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주였다. 현대차비정규직사건 재판에 가고 있었다. KTX에 꼼짝없이 갇혀 대전법원에 가고 있었다. 침대에서 곧 숨이 넘어갈 듯한 청년을 등장시켜 놓고 노동개혁이 이 청년을 살릴 수가 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죽는다며 KTX 모니터에서는 공포가 상영됐다. 막무가내로 상영을 당한 나는 순간 화면이 선명히 보이는데도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공익광고 혹은 국정홍보라고 봐 줘야 하나. 불법파견 중단, 정규직 전환의 비정규직 파업투쟁을 불법파업이라며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는 비정규직 노조간부,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파견법 위반의 불법을 저지르기에 불법을 중단하라 요구해서 투쟁했더니 불법이라고 적반하장의 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말의 일이니 벌써 5년이 넘었다. 1심 천안법원에서는 불법파견이고 파업은 불법이 아니라며 사용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 뒤 사용자 항소로 피고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소송대리인으로 나는 이날 대전법원에 가고 있다가 국정홍보의 공포영화를 보고 말았다. 짧았지만 강렬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늦추면 이 나라 청년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죽는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국가의 예산을 사용해 박근혜 정부(행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일자리 창출이고, 죽어 가는 청년을 살릴 수 있다고 골든타임을 놓치면 청년이 죽는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일이다. 국회는 정부안을 검토 없이 통과시켜 줘야 하는 거수기가 아니다. 매월 세비를 지급하기만 하면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내주는 자판기가 아니다. 아무리 국회가 집권여당이 과반수로 다수여서 대통령이 하라는 대로 해 왔다 해도 헌법은 법률 제·개정을 국회 일이라고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제40조), 누구도 감히 의심하거나 침해할 수 없도록 명시해 놓고 있다. 대통령이라도 자신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국회 일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헌법이 있고, 국회가 있는 나라에서 헌법을 무시하지 않고 국회의 권한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걸 KTX에서 나는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2. 정부의 노동개혁법안, 그것이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박근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해 놓고서 빨리 해 주지 않는다고 이렇게 청년이 죽어 간다고 행정부는 국민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데 국회는 일하지 않는다고 광고를 하는 것인지, 노동개혁법안 중 근로기준법 개정은 일자리 창출이라고 KTX뿐만 아니라 TV 등 갖가지 매체에다 되풀이 광고하고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걸 살펴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노동개혁법안이라며 국회에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통상임금과 근로시간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새누리당의 의총에서 발의했다고 하는 법안이다.

먼저 통상임금법안을 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 판례기준을 근로기준법에 규정하면서 구체적으로 대통령령에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토록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해석한 법원판례를 입법하겠다는 것이라면 굳이 그에 따라 서둘러 법을 개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도 아니고 청년이 죽을 일은 없다. 어차피 통상임금에 관한 노동자 권리는 법원이 현행 근로기준법을 해석해서 판결로 선언한 것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 개정은 기껏해야 법률을 정비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고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의무를 뭔가 새롭게 정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처럼 판례기준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한다는 것에 더해 통상임금법안은 대통령령으로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정할 수 있도록 위임을 한다는 것인데, 이건 노동자 권리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령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임금항목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정하기라도 한다면, 이제 법률의 위임을 받은 대통령령으로 당당히 정한 것이니 그걸 노동자 권리라며 다투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니 이렇게 대통령령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정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죽어 가는 청년을 살리는 것은 고사하고 살아 있는 청년도 죽일까 염려가 될 지경이다. 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일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다 죽어 가면서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청년이 침대에서 일어날리 없을 테니 말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문제가 되고 있는 재직자, 일정근무일수 조건의 상여금 등에 관해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근로기준법에 명백히 규정한다면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해서 보다 많은 법정수당을 받겠다고 청년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울 수도 있을 텐데 지금 이 나라에서 추진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관한 노동개혁은 그렇지 못하다. 