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 경영참가는 정보(information)-협의(consultation)-공동결의(codetermination)-공동결정(codecision)의 네 단계를 거치며 발전한다. 노동자 대표에게 이 네 가지 권리를 부여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은 초보적 수준의 정보권과 앙상한 내용의 협의권을 노동자 대표에게 보장할 뿐이다. 서유럽과 북유럽에서는 정보권과 협의권은 물론 공동결의권을 노동자 대표에게 폭넓게 부여한다. 물론 노동자 경영참가의 최고 단계라 할 수 있는 공동결정권은 스웨덴처럼 노동조합의 제도적 영향력이 강력한 나라에서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정보, 협의, 결의, 결정

정보권(the right to information)은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에 관련되고 본인 고용뿐만 아니라 가족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사용자로부터 제공받을 권리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회사 지배구조·재무제표, 임원 보수·주주 정보·보건안전, 생산업무에 사용되는 물질, 기술개발·인력정책·직업훈련, 채용 및 해고, 투자정책, 공급망 하청업체(suppliers)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것이다.

협의권(the right to consultation)은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에 관련되고, 노동자의 고용 및 가정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회사의 정책을 실행하기에 앞서 사용자와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노동자 대표에게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회사 정책을 실행할 때 예상되는 부정적 효과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활을 안정시키고, 노사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을 예방하며, 궁극적으로 회사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공동결의권(the right to codetermination)은 회사 정책을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공동으로 결의(決議), 즉 노사가 함께 의논해 결론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내용적으로 보면, 노사가 회사 정책을 둘러싼 태도와 행동에서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의 공동 '결의(決意)'로 해석하는 게 이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다만 독일 종업원평의회와 스웨덴 보건안전위원회 사례에서 보듯이 공동결의권에는 인력의 채용과 해고, 보건안전 등의 문제에서 공동결정 수준의 권리가 포함된 경우가 있기는 하다.

공동결정권(the right to co-decision)은 말 그대로 회사의 중요 정책을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결정하는 수준의 권리를 말한다. 노동조건·고용·보건안전·재무·투자·인력·채용·해고·복지·기술개발·직업훈련·공급망(supply chain) 등 회사 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노사가 그 양과 질에서 대등한 권리를 갖고 함께 결정하는 것으로, 북유럽을 포함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codetermination'을 '공동결정'으로 해석해 왔는데, 이것은 과도한 해석으로 보인다. 관련 제도가 가장 잘 발달됐다고 평가되는 스웨덴에서도 노동자들에게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회사 정책을 사용자가 공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노동자 대표가 이를 막을 수 있는 경영참가 수단이 없다. 노동자 대표가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라면 이는 경영참가 틀을 넘어 노동조합 단체행동의 영역에서 처리된다. 이론상 최후 수단은 파업일 것이다.

노동자 경영참가의 기업 내부 기반 '종업원평의회'

미국과 독일의 저명한 노사관계학자인 로저스(Joel Rogers)와 슈트렉(Wolfgang Streeck)은 노동자 경영참가의 제도적 수단인 종업원평의회를 국제비교한 책에서 주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Works Councils: Consultation, Representation, and Cooperation in Industrial Relations; Chicago University, 1995).

첫째, 종업원평의회는 노조원 신분과 상관없이 특정 기업에 고용돼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포괄해 대표하는 조직이다. 둘째, 종업원평의회는 특정한 공장 혹은 기업의 노동력을 대표한다. 셋째, 종업원평의회는 '기업별노조'가 아니다. 기업별노조는 산별연맹 등 기업 울타리 밖의 상급단체에 가입할 수 있으나, 종업원평의회는 기업의 내부 조직에 불과하다.

넷째, 종업원평의회는 대표(혹은 대변)(representative)를 위한 기관이다.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회사 정책에 반영하려는 목적을 갖는 반면 사용자 의견이나 회사 정책을 노동자들에게 홍보하는 장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처럼 종업원평의회 역시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이며, 경영자의 지시와 통제 라인 밖에서 기능한다. 다섯째, 사용자도 자기 의견을 설명하는 기회를 종업원평의회와 가질 수 있다. 의사소통을 통한 대변(representative communication) 수단으로 노사 모두 종업원평의회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섯째, 종업원평의회는 입법을 통해 법적 기반을 가진 기관으로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자율적 기관으로 만들 수도 있다. 노사 간 단체협약을 통해 만들 수도 있고, 역으로 사용자가 자기 입맛에 맞는 종업원 조직의 결성을 주도할 수도 있다. 일곱째, 종업원평의회의 구조는 나라마다 다르다. 예를 들면 생산직과 사무직을 한데 묶어 공동조직을 만들 수도 있고, 생산직 따로 사무직 따로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기능에서도 회사 정책 전반을 다룰 수도 있고, 아니면 특정한 사안에 초점을 맞춰 안전평의회·훈련평의회·생산성평의회 등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종업원평의회는 기업 이사회에 노동이사를 파견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수준의 종업원평의회도 많다. 스웨덴이나 독일처럼 노동자 대표가 노동이사가 되는 나라도 있고, 영국처럼 노동자 대표의 기업 내부 권한이 약한 나라도 있다. 또한 종업원평의회가 노동조합 조직 밖에 별도로 존재하는 독일·네덜란드로 대표되는 이원주의와 산별노조의 단위노조가 기업 안의 종업원평의회 기능을 독점하는 일원주의는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집단 목소리 대변하는 노동자 대표 권한 강화해야"

로저스와 슈트렉은 종업원평의회의 역할과 관련해 세 가지 형태를 제시한다. 사용자와 정부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거나 노동조합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부장적 평의회, 노사 상호 간 정보 교환과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의적 평의회, 기업의 경영정책과 행위에 대해 노동자들의 제도화된 목소리를 내도록 보장하는 대표·대변적 평의회.

이러한 분류에 따를 경우 한국 기업에 설치된 노사협의회는 안타깝게도 가부장적 모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사협의제도는 1963년 노동조합법에서 처음 도입됐다. 73년에는 노사협의제도 설치가 의무화됐다. 80년에는 별도 노사협의회법을 제정해 노조법에서 분리했고, 97년 법의 명칭을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으로 변경했다.

그 법률적 시발이 산업별노조를 약화시키려는 군사독재의 의도 속에 자리 잡은 한국형 제도의 역사적 한계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유노조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 기능을 대체하고, 자본가의 '독재'가 횡행하는 무노조 사업장에서는 노사협의회 자체가 형해화하는 현실을 만들어 냈다. 주 40시간 노동시간을 규정한 근로기준법처럼 근로자참여법도 정보공유와 정책협의를 기업 수준에서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그 결과 노사협의회가 해당 기업 노동자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대표·대변하는 종업원들의 평의회로서 기능하기는커녕 유의미한 정보교환과 의사소통이라는 협의기구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마침내 노동조합 활동을 약화시키거나 대체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을 억제하려는 사용자의 의지가 관철되는 가부장적 회의체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한국의 노사협의회제도는 오늘의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는 낡고 병든 기관으로 근근이 연명해 가고 있다.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하기 힘든 현행 한국식 노사협의제도의 종말을 선언할 때가 됐다. 이후 흐름은 더 많은 정보, 더 깊은 협의, 더 넓은 결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노동자대표에게 부여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기업 구조 안에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대표·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대표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다. 노동조합의 산업별 단체교섭과 병행되는 사업장 수준 단체교섭의 미래와 직간접으로 연동된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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