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20대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막장정치 때문이다. 이것이 이번 총선의 첫 번째 특징이다. 공천부터가 막장으로 시작해서 막장으로 끝났다. 백미는 새누리당의 유승민 무공천이었다.

막장공천 이후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운동도 막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누리당이 대구에서 후보자들을 공원에 모아 놓고 무릎 꿇고 사과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더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주자도 광주 망월동 열사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쇼를 연출했다. 이들은 똑같이 표를 얻어 권력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속내를 보여줬다. 거기다가 국민에 대한 협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를 당선시켜 주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이 어려워질 테니 우리를 찍어 줘야 한다거나, 나를 지지해 주지 않으면 대선후보를 포기하겠다거나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투표 참여를 압박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국민을 선거와 정치에 정떨어지게 만들어 놓고는 투표를 해야 한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가수 설현을 앞세워 투표를 독려한다. 어느 언론사에서는 연예인들을 릴레이로 인터뷰해서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이런 홍보전에 더해 군인을 비롯한 이러저런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사전 투표율을 높이고 있다. 그런 동원 가운데 더욱 시선을 끄는 것이 선거 혁명론을 펼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이론의 계급적 성격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해당 이론은 논리는 있으나 이론의 요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논리 구조가 아주 단순하다. 첫째,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에서 보듯이 현실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둘째, 세상이 절망적인 원인은 자신이 '흙수저'이기 때문이 아니고 정치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셋째, 정치를 바꾸려면 선거에서 투표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제5공화국 시기에 총선에 참여해 야당이 표를 더 얻게 됐고, 이 승리가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5공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에 항의하는 민중의 저항이었지 투표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마르크스를 들먹인다.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을 기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이후 자본론을 저술한 뒤로는 폭력혁명에 희망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꿈꾼 세상은 망치와 도끼에서 흘리는 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공포스러운 디스토피아가 아닌,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와 자산의 평등한 축적을 통한 유산계급의 확산을 통해 이뤄지는 유토피아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칭하면서 선거가 가투(가두투쟁)보다 낫다고 설파한다. 아담 쉐보르스키라는 유명한 미국 정치학자가 있다. 김대중 정권의 정책기획위원장이었던 최장집 교수의 논문을 지도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중남미와 동아시아 등 제3세계 민주화 이행을 주장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현직에 있는 자가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고, 패배하면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 민주주의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엔 언제나 갈등이 있을 수 있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무력으로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총칼을 동원하는 것보다 선거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의 저서 제목도 이다. 짱돌 대신 투표지를 택하라는 말이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재한 것은 진실과 과학이다. 그들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자기 논리만 일방적으로 펼친다. 결론은 전제돼 있다. 현실이 절망적이라면 왜 분노해 행동하지 않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가. 절망의 원인이 어찌 정치에만 있는가. 자본주의 토대인 착취적 경제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가. 정치지형이든 정치인물이든 나아가 정치제제든 그것을 왜 선거로만 바꾸어야 하는가. 농노 해방이 선거로 이뤄졌는가.

무엇보다 선거로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 대중이 선거를 통한 변화나 변혁에 대해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표장에 나갈 마음이 식어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래서 투표장에 끌어내려고 선거혁명론까지 들먹이는 것 아닌가.

유럽과 미국에서 지금 선거혁명 비슷한 것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모두 그 이전에 힘찬 대중정치운동과 대중정치투쟁이 있었다. 그 경험을 기반으로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가 선전하고 있고 스페인의 포데모스도 약진했다. 그곳에서는 선거가 대중투쟁을 대체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한민국에는 그런 대중운동과 대중투쟁을 조직할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해 단결투쟁할 권리가 보장돼 있지 않다. 그리고 정치파업은 불법이다. 그런 상태에서 계급대중이 정치세력으로 결집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더구나 부정 투개표로 대통령 당선을 우기는데도 사법부도 입법부도 거기에 굴종하고 있다. 그러므로 짱돌 없이 투표용지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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