도대체가 이런 노동개혁이 알바임금 받고는 못하겠다고 침대에서 잠자는 청년을 일어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더 황당하다. 뭐 토요일, 일요일의 근로도 1주일의 근로에 포함시켜 주겠다고 법을 개정하겠다는 거다. 1주일이 일요일 등 휴일을 포함한 7일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고용노동부를 빼고는 다 안다. 그러니 휴일근로는 1주간의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만 시정해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법정근로시간, 연장근로시간이 지켜지도록 사용자들을 단속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법을 개정해서 휴일 근로를 1주간의 근로에 포함시키겠다고, 그러면서 특별히 개정 후 1년 뒤부터 4년에 걸쳐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하되 그동안은 사용자들에게 그걸 유예해 줘서 특별히 휴일 1일(8시간)은 1주간 근로에서 제외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는 노동개혁을 통해 주 60시간의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를 도입하겠다고 빨리 통과시켜 달라고 광고하고 있는 것이다. 법을 개정하고서 시행하는 걸 기다리다가 청년은 숨이 넘어가 버리겠다. 동면이라도 해서 기다려 봐야 사용자를 위해 특별히 유예된다니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게 돼 버릴 테고, 이 나라에서 청년은 근로시간이 단축돼서 일자리 창출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3. 도무지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걸 노동개혁이라며, 일하려는 정부의 발을 잡는다고 국회가 입법해 주지 않아서 청년이 다 죽는다고 광고를 한단 말인가. 국회에는 여당과 야당이 있고, 노동자도 국민이니 노동자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거고, 무엇보다도 청년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법인지 진지하게 심의해야 하고, 그게 아니라고 확인되면 정부안을 폐기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통상임금과 근로시간단축 법안을 입법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 일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니 정부의 노동개혁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상임위든 본회의든 폐기해야 마땅한 법안이다. 그러니 국정홍보 광고를 제대로 하려면 엉터리 법안을 제출한 정부를 비난하면서 국회는 이를 어서 폐기하고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을 입법하라고 노동자를 위한 공익광고를 해야 했다. 통상임금은 상여금 등 온갖 항목의 임금들을 제외시켜 온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예규를 바로잡아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법집행을 하고, 근로시간단축의 경우 휴일은 법정근로시간의 대상인 1주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바로잡아 법집행을 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위법한 예규와 행정해석을 적법하게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불법을 한 사용자 현대차가 불법 중단을 요구한 파업투쟁을 불법이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정당한 것일 수가 없는 것처럼, 고용노동부·정부도 자신이 해 왔던 위법한 행위들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개혁을 말하며 비난하고 협박하는 것은 정당할 수가 없다. 국회를 비난하지 않고도 곧장 정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오늘 정부는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고 개혁이라고 볼 수 없는 걸 노동개혁이라고 말하며 그걸 국회가 해 주지 않는다고 ‘골든타임’ 광고를 하고 있다.

4. 분명히 노동개혁에도 골든타임은 있다. 국가 일을 하는 권력은 비정규직·최저임금 일자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를 위한 노동개혁을 이 나라 청년은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헬조선’은 기다리기에 지쳤다는 이 나라 청년의 말일 수 있다. 우리 청년들은 비정규직·최저임금 일자리가 없다고, 비정규직·최저임금 일자리라도 달라고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통상임금을 바로잡아 법정외근로시 지급받는 임금이 법정근로시 지급하는 임금에 50%를 가산해서 지급되도록 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법정근로시간, 노동제가 지켜지도록 한다면 고용이 보장되고 생활이 보장되는 인간다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청년은 이런 일자리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특별한 배려도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도록 하고 있고(제32조 제1항), 무엇보다도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으니(제32조 제3항), 그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노동개혁안으로 마련해서 추진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청년이 기다리다 지쳐 이 나라에 실망하지 않도록 때를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노동개혁의 ‘골든타임’, 국가권력이 자신이 할 일을 외면하는 시간을 두고서 할 말이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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