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비정규직 철폐도 아니었다. 전주공장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사합의에 따라 현대자동차에 정규직으로 채용돼 비정규직에서 벗어났다.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을 폐지하라는 비정규직노조의 요구를 관철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파견근로 철폐도 아니었다. 아산공장 비정규 노동자 중 일부는 노사합의를 수용하고서 정규직으로 채용됐지만, 일부는 거부하고서 여전히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 전환을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불법파견 철폐라고 할 수는 있을까. 울산공장 비정규 노동자들로 조직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가 참여한 노사합의, ‘사내하도급 관련 합의서’ 등을 도출했고, 이에 대한 찬반투표를 지난 17일 실시해서 조합원 679명 가운데 622명이 투표에 참여해 484명이 찬성, 찬성률 77.8%로 가결했다. 그동안 몇 차례의 노사합의가 부결되고서 새로이 협상을 통해 도출한 노사합의였다. 이제 울산공장의 비정규 노동자들도 이 합의에 따라 정규직으로 특별고용되면 비정규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2. “현대자동차는 2012년 7월 말 이전 입사자로 현재 직접생산 하도급업체에 재직하는 인원 중 2천명(2016년 1천200명, 2017년 800명)을 2017년 말까지 특별고용하며, 2018년 이후에 대해서는 직영 소요인원 발생에 따른 기술적 공개채용시 직접생산 하도급업체 근로자를 일정비율 채용한다.” 사내하도급 관련 합의서는 이렇게 2017년 말까지 현대자동차 직접생산 사내하청 노동자를 특별고용하고 채용하기로 했다. 노사합의 당시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수보다 월등히 많은 인원을 정규직으로 특별고용하기로 했으니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모두가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합의에 참여한 비정규직지회와 조합원들은 이 합의서를 읽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에서 벗어나 정규직이 된다는 이 합의서의 조항은 주된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특별고용이든 특별채용이든, 아니면 신규채용이든 그 표현이 무엇이든 현대자동차에서 사내하청 근로자가 정규직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는 사용자 현대자동차조차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이 특별협의의 당연한 전제라고 볼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현대자동차를 사용자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승소한 상태였다. 현대자동차 생산공정의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라고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라고 지난해 2월, 대법원이 아산공장의 김준규 등 4명에 대해 확정판결했고, 그전에 대법원은 울산공장 최병승에 대해서도 현대차가 부당해고한 것이라고 판결한 바 있었다. 그러니 이러한 법원의 판결대로면 현대자동차 생산공정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미 현대자동차의 근로자이거나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로 고용해야 할 자들이다. 현대자동차는 2017년 말까지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걸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건 사용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외면한 것이었다. 당장, 사내하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 위 합의서는 비정규 노동자를 특별고용·채용으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임에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관심은 특별고용의 조건이었다. 근속기간을 얼마나 인정해 줄 것인가. 근로자지위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얼마를 지급할 것인가. 이미 노사합의서를 작성했던 전주공장과 아산공장에서도 이것을 두고서 협상이 진행되고 합의했다. 법대로면, 파견근로라고 한 법원의 판결대로면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서 2년이 지난 뒤부터는 정규직으로서 근무한 것이고 정규직으로서 임금을 지급받아야 했던 것이니 그때 이후 근속을 모두 인정해 주지 않고 그 임금 차액을 모두 지급해 주지 않는 한, 비정규직 3년에 1년이든 2년에 1년이든, 500만원이든 1천만원이든, 사용자 현대자동차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삭감시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가 소 취하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그 조건에 따르는 비정규 노동자에 한해 정규직으로 특별고용하겠다고 특별협의에 나선 것은 당연히 져야 할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외면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사용자로서 현대자동차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한 전제에서 특별협의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비정규 노동자의 꿈, ‘정규직’으로의 특별고용을 내세우면 임금 차액에 관한 노동자권리를 포기시킬 수 있다고 보고서 현대자동차는 철저히 사용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협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노사합의에 아산공장 비정규 노동자들이 반발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몇 차례의 노사합의를 울산공장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부결시키며 반발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법파업을 이유로 한 수백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사용자로서 현대자동차의 무기였다. 