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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 자본에 맞선 초국적 교섭체계 시급"제조공투본 '초기업 단위 산별교섭 국내외 사례 및 과제’ 국제세미나 개최
▲ 구은회 기자

120유로에 팔리는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는 2.5유로다. 14달러를 주고 사 입는 M&H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건비는 0.12달러(12센트)다. 750달러나 되는 아이폰 휴대전화 한 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4.5달러의 인건비가 소요된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이렇게 노동의 가치가 국경을 넘어 저평가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제노총(ITUC)에 따르면 상위 50개 초국적기업에 종사하는 직접고용 노동자는 6%에 불과하다. 나머지 94%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자본 이동으로 글로벌 생산기지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한 상황에서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은 생계를 담보로 저임금 노동에 내몰린다.

선진국 노동자들의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경영위기 이후 유럽 각국의 최저임금은 삭감 또는 동결되는 추세다. 노동자 보호 척도인 단체교섭 적용범위 역시 좁아지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초기업 단위 산별교섭 국내외 사례 및 과제’를 주제로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양대 노총 제조부문 공동투쟁본부 주최로 마련된 이날 세미나에서는 독일·스웨덴·미국의 초기업 단위 교섭 현황과 전 세계 제조업 노동자들이 직면한 노동현실에 대한 고찰이 이뤄졌다. 요컨대 초국적기업과 글로벌 하청기업, 직영노동자는 물론이고 광범위한 간접고용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국제적 수준의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지금의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것이 이날 세미나의 결론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단체교섭 적용률 4.6% 감소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각국의 단체교섭 적용률은 평균 4.6% 감소했다.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로 보장되는 단체교섭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단체교섭 적용 범위도 좁아졌다.

상대적으로 견고한 노사관계를 구축한 유럽 국가들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케말 오즈칸 인더스트리올 부총장은 “전국적으로 적용되던 포괄협정이 중단되고, 협약 적용을 규제하는 문턱이 높아지고, 초기업 단위 협약보다는 기업별협약에 우선권을 주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사관계의 중앙집권화가 약해지고 분권화가 강해지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임금하락을 동반한다. 경제위기를 겪은 그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이후 그리스 기업별협약 중 80%는 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직접 생산을 담당하는 개도국 노동자에 대한 임금착취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 오즈칸 부총장은 “다국적 노조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몰아치는 초국적 노동규제에 맞서려면 노동자들 역시 초국적 교섭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인더스트리올은 전 세계 147개국 회원조합을 상대로 국제기본협약(GFA)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13개 국가 14개 업종에서 47개 협약이 체결됐다. 물론 한국은 예외다.

GFA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생활임금 보장이다. 생활임금 실현을 위한 교섭구조로서 최저임금 협상과 산별교섭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인더스트리올의 기본 방침이다.

글로벌 의류브랜드를 상대로 한 인더스트리올의 핵심 요구는 △인더스트리올과 공동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할 것 △납품업자 및 현지 노조들과 함께 산업별 임금협상에 임할 것 △노조 가입과 단체교섭을 장려할 것 등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함께 살자”로 갈무리된다. 저성장 시대일수록 국가경제 기반이 되는 제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해야 하고,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의 과제라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핵심은 적정임금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스웨덴 반만 따라 해도 '사회적 교섭' 가능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노사관계의 중앙집권화가 약해지고 분권화가 강해지는 추세 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산별교섭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의 사례가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마츠 스벤손 스웨덴제조업노조 국제비서는 “스웨덴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90% 이상이기 때문에 만약 어떤 기업이 사용자단체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해당기업 노조가 협약 이행을 요구하면 따라야 한다”며 “사용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노동자들은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교섭구조와 단체협약 적용률이 그 어떤 노동자도 ‘사회적 덤핑’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고 설명했다.

일명 ‘노르딕 모델’로 불리는 스웨덴의 산별교섭 체계는 노사 간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사가 함께 노력한다는 정신이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폭넓은 공공복지시스템이 스웨덴의 협력적 노사관계를 지탱하는 핵심 요인이다. 복지 후진국인 한국이 갈등적 노사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벤손 국제비서는 스웨덴식 노사관계를 지탱하는 요인으로 △잘 조직화된 사회적 파트너(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전국 단위 단체협약 △폭넓은 공공복지시스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R&D 혁신 △자유 및 공정무역 장려 △노동법·단체협약·노동법원을 꼽았다.

그는 “노조가 자유무역을 지지한다고 하니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스웨덴의 높은 복지제도는 수출주도 산업으로 인해 가능했다”며 “산업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노조가 먼저 구조조정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신 해고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보호와 직업훈련·재취업 지원은 필수다. 사회적 대화를 강조해 온 한국 정부와 자본가들이 정작 사회적 대화를 위한 제반시스템 마련에 얼마나 인색했는지, 사회적 대화가 번번이 파행으로 끝난 이유가 무엇인지 스웨덴의 노사관계 시스템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구은회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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