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은행과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노조 소속 노조 대표자들이 30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4차 대표자 회의를 마치고 언론 브리핑을 위해 세미나실로 들어가려던 하영구 연합회장(사진 오른쪽)을 비롯한 금융공기업 대표들을 막아선 채 항의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자산관리공사·주택금융공사 등 7개 금융공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산별교섭 탈퇴를 종용하면서 성과주의 조기도입시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회유한 정황이 확인됐다.

금융위 압박에 떠밀린 금융공기업들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선언했다. 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는 "산별노조 파괴행위이자 노조말살 시도"라고 반발했다. 지난 수년간 자율적으로 산별교섭을 했던 금융권 노사관계가 금융당국의 불법적 노사관계 개입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금융위, 금융공기업 불러 "원하는 게 뭐냐" 압박·회유=30일 복수의 금융공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위 금융정책국 관계자는 지난 28~29일 7개 금융공기업 부행장들을 불러 "산별교섭 탈퇴를 선언하라" 혹은 "성과주의를 조기에 도입하면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이 관계자는 각 기관마다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소원수리'를 해 주겠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산별 노사관계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금융위의 압력 행사는 금융공기업들의 산별교섭 탈퇴 선언으로 이어졌다. 7개 금융공기업 기관장들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4차 대표자회의에서 "금융노조와의 산별교섭을 통해서는 성과연봉제 도입 등 정부정책을 추진하는 데 시한을 예측하기 힘들다"며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고 개별협상을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금융공기업 성과연봉제 도입시한을 사실상 5월로 못 박은 상황에서 산별교섭 타결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금융위는 5월까지 성과주의 보수 관련 지표를 이행하지 않으면 추가성과급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안에 호봉제를 성과연봉제로 전환하지 않는 금융공기업에 대해서는 내년 총인건비를 삭감하거나 동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개별교섭 선언은 했는데…=사용자협의회 탈퇴카드를 꺼내긴 했지만 금융공기업들도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개별교섭 개최 여부가 난망하기 때문이다. 금융공기업이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해도 임금·단체협상 노조측 교섭권은 금융노조에 있다. 노조가 교섭권을 지부에 위임하지 않는 한 노조를 배제하고 개별협상을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노조가 대각선교섭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실제 한 금융공기업 대표자는 지부위원장에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한숨을 쉰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사용자협의회 탈퇴와 개별협상을 선언한 것은 산별교섭 틀을 흠집 내고 산별 노사관계를 파탄 내려는 시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이날 하영구 사용자협의회장과 금융공기업 대표자들은 회의를 마친 뒤 기자브리핑을 하려 했지만 노조가 회의장을 막아서면서 되돌아갔다. 금융공기업지부 위원장들이 "산별교섭 판 벌여 놓고 왜 탈퇴를 하냐"며 "이런 식으로 노사관계를 파탄 내느냐"고 항의하자 하영구 회장은 "나한테 얘기하지 말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반헌법적 노조파괴 시도 맞서 총력투쟁"=김문호 위원장은 "산별교섭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교섭 상대방에게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이 탈퇴를 통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탈퇴이유가 있다면 교섭장에 나와 설명하라"고 말했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헌법에 따라 노사 간 자율교섭으로 결정해야 할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정권이 마음대로 결정하려는 행태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반민주주의적 폭거"라며 "이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이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특히 "누구도 원치 않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요해 반헌법적 노동탄압을 계속한다면 파국이 무엇인지 올해 산별 임단투에서 보여 주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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