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금까지 문제 삼지 않았던 산재노동자 가족에 대한 회사의 우선·채용 보장 단체협약 조항까지 손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일하다 숨지거나 다친 노동자에 대한 예우로 볼 수 있는 조항까지 위법한 것으로 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노동부가 위법한 것으로 보고 있는 단협 조항 중 70% 이상은 이미 사문화된 것들이어서 무리하게 노조 흠집 내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단협 42% 위법”=노동부는 100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 2천769곳의 단협을 실태조사한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노동부는 "조사대상의 42.1%인 1천165개 사업장 단협에서 위법한 내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노동부에 따르면 인사·경영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것으로 분류된 단협은 368개(13.3%)다. 노동부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단협 조항 2천120개를 내용별로 살펴보면 유일교섭단체(28.9%)가 가장 많았고 조합원 자녀·가족에 대한 우선·특별 채용(25.1%)이 뒤를 이었다. 회사가 노조 운영비를 원조하는 조항은 9.2%였다.

노동부는 다음달부터 위법한 단협에 대해서는 노사자율 시정을 권고한다. 노사가 수용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 의결을 받아 시정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사법처리 절차를 밟는다.

노조간부 배치전환이나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시 노조 동의를 받는 것을 비롯해 노동부가 인사·경영권 침해로 판단한 부분은 사업장 방문·간담회를 통해 자율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다.

◇산재노동자 가족 채용, 1년 만에 위법으로 둔갑=노동부가 위법한 단협으로 간주하는 조항 중에는 업무상 사고·질병·사망자의 자녀나 가족을 우선·특별 채용하는 내용이 있다. 이른바 고용세습으로 불리는 조항 가운데 72.8%를 차지한다.

그런데 노동부는 지난해 100인 이상 사업장 단협 실태조사 계획과 매출액 상위 30개 대기업의 단협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해당 조항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당시 노동부는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다는 학계 의견과 사회적 정서를 고려하고, 취업자 비율이 높지 않아 제3자에 대한 기본권 침해정도가 사회통념을 넘어섰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1년여 만에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노동부는 업무상재해자 특별채용 규정이 있는 현대자동차 노사 단협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10월 위법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기권 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단협 규정이 아니더라도 사고에 대해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며 “단협상 청년채용을 방해하는 규정은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가 위법한 것으로 간주한 조항 중 상당 부분이 실제 산업현장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노동부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2천120개 조항 중 유일교섭단체 조항이 801개, 우선·특별 채용 조항이 694개로 70.5%나 된다.

유일교섭단체 조항은 2011년 7월부터 사업장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제도가 실시된 만큼 현재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선·특별 채용 조항은 실제 기업들이 단협을 적용하거나 그런 사례가 있는지 확인된 적이 없다. 경영계 관계자들조차 “이미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말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이기권 장관은 “이런 단협이 있다는 것 자체가 노사 간 경직적 요소로 보여질 수 있다”며 “실질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라면 고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청년실업도 단협 탓?=일부 단협 조항이 현행법에 어긋나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노동부가 무리하게 노사 단협에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재노동자 가족을 채용하는 조항은 산재보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보완하는 자구책이자 주변 공동체의 도덕적 의무 성격이 짙다”며 “위법 소지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바로 조치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노사관계 악화 같은 부작용이 우려되고 실효성도 의심된다”며 “현실에서 적용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단협을 없앤다고 해서 청년고용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는 정부가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고 비난했다. 한국노총은 논평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단협에 전가하려는 꼼수”라며 “노동계 흠집 내기에 돈 낭비 시간 낭비 말고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쓰기 바란다”고 비꼬았다. 민주노총은 “불법 2대 지침을 현장에 강요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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