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올해로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첫해는 복지 축소, 지난해에는 임금피크제 도입, 올해는 성과제·퇴출제 도입 정책이 추진된다. 공공부문 노동계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계는 공동대책위원회와 공동투쟁본부를 꾸려 정부에 맞섰지만 제도 도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상수(51·사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과거보다 비장한 각오로 정부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모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조 위원장은 성과제·퇴출제가 도입되면 한국 노사관계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으로 회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금과 고용을 사용자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되면서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것만 받는’ 시절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임금 깎아 경제위기·세수부족 해결 안 돼"

- 정부가 공공부문을 압박하는 이유는 뭔가.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본다. 정부는 심화한 경제위기를 경제구조 개혁이 아니라 노동비용을 줄여 넘어가려 한다. 해고를 쉽게 하거나 임금을 쉽게 삭감하고 비정규직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체 노동시장을 개편하려고 공공부문부터 노동개악을 선도하려 한다.

재정문제도 주요 원인이다. 복지 수요가 증가하는데도 정부는 재벌감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세수확보가 어려워 공공부문 재정이 취약해지고 있다. 세수로 공공부문을 운영하기 힘들어지니 한편으로는 공공요금을 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부문 종사자에게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고자 한다.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그 해법이 정치세력 교체에 따라 바뀌지 않는 한 정부의 공공부문 목조르기는 계속될 것이다."

-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대책위원회·공동투쟁본부를 꾸렸다. 공공부문노조들의 연대투쟁을 평가한다면.

"연대투쟁의 가장 큰 장점은 대정부 관계나 대국민 여론활동에서 대표성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때 예산편성지침·경영평가 문제와 관련해 공공부문노조들이 정부와 협의한 적이 있다. 여기에 한계도 있었다. 연대를 통해 협의 창구를 만들어도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노조의 투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산별노조의 투쟁력 차이 등으로 위력적인 공동투쟁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공동투쟁본부를 꾸린 뒤 양대 노총이 상층 수준의 대화·연대뿐만이 아니라 조합원들을 만나는 현장사업도 같이했다. 물론 임금피크제를 개별적으로 수용하면서 연대가 무너졌지만 시행시기를 지연시킨 효과는 있었다. 내용적인 진전은 없었지만 정부와 공투본 간 비공식적인 실무협의도 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들의 연대투쟁은 발전하고 있다."

"살아남는 노조 중심으로 하반기 연대투쟁 본격화"

- 올해는 공대위조차 구성되지 않고 있는데.


"한국노총 내부 이견도 있지만 공공운수노조의 고민도 있다. 공대위·공투본을 구성했다가 지난해처럼 일부 조직이 이탈하기 시작할 경우 우리의 사기도 떨어질 수 있다는 내부 우려가 크다. 일단 양대 노총 5개 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 한국노총 금융노조·공공노련·공공연맹)이 정례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 상반기에 정부의 1차 공세를 이겨 내는 노조들을 중심으로 하반기에 제대로 싸워 보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노조·연맹들이 각자 계획에 따라 투쟁분위기를 조성하기로 했다. 지난해 각개격파를 당하거나 흔들린 이유를 분석해 대응방안을 수립한 뒤 공대위 구성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17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추진 점검회의를 열고 상반기에 공기업, 하반기에 준정부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전력공사·철도공사를 비롯한 공기업 11곳과 농어촌공사·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포함한 준정부기관 36곳을 선도기관으로 지정했다. 제도 조기도입을 위해 4~5월에 이들 47개 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빨리 합의하는 기관은 경영평가에 반영해 성과급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 공공부문노조들이 패배주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올해는 이전과 다르다. 성과제·퇴출제는 복지축소·임금피크제 도입과 성격이 다르다.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버리는 제도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은 '주는 대로만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정부는 임금과 고용을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노사관계를 회귀시키려 한다.

밀릴 수 없는 싸움이라는 점을 노조간부들과 조합원들이 광범위하게 인지하고 있다. 지난 두 차례와 다른 투쟁을 준비 중이다."

- 성과제·퇴출제에 관한 교섭권을 노조 중앙에 위임하는 사업이 눈에 띈다.

"교섭권을 위임하는 것과 동시에 성과제·퇴출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발생할 수 있는 경영평가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조합원들의 결의를 모으고 있다. 철도노조가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했고, 건강보험노조는 조합원들이 뜻을 모았다. 노조 산하 공공기관노조 10여곳이 쟁의행위를 준비하고 있다. 쟁의행위 시기는 집중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공공기관뿐 아니라 성과제·퇴출제 도입이 예고된 공무원·교사들과 함께하는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교섭권 위임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일 때 사용했다.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도입하려던 것을 싸움 끝에 간부에게만 적용하는 수준에서 막았다. 과거보다 비장한 각오로 정부에 맞설 계획이다."

"진보세력 단일화 없이 총선 맞아 아쉬워"

- 노동계가 4월 총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여당뿐 아니라 보수야당도 공천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줬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있었다면 대안세력으로 부각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민주노총의 투쟁을 용광로 삼아 진보세력이 정치적 단일화를 이뤄 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비록 단일한 진보정당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민주노총은 총선투쟁본부를 통해 총선 이후 단결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놓은 상태다. 빨리 가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서두르면 이전 실패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이 2천만 노동자를 움직이는 대중 정치운동을 준비하지 못한 것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노동개악 정당을 심판하는 사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조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진보진영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이 총선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새누리당 과반을 저지해 노동개악법 국회 통과를 막아야 하고, 내년 대선까지 이어지는 국면을 활용하기 위해 진보진영의 득표율을 높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새누리당은 올해 7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한다. 이후 여야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대선후보 당내 경선 준비에 돌입한다. 성과제·퇴출제 도입 여부를 두고 정부와 공공부문 노조들이 일대 결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와 겹친다.

조 위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준비되는 여야 정책·선거전략에 총선 결과가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대선 정국이 시작되는 시점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사회여론을 바꿀 수 있는 큰 투쟁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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