·단체협약에 따라 이뤄진 지회 조합원들의 해고·징계와 임금삭감 효력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가 노사관계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14일 금속노조가 유성기업노조와 유시영 대표이사를 상대로 낸 노동조합설립무효확인 소송에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유성기업노조 설립은 무효”라고 판시했다.

유성기업지회 무력화 도구로 활용

기업노조인 유성기업노조는 유성기업지회 파업과 사측의 직장폐쇄로 노사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던 2011년 7월15일 설립됐다. 이후 조합원을 늘려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2012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기업노조가 설립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회사가 관리직을 투입해 기업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만든 사실도 확인됐다.

재판부는 이날 "기업노조는 회사 주도하에 설립됐고, 조합원 확보나 조직 홍보·안정화 등 운영이 모두 회사 계획하에 수동적으로 이뤄졌다"며 "설립·운영에서 사용자인 회사로부터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성기업이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을 징계·해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성기업노조가 자리 잡고 있다. 유성기업과 기업노조는 2012년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조합원 범위를 확대하고 징계위원회 해고의결 정족수를 줄였다. 이로써 사측위원들만으로도 징계가 가능해졌다. 부당징계로 판명날 경우 징계기간 중 평균임금 150%를 지급하는 내용의 규정도 대폭 완화했다. 징계 남발을 억제하던 도구가 사라지자 회사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기업노조와 맺은 단협에 의한 해고·징계 무효

유성기업은 2011년 8월 직장폐쇄를 종료하고 같은해 10월과 11월 불법파업과 공장점거를 이유로 지회 조합원 217명에게 해고·출근정지·정직·견책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고 징계는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정직·견책이 부당하다며 유성기업지회가 제기한 소송은 회사가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그런데 사측은 기업노조와 맺은 단협을 근거로 2013년 10월 홍종인 전 유성기업 아산지회장 등 조합원 11명을 또다시 해고했다. 해고자를 또 해고한 것이다.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다음달 3일 해고자 11명이 제기한 해고무효 소송 선고공판을 한다. 기업노조 설립을 무효로 본 이날 판결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고 한광호씨 죽음에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홍종인 전 지회장은 "한광호 열사는 어용노조 설립 과정에서 회유·협박과 지회 탈퇴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았다"며 "사측이 노조파괴에 이용했던 기업노조의 실체가 무효로 판명난 만큼 사측은 어용노조로 인해 일어난 모든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노조가 사라져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회복한 지회는 조만간 사측에 교섭을 요구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판결은 2011년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 회사가 기업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를 무력화시킨 행태에 제동을 건 첫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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