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동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현장)

갑(甲)회사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했다는 말이다.

“제가 노조 정책에 관여하는 것은 불법인 줄 압니다만 정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자본을 인정하지 않는 민주노총은 절대로 우리 회사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일부 소수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저를 고발하더라도 그건 제가 감당을 하겠습니다.”

회장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나는 지금 A노조를 여러분한테 해체하라는 거야. 나는 여러분들 사상을 믿을 수가 없어. 일단은 노조 해체를 하고 B노조로 가입을 하든지 아니면 가입을 안 하든지. 여러분들은 일선에서 일만 해.”

가입하라는 B노조에 대한 회장의 평가는 이렇다.

“B노조나 B노조 위원장은 회장이 부르면 즉각 와서 ‘회장님 뭘 도와 드릴까요. 저희들이 뭘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열심히 하는데 잘 안 되니까 죄송합니다’ 그리고 ‘A보다 월급이 좀 적은데 회장님 힘드시죠? 어떻게 좀 사기를 위해 맞춰 주면 안 됩니까? 그래도 명절인데 그래도 차비라도 좀, 안 주셔도 됩니다만 좀 주시면 안 됩니까’라고 말해. B노조는 부탁으로 이뤄지는 노조고 협력으로 이뤄지는 노조야.”

회장이 갖고 있는 A노조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은 어떻게 생긴 걸까. 문제는 책 한 권에서 시작됐다. 몇 년 전까지 A노조는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책을 기증받거나 구입해서 직원들에게 대여하는 사업을 했다. 회사가 이전하면서 책을 포함한 그 관리권을 회사에 반납했고, 반납한 책 중에 김상봉 교수가 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A노조 간부들은 그 책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 책을 기증받은 것인지, A노조가 구입한 것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읽어 봤다는 간부조차 없었다.

그런데 회장 생각은 달랐다.

“이 책 내용을 읽어 보면 여러분들은 일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야. 회사를 뺏으러 온 사람들이야. 뭘 몰라 모르기는, 다 알면서. 여러분은 이 책을 아무도 읽은 사람이 없고 이 사상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건 분명히 A노조 교본이야. 이래도 여러분들이 이 책을 안 읽었다고 입증할 수 있어? 이 책은 A노조 교본이야. 교본대로 하고 있어.”

지난 10년 가까이 필자가 지켜본 A노조는 회장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A노조는 파업 한 번 한 적 없고, 결렬된 임금협상은 노동위원회 중재로 해결했다. 대외활동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기업별 지부로 조용히 지내 왔다.

그러나 갑회사 주식 52%를 갖고 있다는 회장은 여전히 1800년에 있었다는 단결금지법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회장이 입이 닳도록 찬양하는 자본주의가 그 성장 과정의 반성으로 쓴 사회법이나 노동법 역사는 회장에게 그저 자본주의의 부정과 같은 의미일 뿐이다. 회장에게 임금교섭 자리는 “일 안 하고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 것”이고, A노조는 “도척처럼 도둑놈 집단이 돼서 도둑질을 하는” 조직이었다. 투쟁기금으로 적립해 놓은 기금은 ‘혁명자금’으로 둔갑하기까지 한다. 회장은 A노조 탈퇴와 B노조 가입을 강제한 자신의 행위를 기독교 교리를 빌려 ‘구원활동’이라 말한다.

회장의 그릇된 노사관계를 사상의 자유까지 빌려 논박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다. <타짜>를 읽었다고 조합 간부들이 모두 타짜를 교본 삼아 노름을 했다고 말할 텐가. 어릴 적 영화 <슈퍼맨>을 보고 난 후 보자기 하나씩 뒤집어쓰고 슈퍼맨 흉내를 내던 골목길 기억의 향수는 마음속에 간직할 일이다.

회장은 최근 검찰에서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벌금 500만원 약식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회장의 발언은 갑회사에서 여전히 살아 펄펄 날뛰고 있다. 지난해 6월 146명이던 A노조 조합원은 9개월이 지난 올해 3월 현재 불과 13명, B노조에 이중가입한 조합원까지 합하면 35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탈퇴하거나 B노조에 가입했다.

갑회사의 지원 속에 교섭대표노조가 된 B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제1조는 단체협약의 기본원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다.

"회사는 주주와 임직원에게 균형된 보상을 하도록 노력하며 그 이익의 30% 범위 내에서는 주주에게 배당금을, 10% 범위 내에서는 임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한다."

이어지는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거나 훼손한 경력이 있는 자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에서 차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9개월 사이 갑회사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회장 발언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처벌과 별개로 A노조는 갑회사에서 행동으로 옮겨진 단결권 침해에 대한 추가 고소를 준비 중이다. 노동부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기대한다. 그리고 A노조는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회장의 기대가 크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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