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한반도 역사를 움직여 온 힘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백성들의 아우성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듯이 지배엘리트들이 무심하고 교활하고 비겁해서 국운을 위기로 몰아갈 때마다 이 땅의 민초들은 아우성으로 답했다.

계급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역사관이 늘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 적어도 한반도만큼은 그러한 논리의 타당성이 세계 다른 어느 지역, 어느 나라보다 더 확인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그만큼 사대주의와 파렴치함에 빠져 백성을 도탄으로 몰아갔던 지배자들이 판을 쳤던 시간이 우리의 역사를 수놓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13일 20대 총선이 치러졌다. 사실 선거는 공동체 모두의 축제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날은 휴일인 게 맞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대표자는 지배자이기 이전에 봉사자이자 해결자여야 한다. 공동체가 그에게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는 이유는 그가 현재 공동체가 봉착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다. 봉사와 해결 이전에, 권력수단 획득을 사익을 추구하는 기회로 삼는 대표자들이 민의의 전당에 가득 진입한다. 그들은 공동체를 더욱더 곤경에 떨어뜨리고, 힘없는 이들을 더 살기 힘든 처지로 몰고 가고, 그러다 결국 큰 아우성과 맞닥뜨리게 된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20대 총선만큼 쟁점도 매가리도 없는 선거도 없다고. 사회문제는 산적해 있고 국민 대중의 행복지수는 낮아 가기만 하는데, 왜 대표자를 뽑는 그 장에서는 우리 문제들이 허심탄회하고 투명하게 논의되고, 답을 찾기 위한 건강한 논쟁이 뒤따르며, 창의적인 정책대안이 펑펑 뿜어져 나오지 않는 걸까.

이 사회의 문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것은 현재 청년들 사이에서 넓게 확산돼 있는 ‘헬조선’론이 아닌가 싶다. 지옥을 뜻하는 ‘헬(hell)’에, 나라에 대한 비하 뉘앙스를 풍기며 ‘조선‘을 결합시킨 SNS상 신조어다. 이제는 이미 익숙한 표현이라 더 이상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치는 않으리라.

헬조선론은 이른바 ‘갑질’론의 또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헬조선 피해 당사자들인 청년들이 겪는 문제는, 사실 취업을 하든 안 하든, 이른바 ‘을’의 위치에 있는 그들에게 사회가 가하는 어이없고 가혹한 고통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한 헬조선론에는 정치적 무능함과 적반하장식 눈속임으로 가득한, 앞선 세대의 권력자들에 대한 조롱이 가득 배어 있다.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며 대안으로 이민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처절한 댓글과 SNS에서의 소통은 현대판 아우성이다. 이번 총선에서 헬조선론은 유세장과 토론장의 핵심의제로 부각됐어야 했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 지배관계와 불평등, 사회통합 파괴와 관련한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는 그 중차대한 문제를 슬쩍 비껴갔다. 정치적 경쟁자들에 대한 공허한 '디스'만 난무하는 쪽으로 흘렀다. 청년들은 투표장을 찾을 이유를 상실했다. 지금 헬조선에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정부와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조합 역시 사실 그다지 친근한 존재가 아니다.

단언컨대 헬조선에서의 탈피는 20대 총선 당선자들 모두가 공통으로 간직해야 할 정치적 미션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회복과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면, 그것은 헬조선론과의 정면대결이어야 한다. 거기에 시대적 미션이 담겨 있고 정치행위의 존립근거가 있다. 혹시 내년 대선에서는 가능할까. 오프라인에서 그 아우성이 폭발하기 전에 말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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