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두산모트롤 소속 사무직 노동자 이아무개(47)씨는 최근 뜻하지 않게 유명인사가 됐다. 회사로부터 ‘면벽(面壁) 징계’를 받아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이씨는 현재 대기발령을 끝내고 원래 업무인 사무직이 아닌, 기술직인 자재관리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일단 퇴직은 면했지만 이씨 사례는 고용노동부의 공정인사 지침이 현장에 어떤 신호를 주게 될지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대기발령 당시 이씨는 전화통화도, 스마트폰을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책상과 걸상만 있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벽만 바라보는 것이 그에게 허락된 전부였다.

어떤 동료들은 “이 정도 했으면 그만 나가야지”라고 수군거렸다. 그는 “내가 안 나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희망퇴직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대기발령을 받아 면벽수행을 한 것은 지난해 11월 사무직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직대상 선정기준이 뭔지, 왜 퇴직대상이 됐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담당 임원에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메일까지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씨는 그 이유를 경남지방노동위원회를 통해서야 들었다. 이씨가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을 하자 회사가 노동위에 답변서를 보낸 것이다.

“평소 업무지시를 불이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다른 직원들에 비해 교육이수 점수가 낮고, 협력업체로부터 평가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소명하려고 했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씨는 소명자료를 만들기 위해 노트북을 사무실로 가져왔다. 회사는 사규 위반이라면서 감봉조치했다. 저성과자라서 퇴직 대상이 된 건지, 퇴직시키려고 저성과자를 만드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씨는 “처음에는 내가 저성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명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말 내가 문제 있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그가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을 하자 회사는 갑자기 저성과자 대상 교육을 시켰다. 이씨가 예전에 직접 만든 교육자료를 이용했다. 퇴출을 위한 대기발령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경남지노위는 “교육을 받은 뒤 진행된 발령에 문제가 있다면 그때 가서 구제신청을 하면 된다”며 이씨의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이씨 자신이 만든 자료로 회사를 구해 준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퇴출을 면했다고 하지만 이씨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KT를 포함해 다른 기업 사례를 보면 처음 하는 자재관리업무가 서툴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저성과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그는 “노동부가 말하는 공정해고라는 말 자체가 거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형식적인 교육을 하는 방법으로 이씨에게 가한 회사의 인격모독적인 행위가 면죄부를 받은 사실을 지목한 것이다.

공정한 평가와 전환배치·교육기회 부여, 퇴출까지 이어지는 매뉴얼을 담은 노동부의 공정인사 지침도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쉽게 해고하는 풍조가 확산되면, 회사는 면벽징계 같은 모욕을 줄 필요도 없이 그때그때 직원들을 잘라내면 그만 아닌가요?”



김학태 기자

구은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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