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또 발생했다. 2003년 이후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만 9번째 사건이다.

무사고 기록 달성한 우수사원인데…

5678서울도시철도노조는 10일 수색승무사업소(6호선) 소속 기관사 김아무개(51)씨가 지난 8일 새벽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노조는 고인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수면장애로 고통을 호소했고 사망하기 5일 전에 병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노조에 따르면 2000년부터 수색승무사업소에서 일한 고인은 25만킬로미터 무사고 운행기록을 달성하고 2014년 우수직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2005년부터 앓던 공황장애가 악화되면서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했고 이달 3일 병가를 신청했다. 4일 노조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다른 업무로 전환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노조는 사업소측에 전환배치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고인은 사망 전날인 7일 공사 심리상담센터인 힐링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뒤 노조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월요일(11일)부터 출근하는 게 걱정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김태훈 노조 승무본부장은 "전환배치가 언제 될 지 몰라서 고인이 크게 불안했을 것"이라며 "고인이 고통을 호소한 즉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업무에 배치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사고"라고 안타까워했다.

"심리상담센터로는 위기대응 역부족"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공황장애·우울증으로 9명의 기관사가 숨졌다. 노조는 반복되는 기관사 사망 원인으로 1인 승무제와 억압적인 노무관리를 지목했다. 1인 승무제는 업무강도가 높고 언제 발생할 지 모를 사고에 홀로 대처해야 하는 탓에 노조가 꾸준히 폐지를 요구한 제도다. 여기에 인력부족으로 인한 높은 노동강도가 더해져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다.

2012년 발생한 이아무개 기관사 사망을 계기로 발족한 서울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는 지하철 근무자 정신건강 증진과 근무환경 개선대책 권고안을 마련했다. 2014년에는 서울시·공사가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 종합대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2인 승무제와 인력충원, 직급제도 개선 같은 노조 핵심 요구는 이행되지 않았다.

노조는 서울시와 공사에 최적근무위 권고안과 종합대책 이행을 촉구했다. 지금까지 사망한 기관사 9명 중 3명이 수색승무사업소 소속이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노조는 공황장애로 병가를 받았거나 증상이 의심되는 기관사들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 수색승무사업소에 대한 역학조사도 요구했다. 공사는 지난 9일 밤 유족과 노조를 만난 자리에서 역학조사 요구를 받아들였다.

노조 관계자는 "업무강도뿐 아니라 과거 억압적인 노무관리에 따른 트라우마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힐링센터만으로는 긴급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며 "역학조사를 확대하고 종합대책을 이행하는 등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노조는 15일까지 고인에 대한 애도기간을 갖고, 서울시와 공사에 대책 이행을 촉구하는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