이미 1심 법원에서 파업투쟁을 주도하고 가담한 지회 간부·조합원들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선고한 바 있었으니 그 판결문은 특별협의에서 사용자 현대자동차의 무기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3월21일)의 조인식을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위대한 승리라고 환호하지 못했다. 감히 기쁘다고 축하의 말을 하기에는 비정규 노동자권리 쟁취, 비정규직 투쟁의 대의 앞에 눈치가 보인다. 분명히 10여년 비정규직 투쟁의 결과로 쟁취한 승리이건만, 승리라고 나는 환호하지 못했다. 합의서에서 사용자로서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특별고용의 조건을 읽고서 이에 대해 찬반투표를 했던 비정규직 조합원의 심경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3. “현대차 불법파견 공방 11년 만에 마무리”, 어제 조인식에 대한 매일노동뉴스 기사의 제목이었다. 현대차는 지난 18일 윤갑한 사장 명의 담화문을 통해 “2010년 7월 대법원 판결로 촉발된 사내하청 문제가 특별협의를 통해 마무리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글로벌 기업 위상에 걸맞은 품질향상과 고용안정을 위해 노사가 함께 고민하자”고 밝혔다고 뉴스는 덧붙이고 있었다. 이렇게 울산공장의 노사합의로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은 마무리되는 것인가. 이번 합의서에서 노사는 현대차 직접생산공정의 사내하청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특별고용·채용하겠다고 합의했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에서 불법파견은 철폐되는 것인가. 그런데 “2012년 7월 말 이전 입사자로 현재 직접생산 하도급업체에 재직하는 인원 중 2천명”을 대상자로 하고 있으니 전면적으로 현대차에서 파견근로를 철폐하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합의서는 분명히 이렇게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모두가 아니라 2012년 7월 말 이후의 입사자, 직접생산공정이 아닌 하도급업체 노동자 등을 제외된다고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이번 노사합의서는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마무리일 수는 없다고 읽힌다. 사용자로서 현대자동차 사장은 “사내하청 문제가 특별협의를 통해 마무리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글로벌 기업’의 마무리로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리고 노사합의서로 현재 진행 중인 근로자지위 소송을 제기한 조합원들의 소를 취하시킬 수는 없다. 소를 제기한 원고인 조합원들의 의지로만 소송을 취하할 수가 있는 것이니, 합의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은 노동자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며 소송을 계속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이번 합의서는 어디까지나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더라도 이번 합의는 마무리일 수는 없다.

4. 마무리든 아니든 이번 합의는 지난한 투쟁의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2003년 6~7월, 아산공장에서 최초로 비정규직노조가 조직돼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시작된 이후 계속돼 온 투쟁은 전주공장과 아산공장, 그리고 오늘 울산공장에서의 노사합의로 한 시기를 마무리했다. 그것은 법적 투쟁으로 보자면 2005년 12월 아산공장 김준규 외 6인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 소송을 시작으로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10년 넘게 이어졌다. 그리고 법적 투쟁은 2007년 6월 김준규 외 사건에서 최초로 법원으로부터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고 인정받았고, 그뒤 대법원에서 최병승과 김준규 등 4인이 현대차 근로자의 지위를 확인받았다. 현대차의 비정규직 투쟁은 현대차에서 머물지 않았다. 이 나라 자동차 생산공정에서 비정규직 투쟁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제조업, 기타 사내하청 근로 전반에 걸쳐 불법파견의 문제를 제기했다.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 전환.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제기한 구호는 이 나라 비정규직운동의 구호가 됐다. 그 투쟁의 불꽃은 이미 이 나라 비정규직운동의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다. 이번 합의를 두고서 내부에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에서 비정규직투쟁은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것은 비정규직법이 보장한 권리를 법적 투쟁을 통해 확보하는 것에서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 쟁취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러한 투쟁의 승리한다면, 현대차에서 이번 노사합의는 투쟁의 마무리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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