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코앞이다. 총선이 끝나면 국회의원 300명이 새로 배출된다. 총선 결과에 따라 노동자 삶도 요동친다. 정당과 후보가 내건 공약은 그 진폭의 기준이 된다. 아쉽게도 20대 총선 노동공약은 양과 질에서 19대 총선에 못 미친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고, 하늘에 올라도 쟁점이 되지 않는 현실이다. 정치권 보수화 경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할 것은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야 두말해 무엇하랴. <매일노동뉴스>가 총선 후보자들에게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5대 노동의제를 제안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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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1. 노동시간단축 먼저


2. 비정규직 임금 올려야

3. 노동자 이름표를 달자

4.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

5. 쉽게 노동조합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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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A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는 ㅈ(50)씨. 그는 다가오는 총선이 두렵다. 배달해야 하는 각종 공보물이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하지만 택배와 등기를 분류하려면 오전 7시까지는 출근해야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배를 나가는 시간도 대개 오전 8시다. 오후에는 4시쯤 우체국에 들어와 일반 편지를 분류한다. 그러다 보면 저녁 8시를 훌쩍 넘긴다. 각종 고지서가 몰리는 매월 15일부터 23일까지는 밤 10시까지 일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서류상 하루 근무시간은 8시간이지만 실제 노동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한다. 오전 8~9시 근무는 시간외근로로 분류돼 수당이 나오지만 오후에는 7시나 8시까지만 인정받는다.

ㅈ씨는 “총선 공보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야간에 무료봉사를 해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는 토요일까지 일하는 대도시 이외 지역 집배원들보다 상황이 낫다. ㅈ씨는 “우리 우체국에는 위탁집배원(특수고용직)들이 많아서 그들이 토요일 집배를 도맡아 한다”고 귀띔했다.

1년2개월 만에 깨진 달콤한 주말

지역 우체국에서 일하는 김아무개(39)씨는 지난 겨울 내내 매주 토요일에 출근했다. 최근 물량이 줄어들면서 이달 들어서는 격주로 토요일 근무를 한다. 김씨는 토요일에도 평일처럼 오전 7시에 출근해 분류업무를 한 뒤 집배를 나간다. 공식적으로는 오전근무만 하도록 돼 있지만 오후 6시까지 우체국에서 편지 분류작업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시간외근로는 오후 1시까지만 인정받는다. 그는 “대도시와 다르게 관내에 자동분류기가 부족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4년 7월 토요일 집배가 중단된 뒤 가족과 주말여행을 하는 재미로 살았다. 그런데 지난해 우정사업본부가 한 TV홈쇼핑 택배사업 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토요일 집배가 부활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소문은 사실이 됐다. 꿀맛 같은 주말은 지난해 9월 그렇게 사라졌다. 토요일 집배는 재개됐다.

2014년 1천명 넘게 감원한 후 일이 늘어났다. 반면 인력충원 얘기는 감감무소식이다. 김씨는 “욕만 나온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가 토요일 집배를 다시 시작하면서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업체로부터 나오는 배달물량이 점차 증가했다. 노동시간은 자연스럽게 과거로 회귀했다. 우정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에 따르면 2014년 주 5일 근무가 시행되기 전 우정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0~65시간, 연평균 3천200시간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 연평균 노동시간(2천57시간)을 훨씬 웃돈다.

자동차부품 노동자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은 자는 날”

“지난해 특근·연장근로 계산해 보니 한 달 평균 110시간을 일했더라고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는 황아무개씨(39)씨가 쉬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다. 황씨가 다니는 회사는 주야 2교대 근무를 한다. 주간조는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10시간30분, 야간조는 9시간30분 일한다.

야간조는 월~토요일 밤에 일하고 일요일 아침에 퇴근한다. 이어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주간근무를 시작한다. 주간조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꼬박 일한 뒤 다시 월요일 밤부터 야간근무에 투입된다. 야간근무 6일 후 하루 쉬고, 주간근무 7일 후 하루 쉬는 근무체계다.

노동계의 비판을 받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휴일근로 연장근로 미포함)에 따르더라도 일주일에 최대 28시간까지만 연장·휴일근로가 가능하다. 황씨를 고용한 회사는 합법과 위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황씨는 집에서 잠만 잔다. 개인시간이 없어진 지 오래다. 쉬는 날 아이들과 놀아 줄 수 있는 시간만 생겨도 다행이다.

“일주일에 하루 쉰다고요? 그걸 쉰다고 표현할 수 있어요? 퇴근하고 나서 그저 잠자는 시간이죠.”

몸서리칠 정도의 장시간 노동이지만 황씨에게는 일을 줄이는 것보다 특근·야근으로 생활비 가져가는 게 절실하다.

“워낙 힘드니 피곤한 건 사실이지요. 한데 돈을 생각하면 일이 있는 게 좋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요일 특근을 (연장근로에) 넣는다던데, 여기 반월공단 사람들은 관심 없어요. 법이 바뀌어도 이곳은 별로 변한 게 없을 거예요.”

PC 강제로 껐더니 “일 끝나고 갈게”에서 “00시까지 갈게”로

시중은행 서울지역 한 지점 영업창구에서 고객상담을 하는 조여정(30·가명)씨는 약속시간을 잡을 때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예전과 달라졌다. 한참 야근할 때는 “일 끝나는 대로 나갈게”라고 했는데, 지금은 “00시까지 나간다”고 약속한다.

그가 다니던 은행이 노사합의로 2010년께부터 피시(PC) 오프제 정착을 위해 노력하면서부터다. 피시 오프제는 저녁 7시가 되면 직원들의 컴퓨터 전원이 자동적으로 꺼지는 시스템이다.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저녁 7시 이후 야근을 하려면 까다로운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각 지점별로 매년 경영평가를 하는데 정시퇴근에 대한 평가 비중이 30%나 된다. 저녁 7시를 넘어서도 컴퓨터가 켜져 있거나 평균 퇴근시간이 늦은 지점은 불이익을 받는다. 지점장들이 피시 오프제를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씨는 피시 오프제 초기에는 퇴근시간이 앞당겨진 만큼 출근을 빨리했다. 이른바 '출근시간 풍선효과'다. 야근을 할 수 없으니 일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출근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그려면 노동시간단축 효과도 사라진다.

하지만 조씨는 금세 적응했다. 외국어학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은행업무 특성상 실제 노동시간은 아직도 길다.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4시 은행문을 닫은 뒤에도 저녁 6~7시까지 일한다. 그래도 보통 저녁 8~9시, 늦으면 밤 11시에 퇴근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상사나 동료 눈치를 보면서 "야근은 당연한 일"이라고 체념하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조씨는 “노동시간단축 제도로 퇴근시간을 얼마든지 앞당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노동시간단축, 결국 '의지의 문제'

조씨가 다니는 은행 노조위원장은 “우리 은행은 10여년 전부터 근무시간 정상화를 추진해 어느 정도 정착된 상태이지만 다른 시중은행은 아직도 야근이 심하다”며 “노조가 문제를 제기해도 경영진이 의지가 없으면 노동시간단축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4·13 총선이 다가오면서 법정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을 바로 적용할지, 단계적으로 시행할지를 놓고 여야가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나아가 휴게시간까지 근로시간에 포함시킨 하루 8시간 근무를 통해 오후 5시에 '칼퇴근'을 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공약까지 나왔다.

조씨가 다니는 은행 사례는 국가 차원의 노동시간단축 역시 정부와 정치인들,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입법은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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