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광주지법 순천지원 2016.12.18 선고 2011가합5128 등 판결

1. 판결


‘원고들이 피고의 근로자임을 확인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고용의 의무표시를 하라.’

지난달 28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이런 주문으로 판결을 선고했다. 고용의제와 고용의무로 각기 선고한 두 개의 판결이었다. 현대체철 순천공장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원청 현대제철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등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청구한 모든 근로자들이 승소했으나 임금청구는 기각된 일부 승소 판결이었다. 재판과정에서 원고·피고의 합의로 임금청구는 항소심에서 하기로 했던 것이기 때문에 판결 주문에서 기각은 당연한 것이었다. 2006년 말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2년을 초과해서 사용한 파견근로자를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고용의제하던 것을 고용의무하도록 개정되면서 근로자들은 고용의제자와 고용의무자로 구분돼서 청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순천지원은 고용의제자인 원고들의 청구에 대해서는 “피고는 구 파견법 제6조제3항 고용간주 규정에 따라 파견근로를 개시한 입사일로부터 2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인 “각 ‘고용간주일’을 기준으로 직접고용이 간주됨으로써 피고의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판결하고, “피고는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제3호에 따라 파견근로를 개시한 입사일로부터 2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인 “각 ‘고용의무발생일’을 기준으로 원고들을 직접고용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원고들에 대해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을 읽어 보면, 사내하청업체 근로가 파견근로라는 근거 사실과 판단을 자세히 판시하느라 판결의 이유는 복잡했지만 현대제철이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서 책임을 지라는 판결 주문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2. 쟁점

현대제철은 순천·당진·울산 등에 공장을 두고 냉연강판·강관·철강재·자동차 부속품 등의 제조·판매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회사고, 원고들은 현대제철과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들(이하 각 협력업체는 주식회사를 제외한 명칭으로 지칭한다)에 소속된 근로자였다. 현대제철은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는 제철소로, 그동안 사내하청근로를 파견근로로 법원이 인정해 왔던 자동차 생산업체는 아니었다. 현대제철 순천공장에서 후처리공정, 원자재의 입고와 출하와 관련한 물류업무, 크레인업무, 아연드로스업무·롤샵업무·기계정비업무·전기정비업무·포장업무, 차량경량화공정, 용수공급 및 폐수처리를 하는 유틸리티업무, 실험실업무, 고철장업무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하청업체의 근로자인 원고들이 수행해 왔다.

현대제철에서 정규직이 하지 않는 크레인 운전 등의 업무를 하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가 파견근로로 인정될 수 있는가. 현대자동차 등 그동안 파견근로로 인정해 온 법원의 판례는 정규직과의 업무 혼재를 중요하게 언급해 왔다. 때문에 혼재가 아닌 현대제철의 크레인 운전 등 사내하청업체 근로가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피고 현대제철은 주장했다. 근로자지위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의 위 사내하청업체 공정 모두가 파견근로로 인정될 것인가. 작업 공정별로 원청의 관리자의 작업 지시 등 관여 정도에 관한 증거가 제각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교적 공정이 분리돼서 사내하청업체가 수행하는 유틸리티·고철장 등의 업무까지도 파견근로로 모두 인정받아야 했다. 그래서 현대제철 순천공장의 전체 작업공정의 운영시스템인 생산실행시스템(MES)에 의해서 원청인 현대제철이 관리·운영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쟁점을 두고서 재판은 4년여 동안 진행됐다. 그 사이에 순천공장에 현장검증을 다녀왔던 재판부도 변경되는 등 변론절차가 수차례 갱신됐다.

3. 이유

순천지원은 협력업체(사내하청업체)들의 설립 및 운영, 도급계약 체결 및 내용, 피고의 협력업체 및 소속 근로자 관리, 그리고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업무수행방식까지 상세하게 살펴 사실인정을 하고서, 2015년 2월26일 현대자동차 근로자지위 소송사건(김준규 외 6인)에서 대법원이 선고했던 파견근로의 판단기준 법리를 인용해서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현대제철은 ‘협력사 페널티 규정’을 통해 벌점 부과, 크레인 운전에 업무 지시 및 운전 금지조치,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단체행동시 협력업체로 하여금 근로자를 복귀시키도록 종용, 작업시간·작업방식·작업속도·작업장소 등에 관해 피고의 생산공정 흐름과의 연동 등과 무엇보다도 “MES를 구축해 작업물량·작업위치 등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작업해야 할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줬고, 실시간으로 근로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MES를 통해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업무지시를 하고 이들의 업무수행상태를 관리”했다는 점을 들어 현대제철은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해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판시했다(①). 현대제철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시간 동안 현대제철이 제공한 작업장소에서 현대제철이 제공한 기계설비와 자재를 이용해 현대제철로부터 전수받은 기술 및 작업표준서 지침을 참고해 작업을 수행하는 등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피고의 냉연강판 제조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피고 회사 직원들과 하나의 작업집단을 구성하여 함께 근무한 것”이라고 판시했으며(②), 그 밖에 협력업체들이 근로자들의 인사 및 근태상황에 대한 결정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볼 수 없고(③), 협력업체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어 독자적인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④), 협력업체는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다(⑤)고 판시한 후, 현대제철에서 사내하청업체 근로는 파견근로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4. 의의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크레인 운전 등의 업무를 해 온 사내하청 근로에 관해서 파견근로로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했던 광주지법 순천지원이지만 현대제철 사내하청 근로자는 파견근로를 해 온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자동차의 직접생산공정을 넘어 제철소에서도, 그리고 정규직과의 혼재 여부와 무관하게 그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로 인정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업체 근로의 파견근로 해당성을 넓게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원자재 관리·품질관리·공정계획에 따른 작업량과 작업순서 편성, 조업진행 현황과 실적관리, 출하관리 등의 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제반 관련 정보가 기록, 처리되는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을 이용해 원자재 입고부터 최종 생산품 출하까지 과정 전반을 원청 현대제철이 관리·운영하는 데 주목했다. 이를 통한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업무에 대한 지휘명령을 한 것으로 인정하는 등 파견판단의 주요한 근거로 봤다는 점이다. 판결에서 적시하고 있듯이 이 시스템은 “포스코·동부제강 등 제조업체에서 업무효율성을 위해 도입한 전산시스템”이고, 이러한 유형의 통합관리시스템은 사내하청업체를 두고 사업해 온 많은 사업장에서 도입해 관리·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판결에서 판시한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법리는 이미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사건에서 판시한 바를 인용해서 판시한 것으로 새로운 것이라고 볼 수는 없어도 제철소, 나아가 제조업 그리고 이와 같이 사내하청업체까지 포함해서 통합된 관리시스템을 운영하는 사업장 전반에 걸쳐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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